하이닉스 사태 장기화의 쟁점

▶ 비정규직이냐 협력회사 정규직이냐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의 핵심은 이들의 하청(협력)업체가 독립적인 인사와 근로감독, 경영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회사에 들어와 일을 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이 누구의 지시에 따르느냐다.

하청업체 직원들은 지난 2004년 10월 노조를 결성하면서 사실상 근로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면 회사측은 이들이 절대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협력업체의 직원이며 회사와 협력업체 사이의 계약에 따라 노동력을 제공하는 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의 범위는 애매모호한 구석이 많다.

기업 입장에서는 아르바이트나 시간제 근로자 등으로 국한지어 해석하는 반면 노동계에서는 이를 확대해 하청과 같은 실질적인 상하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까지 비정규직으로 보고 있다.

사태가 1년이 넘도록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비정규직에 대한 양 당사자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회사는 하청노조 조합원들에 대해 사용자권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이는 교섭은 고사하고 대화 자체도 불가능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 재계·노동계 대리전, 자존심 싸움?
하청노조가 설립-파업 돌입-하청회사 폐업 등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이들의 문제는 언론은 물론 지역적으로도 큰 비중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이제 겨우 정상화에 들어선 하이닉스와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의 하청회사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 등 표면적인 관심에 그쳤던 것이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가 집중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대전지방노동청이 4개월전 청주지방노동사무소의 조사결과를 뒤집어 불법파견 결정을 내리면서 부터다.

노조는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었지만 회사측은 즉각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법적 판단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정했고 이 ‘법대로’입장은 지금까지 한치의 흔들림 없는 공식입장이 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하이닉스·매그나칩이 ‘법대로’ 주장을 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만일 하청노조를 상대로 대화의 문을 열거나 그들을 포용하는 태도를 취할 경우 재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은 비정규직 철폐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신자유주의라는 국제자본에 맞서는 무기가 되고 있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가 지역을 넘어 재계와 노동계 전반으로부터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그 결과가 재계는 물론 노동운동에 미치는 영향은 상징적인 효과를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 감정적 앙금까지 쌓였다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은 이번 사태에 대해 민주노총 등 노동계에 직격탄을 날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왜 하필 우리냐?’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이들의 직격탄은 ‘우리 보다 하청비율이 높은 사업장도 많은데’와 ‘노조가 한국노총 소속이기 때문’으로 까지 이어진다. 이는 결국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위해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논리로 귀결되며 그 근거로 하청노조의 탄생과 파업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을 부연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청노조가 설립된 것은 직원들의 계약 만료를 두달 여 남겨둔 지난 2004년 10월이었으며 파업에 돌입한 것은 불과 한달 뒤인 12월.
12월 25일 새벽 협력업체 3곳이 직장을 폐쇄하자 다음해 1월 18일부터 회사 정문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하이닉스·매그나칩은 물론 경제계에서는 민주노총 등이 비정규직 문제를 이슈화 하기 위해 밀어부쳤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하청노조나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문제는 철저히 노동자들의 생존권에 관한 사항이었고 하이닉스에서부터 불거져 나온 것일 뿐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사측이 하청노조 투쟁의 순수성을 훼손하기 위해 억지논리를 펴는 것이며 자본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 하청노조 상대 하나가 아닌 둘
하청노조 입장에서 사측은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이다. 그 뿌리는 같지만 하이닉스가 비메모리 부문을 매각함으로서 회사는 둘로 쪼개졌다.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하이닉스나 매그나칩이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법대로’ 또는 ‘사법적 판단에 따를 것’이라는 공통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를 직접 대화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느쪽이든 먼저 말을 꺼내기가 무척 부담스런 상황이다. 더욱이 매그나칩은 외국계 회사로 당장 상장을 통한 회사가치 상승과 재매각이라는 수순이 예상되고 있어 하청노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기는 힘들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매그나칩의 경영상태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

하이닉스의 메모리 부문은 규격화돼 있어 시장탄력성이 적지만 매그나칩의 비메모리 부문은 적용되는 제품의 디자인과 기능에 따라 달라지게 돼 분사 3년여 동안 공고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시민단체 관계자도 “문제해결에 좀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 회사는 하이닉스일 수 밖에 없다. 하청노조 입장에서는 사측이 둘이라는 점도 논의과정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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