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천막농성만 1년, 양 당사자 대립 수위만 높아져
사측 ‘법대로’ VS 노조측 ‘정규직화’ 배수진 걷고 유연해져야

하이닉스·매그나칩과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대립이 1년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노조는 업무 감독을 사실상 하이닉스·매그나칩(이하 회사)이 한 만큼 자신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며 직접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회사는 이들이 비정규직이아닌 협력업체의 정규직원인 만큼 직접 교섭을 하는 것은 노동 관련법에 어긋난다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대전지방노동청이 불법파견 결정을 내리면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태는 노동계 현안을 넘어 지역의 중대 현안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기업운영과 조합원들의 생존권 차원에서라도 조속히 마무리 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투쟁수위 날로 높아져, 극단적 상황 배제 못해
노조는 지난해 1월부터 회사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 1년 넘게 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단식과 상경농성을 벌이며 투쟁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지난 16일에는 청와대에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소위 ‘투쟁유서’를 전달하는 등 초긴장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사태의 본질을 노동구조에 대한 재계와 노동계의 첨예한 시각차로 보는 입장도 있지만 사태 1년을 넘기면서 사실상 이는 무의미해졌다.
조합원들에게 있어서는 자본이나 노동이냐는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하청지회 지도부가 22일째 단식을 진행하며 간기능 회복 불능 상태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이르고 있으며 구속중인 신재교 지회장도 옥중단식을 감행,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단식농성을 바라보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생존권의 문제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회사측의 사법적 판단에 따르겠다거나 사용자가가 아니라는 주장은 전의만 불사르게 하는 자극일 뿐”이라고 전했다.

자본과 노동의 첨예한 논리 대립이 자칫 극단적 상황을 몰고 올 가능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 경우 양 당사자는 물론 지역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혼란은 감당키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사실 하이닉스 사태가 터졌을 당시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서는 하청노동자의 생존권과 권리의 문제와 함께 노동문제나 노사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따라서 사태 초기에는 성명을 발표한다거나 하는 것 조차 많은 검토가 필요할 정도였다. 그러나 초기에 가졌던 노동과 자본, 노사문제는 사태 해결에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됐으며 지난해 하반기를 넘어서면서 하이닉스 사태는 지역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장기간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의외의 상황이 나타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 ‘법대로’ 논리 접고 대안 제시하라
노동계는 대전지방노동청의 불법파견 결정을 얻어내고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해 현행 노동관련법상 강제고용 의무가 없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행 파견법은 기업주가 파견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할 경우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불법파견인 경우에는 이 ‘직접고용의제’ 적용 여부가 명확치 않고 대법원 판례도 없다.

다시말해 하이닉스·매그나칩의 불법파견이 중앙노동위는 물론 법원에서까지 인정이 된다 하더라도 하청노조 조합원을 고용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노동계가 회사측의 ‘법대로’ 또는 ‘사법적 판단에 따를 것’이라는 주장이 결과적으로 노조를 무력화 시키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 입장에서 최악의 경우 대법원에서 까지 불법파견 판결이 나오더라도 벌금형 수준의 형사처벌과 민사적 책임 외에 이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문제가 법원으로 까지 간다면 형사재판에만 최소 2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민감한 사건인 만큼 법원이 판결을 미룰 경우 그 기간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여기에 민사소송 까지 진행한다면 사태의 결말은 사실상 요원해 진다는 것이다.

특히 하청노조 조합원들의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정규직화를 통한 조속한 해결이 급선무지만 법적 판단을 구하게 될 경우 얻을 것이 없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관련 회사 측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으며 사태가 노동문제를 넘어 지역사회의 현안이 된 만큼 ‘법대로’ 주장을 접고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내 39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하이닉스·매그나칩 문제 해결을 위한 충북범도민대책위(범대위) 관계자는 “회사측의 주장은 법리적 측면에서 어긋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법적 판단을 구하는 장기전을 선택하는 것은 법을 이용해 조합원들을 고사시키자는 것과 다름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와 도의적 책임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미동도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말도 안되는 노동계의 억지에 기업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정부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으니까 해당 기업이 먼저 풀라는 말은 앞뒤가 바뀐 말이다. 어느 기업이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하겠는가. 오히려 지난해 1월 협력업체를 통해 조합원들의 구제를 추진했지만 거부했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그 당시 했던 것이다. 법에 없는 대화를 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하이닉스 사태는 지역의 현안이 돼 버렸다는 점에서 회사측에 좀 더 열린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고 특히 2000년대 초 하이닉스가 부도위기에 직면했을 당시 지역에서 보여준 모습과 비교하며 사회적 책무와 도의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을 논하지 않더라도 민간기업 수준 이상의 위상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도와 매각위기에 직면했을때 하이닉스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지역에서 보여준 하이닉스에 대한 사랑 만큼 이제는 지역을 위해 기여할 때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사태 해결을 위해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이 먼저 대안을 제시해야 하며 직접 또는 공식 대화가 부담스럽다면 노사정협의회나 범대위를 통한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 당사자 양보가 절대적으로 필요
하이닉스 사태 문제 해결을 위해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만큼 하청노조 또한 이에 부응하는 열린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법대위는 최근 하청지회 측에 문제 해결을 위한 전제 조건을 제안했다.

먼저 범대위에 당사자격인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을 것과 천막농성장 주변의 선전물 철거, 집회와 시위 등 대화를 방해하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한 것이다.
범대위 관계자는 “범대위는 하청지회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직이며 회사나 노조를 두둔하거나 지원하는 조직이 결코 아니다. 당사자들이 명분과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대화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선행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범대위는 설 명절 전 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거나 진전이 없을 경우 활동을 중단, 해산하기로 해 사실상 중재자로서의 최후 통첩을 한 셈이다.

결국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범대위든 노사정협의회든 주변에서 만들고 양 당사자가 사태혀결을 위해 서로의 안을 제시하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제안은 17일 하청지회 지도부가 이재충 충북도 행정부지사를 만난 자리에서도 전달 됐으나 하청지회는 이를 거부했으며 회사측 또한 직접 교섭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범대위나 충북도노사정협의회의 제안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범대위 관계자는 “직접 대화가 불가능 하다면 형식과 자리에 구애받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도 있다. 다만 회사측이나 하청지회도 그간의 주장에서 한발 물러나 제2, 제3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화 불가와 정규직화 만을 고수한다면 사태 해결은 요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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