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택 학장, 공항유치에 얽힌 파란만장 뒷얘기 털어놔
“…청주국제공항이 한일간 노선의 거점 및 물류공항이 되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며 21세기 동북아 시대의 핵심공항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앞장 설 것이다…”
지난 17일 창당대회를 마친 국민중심당 공동대표인 심대평 지사와 신국환 의원이 친필 서명한 내용이다.
지난해 12월말 청주시내에서 국민중심당 충북도당 발기인대회를 마친 두 사람은 정치 대선배인 충청대학 정종택 학장(70)을 방문했다. 문안인사를 겸한 이날 면담에서 정 학장이 기습적인 제안을 했다. “국민중심당이 충청권을 기반으로 해서 성장하려면 충북에서는 청주국제공항 활성화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당 차원에서 도민들에게 약속을 해달라”
지난 9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첫 낙선의 고배를 마시게 했던 청주국제공항. 그 정치적 업보(?)를 추스려 칠순의 나이에 다시 닦고 광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2시간여에 걸친 마라톤 인터뷰를 통해 정치인 정종택과 청주국제공항에 얽힌 애증의 20년을 정리해본다.
청주공군비행장 건설때 이전 필요성 절감
1976년 청와대 행정비서관으로 재직중이던 정종택 학장은 오용운 전 지사(작년 작고)의 뒤를 이어 충북도지사로 임명됐다. 우선적으로 민원을 챙겨보니 청주 공군비행장 건설에 따른 불평불만이 심각했다. “그때 현장에서 부대장의 브리핑을 받아보니까, 북한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 천혜의 비행장이니 대규모 탄약창 설치를 위해 추가로 토지수용을 하는데 도지사가 적극 협조해달라는 것이 골자였다. 이미 공사는 70%가량 진척됐는데, ‘이거 큰일났구나’ 싶었다. 도청 소재지인 청주와 인접한 곳에 군사비행장과 탄약창이 들어서면 유사시에 적의 공격목표가 되기 십상아닌가? 청주 발전을 위해 언젠가는 이 전투비행장을 이전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80년 1월 노동청장으로 이임하기까지 청주 공군비행장의 준공을 지켜봤을 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84년 11대 국회에 입성한 정 학장은 교통부가 수도권 신공항 후보지를 물색중이라는 특급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당시 손수익 교통부장관과 막역한 사이였던 정 학장은 청주 공군비행장을 적극 추천해 마음을 움직였다. 또한 청남대로 내려온 전두환 전 대통령을 독대해 수도권 기능분산 정책의 필요성과 청주 신공항 유치 당위성을 설명했다.
“당초 교통부가 전국 7개 후보지를 선정했고 그 중에서 청주는 6순위였는데 막판에 대통령 결재가 청주로 났다. 이제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잡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민간국제공항이 들어서면 군사 비행장 이전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데 이튿날부터 언론에서 수도권 신공항이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졌다고 비판일색이었다. 할 수 없이 교통부는 ‘청주는 중부권 국제공항이며 수도권 보조공항 역할을 하게 된다’고 위장발표했다”
하지만 군사 비행장에 민간 국제공항을 접목시킨 자체가 청주비행장의 활용가치 측면에서 일대 전환점이 된 셈이다. 이제는 국가의 장기 SOC사업을 조기추진하기 위한 예산확보가 관건이었다. 현지 여론을 통한 중앙부처 압박전술을 쓰기로 하고 청주를 비롯한 도내 시군에서 청주공항 유치 환영대회를 개최했다.
중부고속도 노선, 청주공항 인접 변경
또한 안양-아산-공주로 연결된 중부고속도로 설계노선도 청주공항을 내세워 충북지역으로 끌어당겼다. 역시 청남대 대통령 독대를 통해 광주-이천-음성-진천 노선변경을 이뤄냈다는 것. 정 학장의 청남대 ‘독대로비’는 정부 부처내에 ‘악명’이 높았고 청주공군비행장 이전을 둘러싸고 같은 지역구 의원인 이춘구 의원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청주공군비행장 이전 당위성에 대해 정 학장의 설명을 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당시 김인기 공군참모총장에게 이전을 추진하도록 지시했고 전국에서 5개 후보지가 물망에 올랐다. 후보지 가운데 중원군이 포함되자 중선구제 지역구 의원인 이춘구 의원은 정 학장이 청주공군비행장을 중원군으로 밀어내려는 것으로 파악했다.
“나는 군비행장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된다고만 건의했지 충주로 가야한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 공군에서 자체적으로 후보지를 정했다는 사실을 이 의원도 뒤늦게 알고 오해를 풀었다” 특히 87년 대선을 앞두고 노태우 후보는 청주국제공항 조기개항을 공약사항으로 채택했다. 정 학장의 막후노력이 컸지만 대통령 당선이후 공약파기 1순위가 되고 말았다. “모든 경제부처에서 수도권 공항으로 청주는 불가능하다고 건의했고 영종도가 후보지로 급부상했다. 그때 이미 국내 최대 항공사에 그쪽에 많은 땅을 매입하고 정부에 강력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 공약까지 만들었는데 일이 틀어지게 되서 난감했다”
하지만 ‘부도옹(不倒翁)’ 정종택에게 13대 국회는 예기치않은 기회를 제공했다.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 국회에서 예결위원장직을 맡게 된 것. 여야 협상의 적임자로 판단한 노 대통령이 수정 예산권까지 위임한 채 예산안 합의의 전권을 맡겼다. 결과는 3개 야당(평민·민주·공화당)과 헌법시한내에 예산안 합의통과라는 초유의 성과를 낳게 됐다. 이때 정 학장은 청주국제공항 사업비 20억원을 국회에서 계상해 공항건설의 초석이 됐다.
국회 예결위원장으로 능력을 발휘한 정 학장은 정무장관으로 발탁되어 정치권의 영향력을 키웠다. 그렇지만 걸프전이라는 돌출변수 때문에 청주공군비행장 이전이 무기한 보류되고 만다. “청와대에 보고차 갔더니 노 대통령이 ‘국방부에서 걸프전 이후 공군력 강화를 위해 전투비행장 4곳을 증설해야 한다고 했다. 주민민원 때문에 건설이 어려우니 청주공항은 넉넉잡고 5~10년만 민군이 함께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청주시민들을 잘 설득해달라고 부탁을 하니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특히 공군비행장 이전문제는 보안사항이다보니 정 학장은 주변에 내막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고 결국 92년 14대 총선에서 청주공항 역풍을 맞고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상대후보들은 “소음환경 피해시설인 공항유치를 위해 시민환영대회까지 연 곳은 충북밖에 없다”며 정 학장을 몰아세웠다. 개항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얻지 못한 정 학장은 여론에 수세일 수밖에 없었고 승승장구하던 정치역정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마침내 97년 5월 청주국제공항이 ‘중부권 국제공항’ 건설 계획 발표 12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개항이후 이용객이 꾸준히 증가해 작년도엔 85만명을 넘어섰고 지방공항 가운데 가장 높은 평점을 받기도 했다.
또한 행정중심복합도시 확정에 따라 관문공항으로 자리잡게 돼 향후 활용도는 극대화될 전망이다. 한때 ‘미운 오리새끼’로 치부됐던 공항이 지역발전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