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새해는 역시 정치와 선거 얘기로 시작됐다. 대부분의 일간지들은 일제히 올해 정치향방을 가늠하는 설문조사를 특집으로 다뤄 올 한해의 기류를 유감없이 예고했다. 예정대로하면 6월 13일 지방선거, 8월 8일 재보궐선거, 12월 19일 대통령선거 등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은 5월 말부터 한달여간 치러지는 월드컵과 더불어 1년 내내 전 국민을 조바심나게할 것같다. 숱한 인물들의 부침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이다.
충북의 경우 오는 6월 지방선거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주목된다. 한나라당의 대세 분위기가 과연 어디까지 현실로 나타날 것인가와 자민련의 기사회생 여부다. 충북에서 한나라당은 지난 1년간 폭발적인 상승세를 탔다. 한때 공동여권이었던 민주당과 자민련으로부터의 민심이반이 지금까지는 고스란히 한나라당의 세확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충북 정치성향, 분명한 변화

최근 몇 년간 충북인들이 보여준 정치성향은 한가지 뚜렷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의 보수.미온적인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먼 분명한 색깔을 띠는 것이다. 그 징조는 지난 97년 15대 대선 때 극명하게 나타났다. 예상을 깨고 야당이던 김대중후보에게 가장 많은 지지표(29만5666표)를 던져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갈린 대선에서 결정적인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후보는 24만3210표, 한나라당을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한 이인제후보는 23만2254표에 머물렀다. 이런 결과는 일종의 선거혁명으로까지 불렸다. 선거가 있기 얼마전까지만 해도 충북에서 DJ를 논하는 것, 그 자체가 터부(금기)시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지금 충북에선 다시 한나라당이 부동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유권자들의 인식에서 아주 퇴출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각종 여론조사의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비해 5~10% 포인트 정도의 열세를 보이고 있지만 극단적인 괴리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정 정당에 일방적으로 민심이 쏠렸던 영. 호남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것도 충북인의 정치성향을 감지할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적어도 ‘자존심’까지는 버리지 않겠다는 ‘뱃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충북의 자민련 추락현상은 사실 지나칠 정도다.

16대 총선 계기로 지역맹주 사라져

지난 15대 총선과 98년 지방선거때까지만 해도 충북은 대전 충남권과 다름없이 자민련의 텃밭이었다. 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도내 8개 선거구중 무려 5곳을 석권했다. 98년 지방선거 때도 도내 11개 시.군중 6개 지역에서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자를 냈고 여기에다 도지사까지 거머쥐는 바람에 자민련은 지역 맹주로서 위상을 확실히 입증했다. 썩은 나뭇가지만 꽂아도 스스로 싹이 나고 열매까지 맺는다는 자민련의 이같은 기세는 그러나 지난 16대 총선을 계기로 빈사상태로 빠져 든다. 도내 7개 선거구중 괴산-음성-진천과 제천-단양 등 두곳에서만 당선자를 내면서 본격적인 침체기로 접어 든 것이다. 지금 자민련의 지지도는 한자리수를 벗어나지 못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충북에서만큼 자민련은 모든 지표에서 3개 정당중 최하위다.
자민련에 대한 도민정서의 이같은 냉혹한 외면은 민주당의 사례에 비춰볼 때 다소 헷갈리는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 민주당과의 공동여당으로서 지역발전에 실제적으로 기여하지 못한데 대한 반감이라고 분석한다. 소위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는 논리다. 실제로 충북은 16대 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자민련에 많은 것을 기대했으나 흡족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이는 결국 자민련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진 것이다. 충북은행 퇴출문제가 그랬고 호남고속철도 오송기점역 문제가 그랬다.

JP의 처신이 자민련 추락 불러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 이면의 상황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JP의 처신이다. 충북, 특히 청주의 지역정서는 명분을 중시한다. 이 명분이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현실적인 상황에서 상대의 운신을 선뜻 포용하지 못하는, 일종의 자기합리화가 강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외지인이 충북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병폐도 많다. 이러한 충북인의 내면에 깔린 정서를 건드린 것이 JP의 왔다갔다하는 정치적 행보라는 것이다. 소수 정당을 이끌며 기묘한 줄타기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JP에 대해 충북인들은 극도의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들러리 이미지를 벗지 못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치부(?)는 엉뚱하게 TV 드라마 때문에 더욱 부각됐다. 태조 왕건 드라마의 초창기에 청주 호족 아지태의 활약이 집중 부각되면서 극중에서 묘사된 그의 끊임없는 변신과 배신행위가 JP의 운신과 오버랩되는 바람에 자민련은 여론상 큰 손해를 봤다. 도민들의 밑바닥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그래도 애정은 남아 있다?”

결국 자민련은 충북에서 이렇게 추락하고 마는가. 이에 대해 답변은 지금으로선 곤란하다. 끊임없이 정치적 돌파구를 모색하는 JP의 향후 전략과 조만간 있게 될 정계개편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자민련에 대한 충북인들의 속내를 엿보게 한 한가지 사례는 있다. 지난 9월 충청리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한가지 눈길을 끌만한 결과가 나타났다. 정당 지지도에선 자민련이 5.4%로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16.1%와 10.3%에 비해 최하위로 나타났지만 혐오정당을 묻는 질문에선 도민들은 민주당 14.8%, 한나라당 12.0%, 자민련 7.7% 순으로 답해 오히려 자민련에 대해 가장 큰 호감을 보였다. 한 때 자민련에 가졌던 애정이 어느 한구석엔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다시 부풀릴 수 있는 것은 자민련과 JP 스스로의 변화된 모습이다. 분명한 소신과 신념을 갖고 도민들에게 어필할 때 상황은 바뀌어질 수 있고, 그 결정적 계기가 오는 6월의 지방선거다.
/ 한덕현 기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