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시중의 화제는 단연 이원종충북지사의 ‘불출마선언’입니다.

지지율이 50%를 넘는 상황에서 3선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였고 또 당선 역시 ‘따 논 당상’처럼 예상되었기에 이지사의 ‘폭탄선언’은 한마디로 일반의 허를 찌른 충격이었습니다.

불출마선언이 알려지자 그에 대한 칭송은 영하의 혹한을 녹일 만큼 뜨겁습니다. 시민들은 물론이려니와 평소 이지사에 덜 호의적이던 시민단체들마저 “훌륭한 결단”이라고 이구동성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특별시장에 관선 한차례, 민선 두 차례 충북지사라는 보기 드문 명망을 쌓은 이지사지만 이처럼 예외 없는 찬사를 받기는 처음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버림으로써 천하를 얻는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공을 이루고 이름을 얻으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 몸을 한가로이 하는 것이 오직 천도를 따르는 일이다(功成名遂身退天之道·공성명수신퇴천지도)”라고 말했습니다.

사기(史記)에도 “춘하추동의 네 계절은 각기 공을 이루면 가버리는 것처럼 사람도 성공하고 명성을 떨치게 되면 떠나가야 하는 법(四時之序成功自去·사시지서성공자거)”라고 쓰고있습니다.

사실 권력의 자리를 스스로 내 놓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권력이란 마약과 같아서 한번 맛을 들이면 버릴 수 없는 마력을 갖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거의 모든 권력자들은 자리에 연연하는 것이 속성입니다.

그런데 자리를 물러난다 해도 때가 있습니다. 힘을 가지고 있을 때 물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채근담(菜根談)에는 “일을 사양하고 물러서는 것은 마땅히 전성(全盛)의 때를 가려서 할 것이요, 몸을 두는 것은 마땅히 홀로 뒤떨어진 곳을 가려서 살지니라(謝事當謝於正盛之時 居身宜居於獨後之地·사사당사어정성지시 거신의거어독후지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떠날 때 떠날 줄을 알아야 한다는 지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도 서운함이 적고 남들도 아쉽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 않고 쇠퇴기나 실패하였을 경우에 마지못해 물러선다면 위신이 손상되고 행색이 초라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唐)나라 개국의 일등공신이었던 이정(李靖)은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달이 차면 기울 듯이 부귀가 과하면 패하는 것을 알고 나이도 많지 않았는데 글을 올려 물러가기를 청했고 태종은 그 덕을 높이 기려 당대(當代)의 법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공신(功臣)들은 물러나지 않고 있다가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고종이 즉위하자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보다 앞서 한(漢)나라 고조(高祖)때 장량(張良)도 먼저 은퇴를 하지 않았던들 한신, 팽월, 경포 등 다른 공신과 함께 여후(呂后)의 손에 죽었을 것입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고 욕심을 부리다가 불행을 당한 예는 우리 역사에도 부지기수입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 이승만대통령도 그랬고 박정희대통령도 그랬습니다. 두 사람이 살아있을 때 곡학아세하는 이들은 ‘건국의 아버지’니 ‘단군이래의 성군’이니 그렇게 말했지만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까.

이지사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도 인간인데 왜 고뇌가 없었겠습니까. 아직 연부역강(年富力强)하겠다, 당선 가능성 높겠다, 자리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지사는 스스로의 싸움에서 이김으로써 결과적으로 만인의 사표(師表)가 되었습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갖라는 이형기의 시처럼 이지사는 자신의 인생을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아름답게 끝맺음 하고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권력의 부나방이 되어있는 풍토에서 ‘버림의 미학(美學)’을 보여준 이지사에게 어떤 찬사를 보낸다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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