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 없으면 필수, 있으면 선택

정종택 인제대, 윤석용 한양대에서 학위 수여
연세대와 고려대는 대대로 주고받으며 우의 다져

대학 총·학장의 자격 요건에 반드시 박사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학교 연륜이 오래지 않은 대학들의 경우 학위가 없는 설립자가 직접 총·학장을 맡거나 정·관계 인사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총·학장을 맡기도 한다. 신생 대학들의 경우 중앙이나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학위보다 이른바 ‘간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충청대의 경우 1997년 3선 국회의원, 농수산, 정무, 환경부장관 등 장관만 5번을 역임한 정종택씨를 학장으로 영입해 나름대로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2001년에는 전문대 최초로 현역 대통령(김대중)이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는 등 위상을 높였다.

   

주성대의 경우에도 설립자인 고 윤석용씨와 도 교육감을 역임한 유성종씨가 번갈아가면서 이사장과 학장을 맡는 ‘투톱 시스템’을 운용하기도 했다. 영동대학교는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과 통상산업부 장관을 역임한 안광구씨를 총장으로 초빙했다.
설립자나 정·관계 인사들이 총·학장을 맡는 경우 실용적인 측면에서 활약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박사 학위가 없는 경우에는 알게 모르게 그 권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지적이다. 학위 수여식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는 가운과 모자를 통해서도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사모를 써본 적이 없는 총·학장들이 명예박사 학위를 통해서라도 권위를 세우고 싶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다. 박사 학위가 없으면 명예박사 학위가 필수라는 것이다. 혹여나 박사 학위가 있는 경우에도 명예박사 학위가 덧대어지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필수는 아니더라도 명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인 셈이다.

정종택 학장 2개대학에서 명박
서울대 법대를 나왔지만 박사 학위가 없는 충청대 정종택 학장은 명예박사 학위만 2개를 가지고 있다. 1997년 6월 청주대에서 명예행정학박사 학위를 받은데 이어, 1998년 6월 인제대에서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

충북대는 영동대의 전신인 전 영동공과대 총장 김재규씨에게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준데 이어 안광구 전 영동대 총장, 권영우 세명대 설립자 및 전 총장에게도 명박 학위를 수여했다. 충북대의 특징은 4년제 대학 총장에게만 명박 학위를 줬다는 것이다.

청주대는 정종택 충청대학장, 김광홍 전 옥천전문대학장, 김정길 전 경기대 법정대학장 등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줬다. 유성종 전 주성대 이사장 및 학장도 청주대에서 명박 학위를 받았지만 이는 주성대 학장을 맡기 전이었다.
대학 총·학장들로서는 박사 학위가 있든 없든 명박 학위 수여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이번에 주성대 정상길 학장의 명박 학위 취득설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정상길 학장은 “유명을 달리한 윤석용 전 학장도 서울(한양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땄다. 아직은 때가 아니지만 일반 박사 과정을 밟아서라도 박사 학위를 따겠다”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드물지만 대학 총·학장들끼리 명예박사 학위를 주고 받으며 우의(?)를 다지고 있는 학교도 있다. 연고전을 통해 전통의 라이벌로 통하는 연세대와 고려대는 명박 학위에 있어서 공생관계다.

두 대학은 50년이 넘도록 상대방 총장에게 명박 학위를 수여해 온 오래된 ‘관례’가 있다. 1955년 유진오 당시 고려대 총장이 연세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8년 박대선 당시 연세대 총장이 고려대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양 대학 각 8명의 총장이 학위를 주고받으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장 보다는‘박사님’이 좋아”
명예 바라는 기업인-돈이 급한 대학 이해 맞물려

지역의 기업인들이 한 장에서 세 장까지 적지 않은 돈을 내고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것은 명예박사를 받은 후 호칭이 사장에서 박사로 바뀌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기업 측에서 대학에 적극적으로 명박 학위 수여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돈만 있다고 학위를 남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애를 태우는 경우도 있다. 기금의 규모와 기부자의 사회적 공헌도 등을 놓고 ‘밀고 당기는’ 흥정이 벌어지기도 한다. 돈이 급한 대학에서는 전주(錢主)를 찾아 사냥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충북지역 대학의 경우에는 충북대에 기업인 명예박사들이 몰려있다. 김동수 (주)한국도자기 회장, 구자학 당시 (주)금성일렉트론 회장, 임광수 (주)임광토건 회장, (사)민병준 한국광고주협회 회장, 최승주 삼진제약 설립자, 전영우 (주)대원 대표이사, 송석우 (주)축산경제 대표이사 등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관계자는 “서로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로비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특수대학원이나 최고경영자 과정 등을 통해 이미 친숙한 관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적잖이 기부가 이뤄지고 학위가 따라가게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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