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달러를 놓고 벌이는 여야의 정쟁이 아주 거추장스러운 요즘이다. 남북이 손잡은 부산의 하모니에 묻혀 북한에 대한 비밀지원설을 폭로하는 쪽이나 이를 반박하는 측이나 서로 별볼일 없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이를 바라 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아주 떫다. 정쟁 자체에 이젠 신물이 났겠지만 그 보다도 싸움의 본말이 전도됐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여야가 피튀기게 다투는 4억달러의 딜레마는 잘못 거론됐다. 다시 말해 다른 시각에서 접근돼야 했을 문제다. 이 문제는 이렇게 풀었어야 했다. 정부와 여당은 뭔가 숨긴 것이 있다면 솔직히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고 야당은 지금처럼 남북정상회담의 의미 자체를 짓밟을게 아니라 그 절차상의 하자를 논리적으로 따져야 한다. 세계의 주목을 받은 DJ와 김정일의 만남이 한나라당에 의해 범죄행위 내지 뇌물대화로까지 매도되는 기막힌 현실이 당혹스럽다 못해 수치스럽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북한에 4억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퍼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샀다면 그럴 수도 있다. 톡 까놓고 말해 햇볕정책이란 결국 이런 것이 아닌가. 남북관계에서 우리가 통상 인용하는 동서독의 예를 들어 봐도 그렇다. 서독은 동독과 끈질긴 협상을 거쳐 숱한 우여곡절 끝에 1972년 ‘동서독 관계 기본조약’을 체결한다. 물론 기본조약은 동서독간의 접촉과 왕래, 상호협력 및 원조, 사적 불가침 등 소위 상호주의를 명시했지만 이후 서독이 주로 한 일은 상대적 빈곤국인 동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서독이 동독에 퍼준 통일비용이 600조에 달한다는 얘기도 있잖은가. 독일 통일의 물꼬를 튼 기본조약을 성사시킨 장본인이 서독 사회주의 정당을 이끈 사회민주주의자 브란트 수상이었던 점도 주목된다. 가설이지만 만약 DJ가 김정일을 만나기 위해 국민 몰래 4억원을 북한에 퍼줬다면 솔직히 시인하면 되고 야당은 그 절차상의 하자와 그 돈의 북한 내 사용처를 따져야 설득력을 갖는다. 지금같은 선정적인 폭로와 자기 기만적 대응으론 절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북한에 대한 4억달러 지원이 만약 남북정상회담 자리에서 논의됐다면 차라리 좋았다. 부도덕한 기업주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탈취당하고, 소련에도 거액의 차관을 뜯기는 마당인데 북한을 돕는 게 뭐 그리 대수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 당시 서독의 콜 수상과 만나 나눈 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 방문 전 역사적인 ‘남북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함으로써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노 전대통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만약 북한이 동독같기만 하면 남북관계의 정상화는 시간문제이고, 통일도 앞당겨질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뭔가 호의적인 답변을 기대했던 노태우는 콜 수상으로부터 곧바로 일격을 당한다. 콜은 기다렸다는 듯이 “북한이 동독처럼 되기만을 바랄게 아니라 남한이 먼저 서독같이 되려고 노력해 보시오”라고 충고했다. 순간 노태우의 얼굴은 벌겋게 일그러졌지만 당시의 상황은 국내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강만길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 이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거친 지금의 통일논의는 분명 사족이 필요치 않은 민족적 자주의식을 절실히 요구할텐데, 지금 여야의 무정견한 정쟁은 오히려 자기 마음먹은대로 전쟁을 벌이는 미국 패권주의에의 예속만 부추길 뿐이다.
1980년 봄 3주간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독일 여류작가 루이제 린저는 자신의 북한 방문기에 이런 말을 남겼다. 30여년전 전혜린에 의해 소개된 ‘생의 한가운데’로 잘 알려진 반 나치즘의 그녀는 한때 한반도평화통일 국제위원회 고문을 맡을 정도로 남북한을 오가며 한반도 문제에 천착했다. <양편(남한과 북한)의 사람들이 자극적인 선전에 의해서 공포와 불신, 그리고 증오를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면 양 체제는 평화적으로 공존할수 있을 것이다. 그 선전이라는 것이 세뇌나 다를 바 없고 그 왜곡의 정도야 선전가들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대중을 우둔하고 온순하게 만들기 위한 확실한 수단으로서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 양 체제는 함께, 그리고 서로를 향해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남북관계는 고사하고 안에서조차 대권에 사로잡힌 정치꾼들에 의한 선전 선동으로 매일 아침을 맞는다. 더 기분나뿐 것은 과거 공작정치의 화신 정형근의 부활이다. 그동안 납죽 엎드려 있던 그가 다시 한나라당의 저격수로 나섰다. 똑같은 말도 그의 입에선 핏발이 선다. 폭로의 선정성과 폐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만약 한나라당에 이성이 있다면 이런 저격수는 더 이상 활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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