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조각 모아 문화의 구슬 꿰기 <임병무>

지난 1990년대부터 '경제특구'라는 말이 나오더니 이제는 '문화특구' 또는 '문화벨트'라는 말이 솔솔 나온다. 좀 생경스럽기는 하지만 기존의 문화 자산을 연결해서 그 가치를 증대하고 여기다 새로운 문화인프라를 보태어, 국민교육은 물론 관광수입도 겨냥하자는 것이 일반적인 21세기형 문화전략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외국의 여행은 거의가 문화관광 코스다. 영국의 웨스터민스터 사원, 파리의 개선문, 로마의 콜로세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 볼거리의 대다수가 조상이 물려준 유산들이다.

여기에다 유명 예술인의 발자취도 한몫을 거든다. 프랑크 푸르트에 있는 괴테의 집, 헤밍웨이 등이 드나들던 파리 몽파르나스 거리의 카페, 폴란드 쇼팽 박물관 등이 거의 문화자산으로 자리잡으며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해외 관광은 대개 두 가지 큰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모습과 자연풍광이며 또 하나는 그 지방의 역사, 유물을 둘러보는 것이다. 관광에서 문화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 첫 번째 자리에 놓인다.

안타깝게도 고도 청주를 몸으로 입증해주는 청주 읍성은 일제초기에 헐렸고 박혁거세 원년에 세웠다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돌다리인 남석교(南石橋)도 땅속에 묻혀 구원의 손길만 기다리고 있다.

청주 읍성과 남석교가 아무리 역사적 자산으로 자리잡고 있어도 당장 복원하기는 어렵다. 청주읍성의 경우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없어진 문화재만을 아쉬워할 수도 없다.

잔존하고 있는 역사의 조각이라도 주워 모아 문화의 구슬 꿰기 작업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문화 또한 응집력이 있어야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 상당산에서 내려다 본 우암산 전경. 이 골짜기에 박물관, 어린이 회관, 동물원 등이 벨트를 이루고 있다. 청주문화의 벨트는 2~3개 권역으로 묶을 수 있다. 우선 상당구에선 우암산과 우암산 뒷자락으로 이어지는 국립청주박물관, 우암어린이회관, 천문대, 명암약수터, 상당산성을 잇는 문화벨트를 생각해볼 수 있다.청주시민들이 가장 즐겨찾는 우암산은 단순한 등산코스가 아니다. 우암산에는 2백여개에 달하는 불적(佛跡)이 있으며 삼한시대로 추정되는 우암산 토성이 있다. 두 개의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는 우암산 토성은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원경(西原京)의 치소(治所:행정의 중심지)로도 추정되는 곳이다. ▲ 문자의 거리 입구에 돌에 새겨진 세계 각국의 인사말
서쪽 벽은 등산객의 발길로 거의 허물어 졌으나 동쪽 벽은 그런 대로 잘 남아 있다. 쉽게 말해서 등산로를 따라 한바퀴 도는 코스가 바로 토성 벽에 해당된다. 등산로에는 돌멩이가 줄지어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토성 위에 다시 작은 담장을 쌓은 흔적으로 여장(女墻)이라 부른다.

우암산 토성은 그 옆의 당산 토성으로 이어지는데 중간에서 피곤하면 하산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역사의 바람을 호흡하면서 우암산을 오르내리면 등산의 맛이 더욱 깊게 우러난다.

요즘에 우암산에는 우리 나라에 섭생하는 각종 식물들을 모아, 생태공원을 꾸미고 있어 자연학습이라는 부수적 효과도 따른다. 등산에 별 무리가 없는 사람이라면 우암산을 넘어 명암 약수터를 거쳐, 상당산성 미호문(서문)으로 통하는 등산로를 이용하는게 제격이다.

상당산성 성둑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사방을 바라보면 시야가 훤히 티어 청주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위가 꽉 막힌 산성은 없다. 산성 자체가 요새이기 때문에 자연, 주위가 시원할 수 밖에 없다.

노약자나 시간이 많지 않을 경우엔 3.1공원에서 우암산 우회도로를 거쳐 약수터나 국립청주박물관으로 빠진다. 구 법원 네거리에서 명암지를 거쳐 가는 길이 있는데 이 코스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수터는 한때 청주의 유원지로 각광을 받았으나 약수가 식용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탓인지 요즘엔 인파가 그리 많지 않다.

약수터에서 오른쪽 길을 택하면 산성 고개를 지나 상당산성 남문에 도달한다. 상당산성을 관람한 후 되돌아 나오는 길에 보은 방면으로 가다보면 단재 신채호 선생을 모신 영당이 귀래리(고드미)에서 길손을 맞는다.

등산길이 됐던, 하산길이 됐던 청주백화점 앞 광장에 서 있는 국보 제41호인 용두사지 철당간(龍頭寺址鐵幢竿)을 꼭 둘러봐야 청주의 역사성을 알게 된다. 전국에는 여러 기의 철당간이 있으나 유일하게 이 것만이 국보로 지정돼 있다.

두 번째 벨트로는 철당간 ~정하, 마애불~정북동 토성을 잇는 코스다. 내덕동 새동네에서 북진하면 자연 암벽에 새겨진 정하마애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다. 마애불이란 자연암벽에 새긴 부처를 말하는데 양각된 것도 있고 음각된 것도 있으며 양각, 음각을 겸하는 경우도 있다.

전국적으로 마애불을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중 비로자나불을 마애불로 새긴 것은 정하 마애불이 유일하다. 비로자나불은 불지(佛智)의 무변광대함과 광명을 뜻하는 것인데 청주를 비롯, 진천, 괴산지방에 많이 남아 있다. 손모양(수인)은 왼쪽 검지손가락을 오른 손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부처가 복싱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바세계의 온갖 번뇌를 포용한다는 뜻이다.

충북선 철길을 건너면 정하와 정북을 가르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장꾼들이 이 길을 오가며 목을 축이었는데 물맛이 어찌나 좋은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는 것.

이곳에서 까치내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사적으로 지정된 '정북동 토성'을 만나게 된다. 성은 으레 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다. 읍성도 평지에 있으며 정북동 토성 역시 평지에 있다.

   
▲ 공연장, 전시장, 회의실 등 첨단시설을 갖춘 청주예술의 전당
희귀한 예이긴 하나 정북동 토성은 까치내 제방 아래에 있다. 하천변에 왜 토성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미호천 일대의 곡창지대를 확보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3세기쯤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이 토성은 우리 나라 토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네모 반듯한 토성이다.

그후에도 여러 차례 개축하여 사용했는데 이곳을 발굴 조사할 당시 판축이 어찌나 단단한지 포크레인 삽날이 잘 안 들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판축이란 흙을 다져 쌓았다는 뜻으로 그 단면을 잘라보면 마치 시루떡과 비슷하다.

흥덕구에선 아무래도 흥덕사지를 축으로 하여 문화벨트를 설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직지심체요절'을 찍어낸 곳이니 역사도시 청주의 간판스타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흥덕사터는 금당(金堂)과 유구만 정비하여 놓아 직지에 비해 상당히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직지와 모자(母子)관계에 있는 흥덕사터는 응당 옛 절집을 복원하여 향불을 피워 올리는, 살아있는 유적으로 관리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직지교를 건너면 바로 청주예술의전당으로 이어진다. 다리(橋)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대와 현대를 오갈 수 있는, 묘한 여운이 머문다. 1천3백 석의 객석을 보유하고 있는 청주예술의전당은 청주문화를 꽃피우는 산실이다. 그리고 전당앞 광장은 다목적 문화공간(공예비엔날레, 인쇄문화축제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조형물들이 너무 빽빽하게 들어서 컨셉(개념)은 잘 안맞지만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을 비롯하여 용두사지 철당간 복제품, 천년대종 등은 필히 둘러봐야 할 모뉴멘트다. 특히 천년대종은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기념사업으로 충청북도에서 2000년 1월1일 완공, 타종행사를 가졌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을 끄는 것은 '문자의 거리'가 조성돼 새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직지와 연관하여 청주예술의 전당과 세쌍둥이 건물사이 잔디밭에 세계 13개국의 언어 영역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문자의 거리'가 지난 2000년 가을에 준공을 보았다.

문자조형물에는 언어권별로 대표적인 속담, 격언을 새겼다. 가령 영어권의 경우 '어려울 때 친구가 진실한 친구다'라는 명구를 선택했으며 그리스어로는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을 각자(刻字) 했다.

각국의 문자는 묘비처럼 일괄적으로 새겨진 것이 아니라 언어권 별로 특성에 맞춰 조형성을 크게 강조했다. 이를테면 언어와 조각이 만남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두 곳을 둘러보고 난 다음 흥덕사지 옆의 '한국공예관'과 중부매일신문사 앞에 있는 '청주 백제 유물전시관'을 찾는게 일반적이나 순서가 뒤바뀌어도 흉거리는 아니다.

오히려 시대별로 보면 백제 유물전시관이 한참 앞선다. 마한(馬韓)의 토기 문화와 이른 백제의 철기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무심천 변에 있는 용화사 칠존불(七尊佛)과 청주 관문에 있는 부모산성을 돌아보는 것도 유익하다. <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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