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최고의 가사문학은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의 작품에서 찾아진다. 정철의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다. 그러나 쌍벽을 이룬 가사문학의 틈새에도 높게 솟은 봉우리가 여럿 있다. 영조 48년(1772)에 영월부사로 부임하여 단양팔경을 예찬한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의 단산별곡(丹山別曲)이 그러한 예 중의 하나다.

“장회촌 돌아드니 채운봉 반기난 듯/ 구름 속 뿌린 비난 그 아니 신녀(神女)런가/ 석로(石路) 빗긴 곳에 견여를 갈아메니/ 무협원성(巫峽猿聲)은 양안(兩岸)에 들리 난 듯/ 조도(鳥道) 삼천은 검각(劒閣)을 지나난 듯/ 송정벌 넘어들어 관부(官府)를 바라보니/ 우화교 무지개난 은하수를 꿰쳤난 듯/이요루(二樂樓) 봉서정은 신선의 거처로다/ 삼청(三淸) 복덕지(福德地)가 이곳이 아니런가/ 이은당(吏隱堂) 맑은 뜰해 나리 나니 조작(鳥雀)이라...”

1984년 건국대 김일근 박사에 의해 발견된 단산별곡은 가히 송강의 관동별곡과 쌍벽을 이룰만한 가사문학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남한강 수몰직전, 신광수 선생의 후손가에서 발견된 이 작품은 세로 21cm, 가로 163cm의 두루마리에 1행 16자내외 총 92행 국한문 혼용 반 흘림체로 씌어져 있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전문은 서사 본사 결사 등 총 188구로 산수를 즐기는 작자의 시상이 단양팔경을 따라 전개되고 있다.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장회 나루에서 하선하여 송정벌-우화교-이요루-봉두정-이은당을 지나 관부에 도착하는 과정, 하선암-중선암-상선암 등 단양팔경을 둘러보며 자연을 관조한 시상이 잇달아 펼쳐지고 있다.

단산은 단양의 별호. 국립청주박물관이 명암동 우회도로공사 구간에서 발굴 조사한 고려시대의 토광묘에서 나온 고려먹은 단산오옥(丹山烏玉)임을 명문으로 밝히고 있다. 즉 단산은 고려, 조선시대에 단양의 별호로 보편적으로 썼다.

석북문학의 진수가 단양에서 펼쳐지고 있는 만큼 단양은 이 관유문학(觀遊文學)을 사장하지 말고 단양의 역사성이나 문학성을 드높이고 더 나아가 ‘관광 단양’을 지향하는 데에 상당한 부가가치로 활용해야 할 것 같다. 단산별곡은 국문학적 가치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행간에는 국토사랑, 나라사랑 정신이 깃들어 있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2백여 년 전, 단양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수몰직전에 발견된 것도 상당히 기적적인 일이다. 단양팔경을 위한 역사적 문화재로 삼아야 함은 물론이라고 김일근 박사는 덧붙인다. 김홍도의 단양 팔경 그림과 더불어 석북선생의 단산별곡은 단양의 옛 모습을 예술을 통해 감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석북선생(1712~1775)은 영조 때 널리 알려진 문장가다. 자는 성연(聖淵)이고 호는 석북(石北) 또는 오악산인(五嶽山人)으로 불린다. 5세 때 글을 지은 신동이었으나 운이 없었는지 과거에는 여러 번 낙방한다.

1746년 한성시(漢城試)에서 2등 급제하였는데 이 때 지은 관산융마(關山戎馬)는 모범답안으로 그 당시 문객 사이에서 널리 읊어졌다. 그는 관직과 칩거를 거듭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가산 노복을 청산하고 청빈낙도를 추구하면서 지은 서관록(西關錄)은 후에 관서악부(關西樂府)를 짓는 계기가 되었다.

1764년 금부도사가 되어 제주도에 머물면서 제주의 민속, 풍물을 읊은 탐라록(耽羅錄) 역시 불후의 명작이다. 200여 년 시공을 초월하여 단양에서 만나는 단산별곡의 감회가 새롭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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