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 사건을 보면서 드레퓌스 사건을 떠올린다. 두 사건에는 여러 가지 유사한 점들이 있다. 이들 두 사건은 국가 전체를 뒤흔들었고 국가의 명운(命運)이 걸린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허위와 진실에 대한 공방이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리고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나는 한국인들이 냉정과 이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인식하여 한국의 과학이 후퇴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이 글을 쓴다.  

드레퓌스(Alfred Dreyfus) 사건이란 프랑스의 포병 대위 드레퓌스에 얽힌 이야기다. 1894년 프랑스에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다. 필적을 바탕으로 유태인 드레퓌스가 독일의 간첩이라는 단정이 내려졌고 사법당국이 그를 수감(收監)시켜 버린 것이다. 반유태주의자, 군국주의자, 우파 등이 무조건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래도 드레퓌스가 죄인이다’라는 식으로 왜곡시켰다. 위조된 사건임이 밝혀졌어도 막무가내였다. 비이성적 광기(狂氣)가 작동되었던 것이다.

이 때 공화파와 양심적 지식인들 그리고 에밀 졸라와 같은 예술가들이 나서서 드레퓌스 석방 운동을 벌였다. 온갖 논란 끝에 대통령까지 나서고 최종 심급의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이 날 때까지 프랑스는 온통 이 문제로 국론(國論)이 분열되기까지 했다. 아주 명백한 사실을 두고서도 이런 비이성적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진실은 밝혀졌고 드레퓌스는 석방되었으며 프랑스는 이성을 되찾았다. 오늘날 프랑스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런 고통 속에서 얻어진 것이다.

황우석 교수 문제도 이와 유사한 점이 있다. 본질, 즉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명백한데도 ‘그래도 황우석이다’라는 식의 착란(錯亂)이 난무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논문조작이라는 명백하고도 단순한 최종의 결론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배아 줄기세포 복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느냐는 본질이 아니다.

과학계에서는 거짓말을 한 원천기술에 대해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과학자의 기존 연구 성과가 인정되더라도 과학자로 상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황교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고 한다면 한국인들은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원천기술도 결국 무용지물(無用之物)로 전락하게 된다.

한편 드레퓌스 사건과 마찬가지로 황우석 사건에는 갖가지 음모론이 대두했다. 천주교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했다느니, 경쟁 생물학자들의 음해가 있었다느니, 좌파의 공격이라느니 등의 실로 비이성적인 음모론들이 등장했다. 영롱이와 스피너를 탄생시킨 대과학자에 대해서 비전문가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모조리 음모라는 식의 폭력이 설쳤다.

심지어 생명공학의 세계 최고를 시샘하는 미국이나 일본에 유리하게 되므로 황우석 교수를 비호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황당한 주장까지 등장했다. 박수를 보내주어야 할 문화방송(MBC)에 대해서는 공연히 사건을 버르집어서 국익(國益)을 해친 집단이라는 식의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 얼마나 비이성적인가. 집단적 무의식인 동시에 광기다. MBC가 아니더라도 시간문제일 뿐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처럼 황우석 교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조차 각종 음모론으로 왜곡시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모든 사건을 음모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관습이 있다. ‘어떤 사건의 이면에 무슨 음모가 있다’라는 식이다. 과학적 사실은 누가 음모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시각에서 이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된다. 과학은 감정이나 민족주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情神)이 인정되는 인문과학과 달리 자연과학의 과정과 결과에는 감정이나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수 없다. 비유컨대 우파가 이룩한 과학적 사실을 좌파가 부정할 수 없고 좌파가 왜곡한 논문조작을 우파가 인정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줄기세포(stem cell)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가 논문을 조작했느냐 아니냐라는 것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과장이나 왜곡도 인정받지 못한다. 논문조작을 한 것으로 밝혀진 과학자는 그것으로 끝이다. 황우석 교수는 스스로 2개의 줄기세포 사진을 11개로 조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황교수는 사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만 본질을 흐리게 만들면서 ‘세포 바꿔치기’, ‘줄기세포 배양 원천기술 보유’, ‘검찰조사 요청’, ‘세포 오염’, ‘백의종군’ 등 비과학적인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과학의 냉정한 세계를 잘 모르는 국민들은 ‘그래도 황우석에게 기회를’이라는 민족적 감정으로 그를 비호했다. 개인영웅의 신화가 지속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당연히 한국인은 황우석 교수를 용서할 수 있다. 문제는 과학이 황교수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과학계 또한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황교수를 비호하고 동정해도 이미 끝난 상황이다.

가슴 아프지만 황우석 교수는 과학자로는 끝이다. 세계가 인정하지 않을 것이 확실한 황우석 교수에 집착하는 것은 국가와 민족에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연구는 팀이 하는 것이지 황우석 교수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 대한 인간적 동정은 무한해도 좋지만,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망치는 비이성적 사고는 중단되어야 한다. 드레퓌스 사건의 망령(亡靈)이 사라지기를 기원하면서--.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