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고 있는 충청권,그러나 조용한 지방
한나라당 몸조심, 민주당 눈치보기, 자민련 위만 쳐다봐

대선 정국에서 충청권이 갑자기 주목받는 반면 지방정가는 완전히 죽어 있다. 각 당이 본격적인 대선체제로 돌입했어도 지방정가의 움직임은 오히려 한가하다. 각 당과 후보의 이해관계가 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충북의 상황은 이런 점에서 아주 유별나다. 가장 잘 나가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2일 이회창후보의 청주방문에 이어 16일 충북 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을 갖는 한나라당은 여전히 여론의 우위를 점하면서도 행보에 있어선 아주 신중하다. 민주당의 향후 진로와 정몽준신당의 ‘얼굴’이 아직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선수를 쳤다간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다. 썩은 고목인 자민련이지만 JP의 입김이 아직 충청권에 잔존하는 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지난달 25일엔 이회창후보가 JP의 동생 빈소를 조문하는 등 ‘관리’에만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이회창의 JP관(觀)은 여전히 97년 대선의 악몽에 머물러 있다. 당시 이후보는 JP를 DJ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영호남의 지역구도하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충청권 표를 잃었고 결국 간발의 패배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동안 지역에서 꾸준히 나돈 자민련의원의 한나라당 영입설은 이같은 맹점을 보완하는 해법으로 제기될 수도 있다.

노무현은 盧風의 재현을 충청권에서?
한나라당의 몸조심 이젠 한계 가능성

그러나 몸값을 높이려는 JP는 여전히 묵묵부답이고 설령 자민련과의 당대 당 통합을 모색한다해도 당내는 물론 수도권 등 다른 지역의 반발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때문에 한나라당의 지역 움직임은 본격적인 세확산보다는 당내 결속에 비중이 실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30일 청와대와 정부청사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는 이른바 노무현의 충청권 플랜이 발표되고, 최근 충청권에서조차 이후보의 지지도가 정몽준에 뒤진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한 관계자는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노무현이 선대위 출범식에서 충청권에 러브콜을 던진 배경엔 노풍(盧風) 재점화의 진원지를 충청권으로 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숨겨져 있다. 아직은 가설일지 몰라도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얘기다. 실제로 충청권에서 다시 바람이 불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풍의 타지 확산은 불문가지다. 충청을 텃밭으로 여겼던 이회창의 입장에선 복장터질 일이 아닌가. 문제는 또 있다. 정몽준의 가세다. 지역정서상 충청권에서의 정몽준 표는 노무현보다는 이회창 표를 잠식할 공산이 크다. 여론조사에서 이회창과 정몽준이 거의 동등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한나라당 입장에선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뭔가 조바심을 낼 것이다”고 내다 봤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몸조심은 민주당과 자민련의 방향이 가시화될 때까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이 세확산에 나서 의원영입을 시도할 경우 예상되는 당 대 당 대결구도는 지금의 민주당 내분을 조기 잠재울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생각해도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내홍이 길면 길어질수록 유리하다. “어쨌든 민주당과 자민련 , 그리고 정몽준 신당의 노선이 어느정도 결정돼야 충북에서 우리 당의 대외(對外) 전략이 본격 가동될 것이다. 타 당과의 연대 내지 통합이나 현역 의원에 대한 개별영입도 그 때 가서 구체적으로 검토할 사항이다”는 당 관계자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내분은 양다리 전략 때문
지방에선 여전히 눈치보는 ‘악순환’

민주당 역시 도내 지방정계에선 손을 놓은지가 오래다. 현역의원은 물론 원외 지구당위원장까지 중앙당의 풍향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개별 차원의 활동에만 매달린다. 친노(親盧)를 표방한 노영민위원장(청주 흥덕)만이 소신을 밝힐 뿐 대부분 아직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 중앙당의 친노 반노세력의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자신들의 향후 행동(?)을 좀체로 시사하지 않는다. 지방정계에서도 민주당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당의 분열여부. 비노 반노세력들의 운신이 가닥을 잡아야 도내의 공조직과 그 책임자도 물타기 처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상황에서 섣불리 행동했다간 외적 요인에 의해 자칫 정치력 자체를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후과정에 대해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솔직히 말해 지금은 정치 고단자도 처신하기가 어렵다. 노무현이 대선캠프를 본격 가동시키고, 반 노무현측 역시 세규합에 나서고 있지만 어느쪽이 주도권을 잡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방에서야 향후 존립의 근거는 전적으로 중앙의 변수에 달렸다. 답답한 것은 현재 기싸움을 벌이는 양측이 서로 시종일관 양다리를 걸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면돌파를 공언한 노무현도 반대 세력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지 못하고, 반대 그룹 역시 탈당이건 잔류건 선택을 미룬다는 것이다. 반대파의 경우 밖으로는 차후 정몽준과의 합당을 전제로 동조자 규합에 나서면서도 탈당 등 결정적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집단 행동은 노무현측에 큰 타격을 입히겠지만 실은 스스로에게 더 심각한 부담감으로 다가올 게 뻔하다. 별도 살림을 차려 봤자 지금으로선 국민적 지지를 확신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 지방에서 단호하게 처신하기가 가능하겠는가. 아직까지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루에 여러번 생각이 바뀔 것이다. 실제로 자고나면 중앙의 정치상황이 변하지 않는가.”

자민련, “차라리 간섭이라도 했으면”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는 없어

이와 관련, 현재 한나라측이 도내 민주당 현역 의원에 대한 영입작업을 중앙당 차원에서 시도한다는 억측이 제기되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한나라당 충북도지부 이원호 사무처장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때가 안 되었다는 사실이다. 중앙당 차원의 의원영입 추진은 도지부에선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치인 개인간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만들어진 억측일 것이다”고 말했다.
도내 자민련의 상황은 더 황당하다. 지금의 당운영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드웨어만 일부 있고 소프트웨어는 전혀 없는 상태다. 이미 오랫동안 당의 운영이 공전하면서 도지부와 지구당등 공조직의 책임자들도 아예 위만 바라 보는 처지다. JP는 지난 30일 중앙당의 핵심 사무처 직원들을 불러 향후 자민련의 역할론을 강조하며 경거망동(?) 내지 부화뇌동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사표시마저 지방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답답하기야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겠나. 당의 존립문제가 달린 외부세력과의 연대 내지 통합여부가 아직 미궁을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선 계속 기다리며 관망하는 게 상책이다. 목표설정이 안 됐기 때문에 행동반경도 최소화하고 있다. 실제로는 개점휴업 상태다.” 당 관계자의 이런 푸념은 그러나 독자 존립이 사실상 힘들 게 된 자민련 생존술의 왕도를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무현의 충청플랜, 자민련에 청신호
충청권 선점 경쟁 JP 몸값 올릴수도

자민련의 도내 공조직은 지난 6.13 지방선거 때 반짝 움직였다. 심각한 당세위축을 실감하면서도 이원종지사의 탈당을 역으로 당의 응집을 유도하는 계기로 삼았고, 또 도지사 선거에서 선전한 구천서 전의원의 흡인력이 한때 당을 추스르는데 기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거품(?)이 빠졌고 공조직의 관리도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한 지구당 관계자는 “귀찮은 간섭이 될지라도 차라리 위로부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는 지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공식적으로 내려 오는 게 아무것도 없다. 당이 처한 입장을 이해한다하더라도 어느 땐 섭섭하기 그지 없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지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자민련에 요즘 한가지 청신호가 울렸다. 노무현의 충청권플랜 발표를 계기로 각 당과 후보가 충청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표밭관리가 목적이겠지만 자민련으로선 기다렸던 호재임엔 틀림없다.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충청권에 시선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자민련과 JP의 운신과 직결된다. 일각에선 JP의 승부수가 임박했음을 예단하는 성급함마저 보인다. “어쨌든 현역 의원 14명을 갖고 있고, 한때 공동의 정부를 이끌었던 정당인데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의원개별영입 가능성 등 갖은 음해를 가했지만 이 마당에 흩어지면 공멸한다는 것을 의원 스스로가 더 잘 안다. 집단으로 움직여야 그나마 정체성을 인정받을 것이고 서서이 그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대개 이런 식이다.
어차피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도내 자민련측이 요즘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는 대상은 정몽준 신당이다. 이회창의 한나라당과 노무현의 민주당이 JP와 손잡을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당내 반발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JP-정몽준간의 교감을 우선시하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천명한 정몽준 신당에서도 JP와의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큰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가장 역동적인 활동은 민노당
노조원 중심 전방위 노력 기울여

지난 30일 신당창당 추진위원회 개소식을 가진 정몽준 당에 대한 도내 인사들의 행보가 많은 궁금증을 안기고 있다. 지역 인사중엔 김진영 전의원이 개소식에 참석한 후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김 전의원은 소위 정주영 당인 통일국민당을 업고 92년 14대 총선에서 당선된 인연을 갖고 있다. 정몽준의 충청권 공략이 현재 물밑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아직 충북 인맥은 부상하지 않았다. 충북에선 청주권을 중심으로 ‘정사모’의 결성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최근 정종택 충청대학장에게 지역의 많은 시선이 쏠렸다. 실제로 본관은 다르지만 정씨 문중에서 적극적인 콜이 있었던 것. 정학장의 본관은 영일이고 정몽준은 하동이다. 정학장은 “지난 30일 신당창당 추진위원회 개소식에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고사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정치적 행보를 절대 안 할 것이다. 학교 일에만 충실할테니 괜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학장은 정몽준과 각별한 사이일 뿐만 아니라 이회창과 서울대 동기동창, 그리고 노무현과는 과거 국회 노동위에서 같이 활동한 인연이 있다.
지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쪽은 이것저것 눈치볼것없는 민주노동당과 그 지원세력인 민노총이다. 세확산을 위해 현재 당원과 노조원을 중심으로 전방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민노당 만큼 선명성을 가진 정당도 없다. 이번 만큼은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이정표를 세우겠다는 의욕에 가득찼다. 막상 TV토론이 본격화되면 권영길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급상승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확인됐듯이 유권자의 주권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17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을 목표로 하는 만큼 후보의 지지도를 최상으로 끌어 올리는데 전력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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