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vs 정 엇박자 속 ‘표심’ 해석놓고 ‘아전인수’
87년 ‘DJ-YS 단일화’ 같은 명분없어 여론 조사에 집착 … 노 “절대불가” 정 “한나라당과도 가능”

기본적으로 후보단일화론은 노 후보에게는 악재이고 정 의원에게는 호재다. 정 의원과 노 후보의 지지율 격차와 당내에서 단일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누구인가를 감안할 때 현시기 후보단일화론은 곧 정몽준 의원으로 단일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부상하고 있는 후보단일화론을 단지 ‘노무현 흔들기’로만 치부하기에는 곤란한 점이 있다. 정치적 공방을 벗어나 일정하게 단일화를 바라는 바닥민심이 실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노 후보는 추석 이후 실시된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보다도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또 그동안 압도적으로 노 후보에게 지지를 보냈던 호남지역 민심이 정 의원과 노 후보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추석 이후 노무현-정몽준 간의 후보단일화론이 급부상하는 데는 네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강력한 이회창 후보의 존재다. 이 후보는 지난 8월 이후 약 30% 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병풍(兵風)으로 인해 이 후보에게 불리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이는 이 후보가 최소한 30%대의 견고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투표에 꼭 참여하는 50대 이상의 노년층이 압도적으로 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후보의 실제 지지율은 약 40%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둘째, 추석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이 하락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은 23일 실시한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서 다자구도일 경우 29.8%의 지지율을 얻어 이 후보(31.7%)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뒤졌으며, 24일 실시된 <동아일보>-KRC 조사와 <중앙일보> 자체조사에서도 각각 28.5%와 30.9%로 이 후보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뒤졌다.
셋째, 노-정의 단일화가 일정정도 파괴력이 있음이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자구도에서는 모두 이 후보에게 뒤지는 정 의원과 노무현 후보가 둘이 힘을 합쳐 한 명을 내세울 경우 이기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정 의원은 이미 추석 전 여론조사부터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노 후보도 SBS-TNS 여론조사(9월 23∼24일 조사)에서는 42.5%(노) 대 39.4%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민주당 내에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뚜렷한 반노(反盧)·비노(非盧) 그룹의 존재다. 이들은 노 후보가 국민경선을 통해 정통성을 가진 대선후보가 됐음에도 약 150일 동안 끊임없이 노 후보의 지위를 흔들어왔다. 그동안 통합론 또는 신당론 등을 주장했던 이들은 이제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들며 현실 정치공간에서 후보단일화를 압박하고 있다.

일정하게 흐르는 단일화 민심

노 후보와 정 의원의 호남지역 지지율을 살펴보면 <문화> 조사에서 50.7%(노) 대 23.3%(정), <한국> 조사에서 43.0%(노) 대 25.4%(정), <중앙> 조사에서 43.8%(노) 대 33.4%로 노 후보가 앞서고 있지만 정 의원의 지지율 또한 만만치 않게 올라갔으며, <동아> 조사에는 정 의원 36.1% 대 노 후보 30.6%로 오히려 정 의원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호남의 민심은 ‘누구든 이회창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재창출하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단일화에 대한 일정한 민심이 있다는 것은 노-정 단일화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노-정 단일화의 찬반 여부를 묻는 <문화> 조사에서 49.4%가 ‘찬성한다’고 답했고 34.2%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특히 호남지역의 경우 ‘찬성’의 비율이 72.4%로 압도적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민주당 내부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9월 23일 오전 추석 연휴 이후 처음 열리는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자리. 배기선 기조위원장은 추석 민심에 대해 이렇게 발제했다.
“추석에 확인된 민심은 두 가지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당의 당내갈등과 분열을 하루빨리 정리하라. 둘째는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의원을 가능한 한 합치라는 것이 민심이었습니다.”
배 위원장의 발제는 당내에 흐르는 두 가지 기류, 즉 노무현 선대위를 중심으로 한 단결론과 노-정 단일화론을 공평하게 제시한 것이었다. 곧 최고위원들은 둘로 패가 갈려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역시 결론을 내기는 힘들었다.
기자는 ‘노-정 후보단일화’에 대해 민주당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하면서 재미있는 두 가지 똑같은 말을 들었다. 궁극적으로 노-정 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한 당직자는 “죽 쒀서 개 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여기서 ‘개’는 물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한나라당으로 정권을 넘기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는 뜻의 속된 표현이다.
반면 민주당이 후보를 정 의원에게 내주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한 당직자도 역시 “죽 쒀서 개 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표현한 말은 똑같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 ‘개’는 이 후보가 아니라 정 의원을 가리킨다. 민주당이 후보를 정 의원에게 내 주려고 그 진통을 겪으며 국민경선을 치르고 당정 분리 등 정치개혁을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의미다. 기본적으로 전자(단일화)는 ‘실리’를, 후자(노 후보 중심)는 ‘명분’을 강조하고 있다.
비슷한 경우는 과거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나타난다. 단일화 주장이나 반대 주장이나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훈을 얻는 대상은 다르다. 단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87년 YS-DJ 후보단일화 실패를 강조한다. 그로 인해 정권이 어부지리로 노태우에게 넘어간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명 ‘87년 후단 실패의 반면교사’다. 단일화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97년 DJP연합을 강조한다. 서로 이질적인 DJ와 JP의 연합으로 정권을 교체하기는 했지만 지역구도는 더욱 강화됐고 DJ정권은 소수정권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으며 개혁을 충분히 수행할 수 없는 부작용에 시달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일종의 ‘97년 DJP 연합의 학습효과’다. 결론적으로 노-정 후보단일화는 찬성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이회창 후보를 이길 수 있는 ‘묘약’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당장은 달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몸에 해로운 ‘독약’이다. 과연 단일화는 묘약일까 독약일까.

노무현과 정몽준의 속내

문제는 당사자들의 속내다. 단일화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하나는 민심이나 주변의 강력한 뜻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최종적으로 당사자들의 결단이 있어야한다. 현재 전자는 어느 정도 감지되고 있으며, 대선이 가까울수록 현 3강 구도가 지속되는 한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자는?
노 후보는 ‘단일화 불가’ 견해가 확고해 보인다. 9월 23일 까지만 해도 노-정 단일화에 대해 “그 문제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곤란하다. 당내 소수의견이라도 여지를 남기고 가고 싶다”(<프레시안> 인터뷰)며 여지를 남겼다가 24일에는 “정 의원과 나는 살아온 길이 다르고 함께 한 사람들이 다르다”면서 “안하겠다”고 단호히 말했다(<중앙일보> 인터뷰). 9월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1) 재벌경제를 그대로 지지하는 사람을 지지할 수 없고 (2) 부정한 돈을 숨길 수 있는 수많은 재벌 친인척을 가진 정치인을 신뢰할 수 없다는 ‘불가 이유’를 밝혔다.
반면 정 의원은 조금 열려 있기는 하지만 모호하다. 정 의원은 9월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어느 쪽과도 단일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나아가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단기필마인 내가 양자대결을 하면 내가 이기는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나오는데, 왜 한나라당에서는 재경선이나 후보단일화 논의가 안나오는지 모르겠다”고 은근히 한나라당과의 연대 뜻을 비쳤다. 이같은 정 의원의 입장은 노 후보와의 단일화를 열어놓기는 하겠지만 한나라당의 후보도 될 수 있다는, 민주당의 입장에서 볼 때는 치욕스러운 발언이다.
대선을 약 80일 남겨놓은 현재, 물밑으로 흐르는 단일화론이 결국 흐지부지 될 것인가, 아니면 땅 위로 분출할 것인가. 정치권에서는 세 가지 변수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고있다.
가장 크게는 여론의 추이다. 현재와 같이 3강(이-정-노) 또는 2강(이-정)1중(노) 구도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단일화론은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단일화론자인 김영환 민주당 의원은 “만약 당사자들이 단일화를 안 할 경우 민심이 자연스럽게 단일화를 해버릴 것이고 상층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관망파’ 민주당 의원들이 어떤 쪽으로 의견을 정리할 것인가다. 특히 노 후보 중심의 선대위 세력 및 정몽준 신당과의 통합수임기구 구성을 요구하는 세력 사이에서 관망 태도를 보이고 있던 의원들이 이제는 어느 한쪽으로의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선대위 홍보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경재 의원은 “향후 한달 간의 노 후보 지지율 변화가 중간 그룹의 입장정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10월 내에 노 후보 지지율을 30%에 근접하게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셋째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 변화 추이다. 만약 병풍 등이 결국 ‘넘버 1’인 이 후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게 되면 의외로 단일화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노-정 후보단일화의 최종 결론은 대선 직전인 11월에 가서야 날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