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먹거리 이야기<황규호>

한반도를 놓고 흔히 북부, 중부, 남부로 가른다. 그 중부지역 내륙 깊숙한 분지(盆地)안에 든 도시가 청주다. 씨줄과 날줄을 그어 좌표를 정확히 따져서는 동경 127도 22분~32분, 북위 36도 35분~41분 사이에 있다. 그러나 중부지역 치고는 겨울철 추위가 너무 매섭다. 저 멀리 북위 41도 선이 지나가는 함경도 영흥만(永興灣) 겨울의 1월 평균 기온 영하 4도를 맞먹는다.

그런 날씨는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음식물과는 불가분의 관계라서 날씨가 맛을 좌지우지할 수밖에 없었다. '겨울철 반양식(半糧食)'이라는 청주의 김장이 간간짭잘한 것도 알고 보면, 날씨 탓이다. 누군들 고향의 맛을 낮잡아 말하겠는가만, 청주의 김장은 간이 알맞기로 소문이 나 있다. 젓갈이라야 기껏 새우젓이었으니, 걸죽 할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아무리 시어 꼬부라져도 별다른 잡내를 풍기지 않는 먹거리가 청주의 김장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물에는 지역적 풍토성(風土性)이 짙게 배었다고 한다. 청주의 풍토는 소백산맥과 차령산맥, 남쪽 멀리 노령산맥 지맥에 가린 지리적 특성을 깔고 이루어졌다. 금강으로 흘러드는 미호천 물줄기 이웃이 낮고 평평할 뿐 거의가 올망졸망한 산에 둘러 싸였다. 그 미호천 유역은 예로부터 들이 넓어 쌀농사를 근간으로 한 곡창지대였다는 사실도 청주 나름의 풍토를 이루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니까 식생활 관습은 농업기반을 바탕으로 계절의 순환성(循環性)과 풍토성이 어울려 형성되었던 것이다.

내륙의 겨울은 길었다. 그 긴긴 겨울날 행여 움 속에 갈무리해 두었던 푸성귀가 모처럼 밥상에 오르기라도 하면, 새 맛이 났다. 무생채나 배추 겉절이는 별미였고, 양념간장을 곁들인 무밥도 입맛을 돋웠다. 그렇듯 입맛을 돋운 까닭은 흙에 묻어 둔 뿌리에서 움튼 싹파가 들어갔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먹거리가 흔해 빠진 지금 지나간 날을 뒤돌아보면, 그 시절 풋풋하게 다가왔던 파 냄새가 그립다.

그래도 겨울의 끝은 있었다. 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보인 봄이 파랑상(波浪狀)의 구릉지(丘陵地) 청주에도 이내 찾아들었다. 우암산 자락 낮은 언덕에도, 무심천 이웃 들녘에도 봄이 왔다. 그리고 나면, 대지의 봄기운 아지랭이 속에서 들나물이 돋아났다. 그 무렵 애쑥을 뜯고, 된장을 걸러 부어 끓인 쑥국의 맛과 향기를 청주 사람들은 다 안다. 그리고 움에서 막 꺼낸 씨감자를 썰어 넣으면, 쑥국 맛은 한결 좋다. 거기다 벌금자리 겉절이 한 가지를 더 얹으면, 밥상은 온통 봄이었다. 들녘마다 지천하는 지칭개를 캐어 으깨고, 생콩가루를 묻혀 끓인 된장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더러 있을 것이다.

청주는 동해를 품에 안은 관동과 더불어 같은 중부지역이다. 그러나 동해는 멀고, 서해도 가깝지 않은 내륙이다. 여간해서 싱싱한 생선을 구경하기 어려운 내륙인 지라, 소금에 절인 자반이 고작이었다. 자반 고등어가 짜기는 했으나, 풋고추와 감자를 넣어 맵게 조려 맛을 냈다. 땀을 주체하지 못하는 내륙의 여름철 음식치고는 늘 별미였던 고등어조림은 볶은 콩자반과 더불어 들밥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조기 또한 자반이었고, 조기 머리도 버리지 않았다. 제사 때 찐 조기 머리를 칼로 곱게 다진 다음 갖은 양념을 넣어 무치면, 어느 밑반찬 부럽지 않은 건건이가 되었다.

추어(鰍魚)는 미꾸라지를 가리키는 한어다. ꡐ고기 어(魚) '자'와 '가을 추(秋)'자가 어울린 것을 보면, 가을과 인연이 닿는 모양이다. 조선시대 말기에 간행한 해동죽지(海東竹枝)라는 책에 적기를 "서리가 내릴 무렵에 두부를 만들어 미꾸라지를 넣고…"라고 했다. 가을 두부와 미꾸라지 이야기가 보인다. 어떻든 미꾸라지는 가을걷이를 다 끝낸 늦가을 논배미에서 잡아야 제 맛이 난다.

소금을 뿌려 해감을 게워낸 미꾸라지를 삶은 뒤 양념과 야채를 넣어 끓인 국이 추어탕이다. 그런데 청주 본디의 추어탕에는 향신료인 산초를 치지 않았다. 그 대신 밀가루를 묻힌 국화잎 몇 장을 맨 나중에 넣어 끓였다. 그리고 부뚜막에서 잘 익은 가양식초(家釀食醋)한 방울을 떨구어 밥을 말면, 추어탕 한 그릇이 게 눈 감추듯 뚝딱이다. 청주 추어탕의 참 맛을 지금 사람들은 누구 몇몇이 알랴….

그렇듯 향토성을 지닌 음식들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 교통의 발달은 향토 고유의 음식을 외지로 내몰아 거의 보편화  되었다. 그런데 청주에는 아직 특유의 음식 몇 가지가 남았다. 청주 서문동의 올갱이국과 남주동의 해장국이 그것이다.

올갱이는 다슬기과의 하나인 고동의 일종으로, 1급수 맑은 물에서만 자란다. 청주를 멀리서 감싼 소백산맥 깊은 골짜기 그 산지다. 해감을 토하고 난 올갱이를 초벌 삶아 먼저 바늘로 속살을 빼낸다. 그리고 올갱이 삶은 물에 쌀뜨물을 부어 끓이다가 부추나 아욱을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밀가루와 달걀물을 묻힌 올갱이살을 넣고, 곱쳐 끓여야 비로소 한 그릇의 올갱이국이 나온다.

청주 올갱이국이 요즘 뜨는 까닭은 공력과 정성이 듬뿍 밴 향토음식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또 국맛이 맛깔스럽기도 하거니와 청주말고는 다른 데서 좀처럼 맛보기가 어려워 희귀성 기호식품이 되었다. 더구나 성인병에 효험이 있다는 입소문은 올갱이국 인기를 한몫 더 거들었다.

▲ 생전에 청주버섯찌게를 즐겨찾던 운보 김기창화백이 남긴 글씨(경주집) 신경통과 빈혈, 시력, 간기능에 효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모두가 살만하게 되어 너나없이 건강을 챙기고, 맛을 찾아다니는 시절이다. 그래서 감칠맛 나는 버섯찌개도 청주의 명물로 자리잡은 지가 오래다. 표고버섯에 느타리버섯, 팽이버섯, 양송이 따위의 버섯만도 네가지가 들어간다. 또 갖가지 양념과 채소에 다진 쇠고기까지 들어간 버섯찌개는 열량이 아주 적어 비만에는 그만이라고 한다.예부터 사람들은 술로 시달린 속을 푸는 국물음식 모두를 아울러 해장국이라 했다. 고려 말기의 중국어 회화교본인 노걸대(老乞大)에 나오는 성주탕(醒酒湯)을 해장국의 원형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고추가 들어오기 이전이어서 물론 얼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는 "밤 지낸 빈창자에 술국밥을 말아먹는 맛이란 천하의 행복을 독차지한 성싶다"는 말로 해장국을 예찬했다. 그가 즐겼던 서울 청진동 해장국이 유명했다 지만, 50년 전통의 청주 남주동 해장국도 별미 중 별미다. 3대째 손맛을 잇는 남주동 해장국은 어른들 입맛에 착 달라붙게 얼큰하면서도 칼칼하게 끓여낸다. 누린내가 감돌지 않는 남주동 해장국의 풍미는 장맛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했다.청주 남주동은 본래 닷새장이 열리던 장터다. 1943년 일제 때 쇠전 인근에서 문을 연 남주동 해장국집은 개업 당시는 새벽 '반짝 장사'를 했다. 새벽 쇠전에 나온 소장수나 거간꾼, 소를 팔러 왔거나 사러 온 시골 농사꾼들이 단골이었다. 그래도 장날 만큼은 점심 무렵까지 장사를 했지만, 여느 날은 새벽서 아침나절까지만 국을 끓였다. 월탄 박종화의 말마따나 '밤 지낸 빈창자의 술국밥'을 고집했던 것이다. 사골뼈와 등뼈를 밤낮 하룻동안 꼬박 고아서 끓인 남주동 해장국이야말로 공복의 빈창자를 훈훈하게 달래 주었던 상질의 술국밥이었다. ▲ 1930년대 청주 장터 쇠전거리 풍경. 사진 왼쪽의 함석집이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오늘의 남주동해장국 집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쉬는 날이 없다. 식도락을 제대로 아는 이들의 열화 같은 성화를 못이겨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국을 내놓는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었을 법한 젊은이들의 발길도 잦다. 기특한 일이다.

한때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여기저기 내걸린 적이 있다. 지금도 유효한 그 캐치프레이즈는 별것이 아니다. 곧바로 옮기면, 몸과 흙은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몸과 흙은 하나라는 이야기인데, 사람들의 삶까지 싸잡은 생활관습 모두는 풍토와 어울릴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말한 것이다.

풍토는 어머니의 태반(胎盤)같은 것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눌러앉아 사는 제바닥에서 난 제철의 먹거리는 보약보다 좋다고 한다. 청주의 음식은 내륙 특성의 전통을 함축한 먹거리라서 건강식일 수도 있다. 청주말로 새뱅이라는 민물새우와 민물고기의 대명사 붕어도 상질의 영양식 재료다. 새뱅이찌개와 붕어찜을 즐겨 먹는 것을 보노라면, 내 고향 청주 사람들은 신토불이를 제대로 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내륙적 풍토 속에 사는 온유한 사람들이 철따라 먹는 음식에서 고향을 다시 한 번 반추한다.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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