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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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 김영회 고문
  • 승인 2002.09.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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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언 40년, 그러나 그 기억들은 오늘도 생생하게 뇌리에 간직 되어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아픔을 겪었던 때문인 듯 합니다.
먼 발치 어머니의 젖은 눈시울을 뒤로하고 내가 논산훈련소 행 입영열차를 탄 것은 1961년 봄 이었습니다. 수용연대에 들어가 삭발을 하면서부터 고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기상나팔소리가 울리면 용수철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하루의 고된 일과는 시작이 됩니다.
절도와 기율을 생명으로 하는 신병훈련소는 단 10분도 여유를 주지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물도 없는 양치질을 하고 앞 다퉈 화장실 용무를 마치고 10분만에 식사가 끝나면 쉴 틈 없이 훈련에 들어갑니다. 교육과정은 그야말로 잠시라도 한눈을 팔 수 없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시쳇말로 ‘번개불에 콩 튀겨먹는’ 것이 훈련소 문화입니다. 100여명이 한꺼번에 와-하고 달려 들어가 욕조에는 발도 넣어 보지 못한 채 손바닥으로 몸에 물을 바르고 나온 단 한번의 목욕, 야간행군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기간병으로부터 군화발로 허벅다리를 채여 나뒹군 일, 일요일이면 양지 짝에 앉아 페니시린 병에 이를 잡아 넣던 일 등은 잊지 못할 기억의 편린들입니다.
6주간의 훈련이 끝나고 부대에 배치되고 나서도 고통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낮 대로, 일과 뒤는 또 일과 뒤대로 이등병 말단생활은 고달프기만 했습니다. 내무반 군기, 그거 정말 무섭습니다. 거의 매일 고참들로부터 기합을 받아야 하고 침대몽둥이로 매를 맞아야 하는 것이 바로 내무반 생활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건 매에 길이 들여져 매를 맞지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자고 매를 맞아야만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랬기에 엉덩이는 언제고 시퍼런 피멍이 가실 새가 없었습니다. 겨울이면 머리까지 침낭을 뒤 집어 쓰고 입김으로 추운 몸을 덥히며 잠들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군대에 들어가 네 번 째 봄을 맞던 64년 나는 34개월의 복무연한을 마치고 비로소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랄 수 있는 20대 초반을 이 땅의 대부분 젊은 이 들은 그때도 지금도 나라를 위해 그렇게 몸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이따금 군대시절의 악몽을 꾸곤 합니다. 다시는 떠 올리고 싶지도 않은 과거지만 꿈은 그렇게 종종 잠자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병역은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추억일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은 나만의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검찰의 이회창 한나라 당 대통령후보 두 아들 병역면제사건조사가 지리 하게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이후보가 일생을 오로지 대쪽으로 살아 왔다면, 법대로 사는 것이 삶의 철학이라면 이제라도 국민 앞에 고해성사를 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대인의 금도(襟度)는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두 아들 병역문제는 이미 법률적문제를 떠나 정치 사회적문제가 되어있습니다. 이 후보가 진정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국민 앞에 솔직하게 진실을 밝히는 것이 도리라고 봅니다. 그렇게 의연하게 마음을 비우고 정면 돌파로 나올 때 ‘인간 이회창’은 오히려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死卽生 生卽死)고요.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일러주는 교훈입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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