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의 활자는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을까. 고활자 주조법은 대략 2가지로 구분된다. 그 하나는 고운 모래(뻘흙)를 이용한 주물사주조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밀랍을 이용한 밀랍주조법이다.

직지활자가 어떤 방식으로 주조되었는가는 아직 결론나지 않았으나 밀랍주조법이었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물사주조법은 북 모양의 틀에서 생산해내기 때문에 고주법(鼓鑄法)이라고도 한다. 고려, 조선시대 화폐(동전) 등을 만들 때 사용하던 방식이다. 이 방식은 풀무질로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넣어 굳히는 방식이다.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서 이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황양목(黃楊木)을 가지고 글자를 새겨 어미자를 만든다. 해감모래라고 하는 바닷가의 부드러운 흙을 인판(印版)에다 깔고 어미자로 꾹꾹 찍으면 오목하게 틀어간 틈이 생긴다. 구리를 녹여 가지쇠를 통해 쇳물을 부으면 오목한 곳으로 흘러들어 활자가 만들어진다. 쇳물이 굳은 다음 흙을 깨고 활자를 다듬어 쓰는 방식이다. 가지쇠는 쇳물이 흘러 들어가는 통로 구실을 한다.

이 방식은 어미자로 누루기 때문에 한꺼번에 여러 개의 활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외국에서는 이 해감모래를 그린 샌드(Green sand)라고 부르는데 지름 0.05mm의 고운 모래가 푸른빛을 띠고 있다. 직지 축제 등에서 선보이는 고활자 주조는 이 방식을 택한다. 우리나라 해안가에는 그린 샌드가 없기 때문에 불가불 산에서 나는 고운 흙을 대용으로 사용한다. 구텐베르크 활자도 이 방식에 의한 것이다.

밀랍주조법은 활자뿐만 아니라 불상이나 종(鐘), 기타 금속 세공품을 만들 때 폭넓게 쓰이던 방식이다. 이 방식에 의하면 금속공예품의 가는 선까지 정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 대신 하나의 틀에서 하나의 제품만을 생산하는 단점이 있다. 활자를 이 방식으로 만들 때는 우선 종이에 크고 작은 글자를 써서 밀랍에다 붙이고 새긴다.

그 밀랍을 석고로 둘러싸고 열을 가하면 동공이 생기면서 밀랍이 녹아 흘러내린다. 그 동공에 쇳물을 붓고 굳은 다음 석고를 깨트리면 활자가 탄생되는 것이다. 60~70연대, 시장엘 가면 글자를 모은 집자(集子) 문패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 방식이 바로 밀랍주조법이다. 고려, 조선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밀랍대신 파라핀을 쓴다는 점이다. 밀랍주조법은 쉽게 말해서 양초공예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르다.

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인 오국진 씨는 지난 1986년 열린 흥덕사지 학술회의에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직지의 떨어져 나간 첫째 장을 복원하여 화제를 모았었다. 오 씨는 밀랍대신 파라핀을, 오토(烏土)와 찰흙을 섞어 만든 재료대신 석고를 사용하였다. 파라핀 랍을 활자크기로 만들어 글자를 새긴 다음, 석고로 둘러싼 후 열을 가하여 파라핀 랍을 녹여 없애고 그 자형(字型)에 쇳물을 부어 활자를 만들었다. 이 방식으로는 밀랍에다 일일이 활자를 새기기 때문에 같은 모양의 활자가 1개 밖에 없다.

오 씨가 직지의 밀랍주조법을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연구 결과에 의한 것이다. 즉 직지에 사용된 활자는 같은 글자라도 자체가 다 다르다. 같은 페이지에서 같은 글자를 유심히 살펴보면 글자꼴이 모두 다르다. 같은 날일(日)자라 해도 조금씩 모양이 다르다. 그러나 다른 페이지에서는 같은 글자가 또 등장한다. 이는 해판을 한 후 다른 장에서 해판된 글자를 재사용해서 그렇다.직지의 활자주조 방식은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밀랍주조법 쪽으로 의견이 기우는 정도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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