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자식 호적에 입양아 올린 눈먼 모정
선천성 장애치료위해 9년만에 호적찾기

“죽은 자식이 그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입양 자식도 내 분신이예요. 먼저 떠난 아이가 불쌍해서 깜박 실수한 것이 이렇게 큰 상처가 될 줄 몰랐어요. 이제 상철이에게 제대로 된 호적을 찾아주고 떳떳하게 입양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11월말 청주시 장애인법률상담소에서 취재진과 만난 김순자씨(가명)는 뇌성마비(뇌병변장애 1급)인 아들 상철(가명 9)이와 겪은 지난 9년간의 아픈 기억을 힘겹게 털어놓았다. 김씨는 상철이가 미숙아란 사실을 알면서도 지난 96년 유아보호시설에서 입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김씨는 정상아보다 저체중의 갓난아이를 원했기 때문에 미숙아 입양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 사진은 본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김씨가 미숙아를 입양하게 된 배경에는 천륜에 얽매인 ‘엄마의 한’이 있었다. 96년 1월, 30대 후반의 김씨는 어렵사리 남편을 설득해 늦둥이를 임신하게 된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억척 주부였지만 늦둥이를 가진 이웃이 부러웠다는 것.

“남편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내가 책임지고 잘 키우겠다고 설득해서 정관수술을 풀고 어렵게 임신했어요. 헌데 나이도 있는데다 가게 일을 하다보니 임신 28주만에 조산을 해서 낳고보니 아이 몸무게가 겨우 862g이었어요. 병원에서도 포기하는 쪽으로 권했는데, 난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특수 인큐베이터가 있는 서울의 병원에서 수개월동안 돌봤어요”

병원에서는 갓난아이의 출생신고가 되야만 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고 김씨 부부는 ‘박상철’(가명)이란 이름으로 호적에 올렸다. 하지만 인큐베이터 속에서 자란 상철이의 건강상태는 불안하기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시댁 식구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고 심리적 중압감을 이기지못한 김씨 부부는 결국 아이의 가퇴원과 산소호흡기 제거를 결정했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늦둥이 자식은 그렇게 인연의 끈을 풀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심신의 안정을 찾지못하는 김씨에게 큰동서는 입양을 권유했고, 상철이와 꼭 닮은 아이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아동복지시설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96년 충남에 있는 Q유아보호시설에서 지금의 상철이를 만나게 된다. “그때 태어난 지 2개월된 갓난아이인데 몸무게가 1.8kg인 미숙아였어요. 난 상철이를 다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어요. 세상에서 최고로 우리 아들을 키우겠다고 맹세했어요”

‘아이 포기할 수없어 입양절차 밟겠다’
김씨는 시댁 식구들을 제외한 이웃에 입양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고, 죽은 아들의 사망신고 자체가 두려워 입양한 상철이에게 그냥 ‘박상철’의 호적을 물려주고 말았다. 결국 숨진 아들은 법률상 사망하지 않았고, 입양한 아들은 호적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딸아이도 인큐베이터에서 자란 바로 그 동생으로 알고 잘 돌봐주었다.

김씨 가족의 보살핌속에 상철이는 정상 체중을 회복했지만 기어다니는 것이 어눌했고 3살이 되도록 일어서질 못했다. 4살되던 해 청주 모정형외과를 찾은 김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상철이의 발바닥을 간질러보더니 반응이 나타나지 않자 뇌성마비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너무 놀랬죠, 뇌성마비는 팔다리가 뒤틀리거나 얼굴이 돌아가는 증세로만 생각했는데…그래도 수술을 받으면 나아 질 수 있다고 해서 용기를 내서 대전, 서울 큰 병원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보니 20년동안 꾸려온 가게도 문을 닫았고, 작년까지 한양대, 연세대 병원에서 4차례 다리 수술을 받았죠. 우리 상철이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클 수만 있다면 내가 무얼 더 바라겠어요”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상철이는 지각능력은 뛰어나 초등학교 진학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김씨는 걷기가 불편한 상철이의 등하교길을 함께 하며 ‘다시 태어난’ 아들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았다. 하지만 자영업을 포기하고 남편 수입에만 의존하다보니 상철이 병원비를 대야하는 경제적 부담은 만만치 않았다. 4차례 수술로 이미 재정상태는 바닥이 났고 추가수술에 대한 걱정만 키우고 있던 차에 김씨의 정신을 ‘번쩍들게’ 하는 정보를 접하게 됐다.

“상철이가 커가면서 입양사실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고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입양 부모 모임에도 참가하게 됐어요. 그때 입양단체에서 건네준 자료를 보니까, 입양아가 선천적 장애가 있을 경우 국가에서 병원 진료비를 전액무료로 해준다는 것을 처음 알게됐죠. 지금까지 수술비는 그렇다쳐도 앞으로 추가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예요”

하지만 김씨의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호적상 상철이는 입양아가 아닌 ‘박상철’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호적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박상철’에 대한 사망신고와 상철이 정식입양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따라서 정식입양 신고를 하기위해 상철이를 데려온 Q유아보호시설설측에 확인자료를 요구했다.

미인가 상태서 아이 인계해 불법입양
그렇지만 Q유아보호시설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자료 제공을 꺼려했고 현재 상태로 상철이를 키우도록 권유하는 입장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순자씨는 법률자문을 받기 위해 청주지역 장애인지원시설에 들렀다가 본보 취재진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취재진은 Q유아보호시설과 해당 자치단체의 담당부서를 통해 확인작업을 벌였다.

취재결과 Q시설은 96년 상철이를 김순자씨에게 인계할 당시 입양기관으로 정식인가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입양 근거서류를 만들 수 없을뿐더러 인가전 입양사실이 밝혀지면 행정처벌을 면키 힘든 상황이었다. 이같은 속사정을 감춘 채 김씨의 입양확인서 요청을 거절하다보니 시설 관계자들도 심적부담이 큰 상태였다.
확인결과 Q시설은 이듬해인 97년 정식인가를 받았고, 지금까지 모범적인 유아보호시설로 평가받으며 운영해오고 있었다.

Q시설 관계자는 “시설 책임자를 잘아는 분의 소개로 찾아와 아이를 입양했다. 당시 신생아가 인큐베이터에서 숨져 양자가 아닌 친자로 키우겠다며 데려갔는데, 뒤늦게 선천적 장애가 나타나 양육부담이 커진 것이다. 김씨와 우리 시설에서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를 인계인수한 것인데 이런 결과를 빚게돼 당혹스럽다. 내부적으로 방법을 찾기위해 수차례 회의도 열고 고민했지만 서류위조를 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었다. 김씨는 당초 잘못된 호적신고를 바로잡겠다는 입장인데 공인된 시설에서 또다른 잘못을 저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Q시설에서 상철이에 대한 입양확인 서류를 받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 현행법상 가능한 방법은 상철이에 대해 기아(棄兒:연고없이 버려진 아이) 발생신고를 한뒤 적법절차를 거쳐 호적을 취득케 하고 다시 김씨가 입양하는 것이다. 핏줄을 우선하는 한국의 가족관념이 위험한(?) 편법입양을 묵인하고 그 후유증에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상철이 사건은 어쩌면 숨겨진 사례의 하나일 지도 모른다.
/ 권혁상기자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