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3] 폐품 모아 생계 꾸리는 노인들
상태바
[기획특집3] 폐품 모아 생계 꾸리는 노인들
  • 충청리뷰
  • 승인 2002.04.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인들이 근근한 돈 벌이로 할 수 있는 일은 고물수집에 그치고 있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의 힘든 삶이 안쓰럽다.
100kg 모아야 4000원, 리어카에 의지해 힘든하루
칼 바람이 매섭게 불던 지난 17일 오후 3시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한 골목. 70대 노인이 폐박스와 고물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었다. 리어카를 끌고 간다고 하기 보다 할아버지가 리어카에 의지하여 끌려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힘없는 다리에 종종 걸음이 안쓰럽다.
아파트 단지와 골목을 돌며 주운 폐박스 고물을 고물상에 넘기기 위해 리어카를 끌고 있는 것이다. 박순석할아버지(가명·73)는 벌써 이같은 폐박스 수집일을 5년째 해오고 있다. 폐박스 수집에 나서고 있는 노인은 박 할아버지뿐만 아니다. 많은 노인들이 폐박스 수집과 같은 힘든 일로 근근한 돈 벌이에 나서고 있다.
박 할아버지는 새벽 같이 집을 나선다. 아침 8시까지는 아파트에서 나오는 폐지를 치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경쟁이 심해 늦으면 다른 사람 차지로 돌아가게 되고 아파트 관리인들이 출근하기 전에 치워줘야 좋아한다. 이렇게 아침부터 시작된 종이 수집이지만 하루 벌이는 1만5천원 내외가 전부다. 이것도 오랜 세월 관리해온 구역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박스를 어렵게 모아 리어카에 가득 싣고 가 봤자 4000원 남짓 받는다. 폐박스 값이 ㎏당 40원밖에 않되기 때문이다. 박할아버지는 이같은 폐 박스 수집을 하루 네 리어카씩이나 하기 때문에 1만5000원 내외를 벌어 담배와 술값을 하고 나머지를 생활비에 보탠다. 6남매를 둔 박 할아버지는 아직 밑에 두 남매를 결혼시키지 못했다. 결혼한 아들들이 매월 얼마간의 용돈을 보내주지만 그것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처음에는 자식들이 말리더라구. 자식 친구가 찾아와 아버지에게 인사하겠다고 하니까 아버지는 술 드시고 주무신다고 둘러대더라고. 그런데 어쩌겠나, 자기들 살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이제는 아무소리 않고 모르는 채 하지”
박 할아버지는 “자식들도 제 살길도 어려운 세상 아니냐”며 자식 걱정을 앞세우고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의 의외의 실적(?)에 자랑스러워했다. 폐 박스보다 돈이 되는 빈병, 신문 등이 많이 나와 1만8000원을 이미 벌었다는 것이다.
박 할아버지는 건설 노무자였다. 나이가 들면서 불러주는 현장이 없었다. 결국 리어카를 구해 폐 박스 수집에 나섰지만 걷기조차 힘든 다리 관절에 이제는 리어카가 지팡이 노릇을 하게 됐다. “리어카를 끌고 가면 30분 거리지만 리어카 없이 그냥 걸으면 1시간 이상 걸린다”는 박 할아버지의 말은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한 노인의 형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박 할아버지는 나은편이다. 자식들이 조금씩이나마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83세 김 할머니는 폐 박스와 빈병 등을 주워 헌 유모차에 열심히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 할머니도 이 지역에서 폐 박스 수집을 하고 있다는게 박 할아버지의 귀뜸이었다. 이 할머니는 틀니를 하겠다며 열심히 박스를 모아 팔았는데 자식이 차비가 없다는 말에 모두 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고물 수집상인 늘푸른 자원 이상국사장은 “노인들이 고물 수집에 나서는 분들이 많은데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나름대로 생계에는 지장이 없이 자식들이 알게 모르게 용돈 벌이를 위해 하는 노인이 3분의 1 정도라면 나머지 3분의 2는 생계 유지를 위해 박스 수집에 나서는 노인들이다. 그 만큼 어렵고 힘들게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노인이 일을 하는 것은 더욱 권장되어야 하지만 노인에 걸맞는 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채 방치되어 사회로부터도 외면당하고 가족으로부터도 부양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초고령 노인들이 할수 있는 일이라곤 박스 수집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화 사회, 개인적인 효에만 맡길 수 없다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가 전체인구의 7.1%에 달해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충북의 경우는 전체 인구의 9.1%인 13만6000여명으로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도 현 노인세대는 자식을 공부시키고 키우는데에만 열중이었지 개인적인 노후 대비도 불충분한데다 사회 보장 제도도 아직 미흡한 처지에 놓여 있다. 보편화된 핵가족화로 자식으로부터 보살핌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고령화 사회는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돌 봐야 한다는 것이 노인 문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아직 전반적인 노인 복지는 차치하더라도 독거 노인 등 불우 노인을 위한 지원에도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충북도에 따르면 도내 65세 이상 노인들의 주거 형태는 일반 가정 노인은 87%이며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12%, 양로원 같은 시설 수용 노인은 800여명으로 0.6%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가족 구조가 급속히 핵가족화하면서 혼자 사는 독거 노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중 충북도는 기초생활 수급자와 저소득 노인에게 3-5만원의 지원을 해주고 있다. 물론 국민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되면 그에 부족분 만큼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보호 받아야 할 노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한 낮의 기온이 영하 날씨를 기록하는 요즘에도 청주 시내 중앙 공원에는 노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들 중에는 점심 끼니를 거르는 노인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사회 봉사 단체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문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고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는 인식의 전환부터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즉, 개인적 효(孝)의 문제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 효, 공적인 효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 민경명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