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랑의 집’ 김정용원장 ‘베체트병’과 투병
희귀병으로 치료받을 병원도 많지 않아
형수인 박인숙씨가 원생 24명 보살펴

오갈 데 없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아버지였던 ‘주사랑의 집’ 김정용 원장(39)이 급기야 병석에 누웠다. 지난해 겨울, 기자가 취재하러 갔을 때 혈관염과 피부염 그리고 다리 한 쪽이 말을 안들어 고생하고 있다고 한 그는 최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베체트병’ 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고 현재 대구 모 병원에 입원, 치료중이다.

“10분 이상 서있기도 힘들어”

20∼30대의 젊은층에서 발병하는 것으로 전신성 혈관염인 이 병은 혈관이 흐르는 곳이면 점막피부와 눈, 근골격계, 신경계, 소화기계 등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으며 면역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혀에 노랗게 궤양이 생기고 동시에 생식기 궤양, 안질환, 피부질환 등이 동반된다면 일단 이 병을 의심하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 병이 위험한 이유는 시야가 흐려지다가 실명까지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것. 김원장도 피부염, 좌골신경통, 목 근육마비, 불면증, 신경불안 등의 증세를 호소하고 있고 전화통화에서 “10분 이상 서 있기도 힘들다. 조금만 활동하면 피곤해 한 2년 정도 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재 원생 24명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것은 김원장의 형수인 박인숙(40)씨가 하고 있다. 그는 “김원장으로부터 여기 와서 시설을 맡아달라는 말을 듣고 고민을 많이 했다. 경기도에서는 장애인시설이라고 해도 월급 받고 일하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편했다. 김원장도 맡길 만한 사람이 없어 나한테 제의를 한 것 같고, 내 나이 칠십이 되어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할 것 같아 오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장애인시설에서 7년 동안 일해온 그는 지난 7월 원장을 맡으면서 이름도 ‘은혜의 집’으로 바꿨다. 박원장은 “김원장이 3년전부터 몸이 아프다고 했는데 그 때 그 때 잠깐씩 입원하고 일을 계속해 큰 병을 만든 것 같다. 더욱이 베체트병은 희귀병이라서 치료받을 만한 병원도 많지 않다”고 걱정했다.

‘사랑의 고물상’ 이끌며 생활 꾸려와

실제 사회복지시설 운영자 중 가장 젊은 김원장은 후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 ‘사랑의 고물상’을 이끌어 왔다. 의류와 신발류, 이불류 등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모아 한 달에 30∼50톤을 수거해온 그는 일정량의 물건이 안되면 전문고물상에서 매입하는 식으로 ‘그 달 벌어 그 달 사는’ 힘든 생활을 계속해 왔다. 주로 교회 등지에서 재활용 물건을 보내주지만, 물량이 충분치 못해 여기저기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를 ‘부지런한 원장’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희귀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김원장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설에 드나들며 봉사활동을 해온 덕에 학교를 졸업하고 ‘당연히’ 사회복지시설에 투신했다. “투철한 신앙심이 아니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 이라는 그는 지난 91년 서울에서 ‘주사랑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그러나 사글세로 나가는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무작정 충주로 내려온다. 그러다가 장애인 아이들을 특수학교에 보내기 위해 다시 청주에 터를 잡았다. 총각때부터 아이들을 키워 한 때 충주에서 ‘총각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이 곳을 구성하는 가족들은 대부분 정신지체 장애인들로 혼자서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부터 간단한 청소가 가능한 사람까지 다양하다. 병원에 버리고 간 갓 낳은 아이를 데려다 키운 일도 허다하다는 것. 여기와서 호적을 만든 사람만도 4명이나 되고 훈민(12)이는 김원장의 친자로 올라가 있다. 지금도 무의탁 노인이나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을 거두어달라는 요청이 오지만 형편상 받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 박원장 말이다.

축사 개조한 시설 이사가야 할 판

이 곳은 미인가시설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도 없다. 법인시설이 되려면 부지와 예치금이 있어야 하므로 현재로서는 요원하기만 하다. 현재 집도 축사를 개조한 것이고 부지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 20만씩 내고 살고 있는 형편. 하지만 여기서도 오래 살 수가 없게 됐다. 이 곳 부지가 청주시 도시개발계획지구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박인숙 원장은 “부지만 기증을 받으면 조립식 건물을 지어보겠는데 지금은 땅이 없어 꿈만 꿀 뿐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곳 식구들을 편히 살게 해주고 싶은데…”라며 이사 갈 걱정에 한숨을 내쉬었다. 더욱이 김원장이 하던 ‘사랑의 고물상’도 일손이 딸려 전적으로 매달릴 수가 없다. 원생 24명과 더불어 사는 사람까지 합쳐 30명이나 되는 식구들을 보살피려면 박원장이 자주 집을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경기가 침체된데다 거의 모든 도움의 손길이 수해지역으로 몰리는 바람에 이 곳 원생들도 어느 해보다 썰렁한 명절을 보냈다. “아이들이 날씨가 추운데도 밖에 앉아 손님을 기다릴 때는 가슴이 미어졌지요.” 박원장의 말이다. 사회복지시설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돼 주사랑의 집처럼 작고 인가가 나지 않은 시설은 명절도 유난히 가슴 시리게 보내야 한다. 한편 김정용 원장의 가족 중에는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큰 형이 경기도에서 장애인시설을 운영중이고, 작은 형은 다른 일을 하지만 형수인 박인숙씨가 김원장의 대를 이었다. 그리고 김원장의 부인인 박성미씨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주사랑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해 최근까지 일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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