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4] 소년소녀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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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4] 소년소녀가장
  • 충청리뷰
  • 승인 2002.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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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림·상태 남매는 요즘 한 대기업체가 후원한 컴퓨터를 선물로 받은 뒤 마냥 즐겁기만 하다. 다만 더 바랄게 있다면 인터넷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소년 소녀 가장의 바람은 역시 소박했다. 이경림(13. 중 1) 이상태(12. 초등 5) 남매는 지난 1주일간 꼬박 알 듯 모를듯한 흥분에 휩싸였다. 동생은 밥맛까지 잃었다. 두 남매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컴퓨터가 들어 온 것이다. 어느 대기업의 후원 덕분이다. 그러나 곧바로 고민이 생겼다. 그동안 친구집에서만 즐기던 인터넷을 하고 싶은데 자신들의 힘으론 선을 깔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지금 당장의 소원이 뭐냐고 물었더니 대뜸 “인터넷”이란 말이 합창으로 돌아 왔다. “인터넷이 없으면 숙제도 못해요. 친구 집에서 인터넷을 검색해 왔는데 이젠 집에서 하고 싶어요.” 남매의 소원이 너무 간절해(?) “같이 노력해 보자”고 약속했다. 그랬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채팅과 이메일도 많이 하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경림이가 열살, 상태가 아홉 살 때 이들은 엄마와 헤어졌다. 가정 문제로 부모가 이혼한 것이다. 엄마는 재혼했고 아버지는 노동일을 전전하다가 1년만에 가출했다. 이것이 어렵게 알아 낸 집안 내력의 전부다. 부모님에 대한 물음에 이들 남매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묵묵부답이었다. 유일한 반응은 “보고 싶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것 뿐이다.

주변의 관심이 자립 도와

이들 남매는 지금 11평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단둘이 살고 있다. 방은 두 개이지만 한방에 2층 침대를 놓고 함께 잠을 잔다. 윗 침대는 역시 성깔있는 동생 차지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상태는 말도 절도있게 딱딱 끊어진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이런 말투는 상대를 위압한다. 할머니의 전화에도 상태는 줄곧 반말이지만 그 속에선 나름대로 정이 묻어난다. 이들에겐 큰 아버지 집에 사시며 3일에 한번 정도 찾아 밑반찬을 만들어 주는 할머니가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약 한시간 정도의 취재중에도 할머니로부터 세번이나 전화가 왔다. 영문을 모르는 할머니는 기자에게 대뜸 주변의 얘기를 바리바리 늘어 놨다. 이들 남매의 실질적인 가장인 할머니 역시 많은 외로움을 타는 것같아 쉽게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취재에 동행한 청주시 흥덕구 수곡2동 이현미 사회복지사가 얘기를 거들었다. “결손가정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소년소녀 가장들에겐 주변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각종 사화복지 정책이 잘 되어 있어 물질적인 어려움은 어느정도 해소가 됩니다. 문제는 이들의 정서적인 보살핌이죠. 주변이나 이웃이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못 주더라도 편견을 가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특히 사춘기 시절 이들에게 심리적 박탈감은 엄청난 좌절감을 안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서러움을 줘서는 안 됩니다. 다행이 이들 남매는 주변과 이웃의 따뜻한 배려로 아무 탈없이 자라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녀는 지금 이들 남매의 든든한 후견자다. 얼마전엔 남매와 한가지 다짐을 했다. 다른 애들처럼 학원에 가고 싶다는 말에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후원자를 찾고 있다.

아침밥은 매일 거르고 잠이 최고

살림은 물론 누나 경림의 몫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대충 차려 입고 학교 가는 일로 하루일과는 시작된다. 동생 상태는 누나보다 20분 늦게 집을 나선다. 20분동안 뭐하냐고 물었더니 “마지막까지 잔다”며 기자의 의표를 찔러 한참을 웃었다. 역시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 하는 알람시계 덕분이다. 이들이 말하는 시간을 따져 보니 계산이 잘 맞지가 않았다. 아침밥을 먹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결국 그 이유를 묻자 “아침은 먹지 않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안 되었다는 생각에 최근 개그맨 신동엽이 아침밥을 거르는 학생들에게 밥을 해 주는 TV의 인기프로를 말해주며 잠시 할말을 잊었다.
이들 남매는 말수가 아주 적다. 아무리 웃기는 얘기를 해도 한번 픽 웃으면 그만이다. 그럴 땐 안타깝다가도 곧바로 천진난만한 언행에 안도감을 느낀다. 방 한구석에 낡은 귀고리가 두 개 보였다. “친구들이 하길래 저도 한번 해 봤어요. 그러나 지금은 안 해요.” 경림이는 외출할 때 입는 치마를 알뜰마당에서 단돈 100원에 구입했다고 자랑한다. 이들 남매의 한달 용돈이 궁금했다. 둘이 합해 1만원이다. 부족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경림이는 “주로 준비물을 사는데만 용돈을 쓰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다”고 금방 말했다. 역시 가장의 위치라서 그런지 경림이는 상태보다 훨씬 음전해 보였다. 가정을 이끄는 고단함이 앞뒤를 잴줄아는 성숙한 생각을 빨리 키운 것이다.
/한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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