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동 비로자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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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동 비로자나불
  • 임병무 고문
  • 승인 200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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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손 모양(수인:手印)은 천태만상이다. 속리산 법주사의 금동미륵불은 여원인(與願印),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모든 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무서움을 막아준다는 뜻이다. 한쪽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키고 있는 손 모양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마귀를 굴복시킨다는 의미다.

이처럼 대다수 부처님은 손바닥을 펴고 있는데 유독 주먹을 쥔 부처가 있다. 다름 아닌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한쪽 손으로 다른 손의 검지를 감싸고 있다. 부처님이 왜 주먹을 쥐었을까. 복싱이나 K-1 리그에 나가자고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세상의 온갖 번뇌를 포용하자는 뜻이다.

화엄종의 본존불인 비로자나불은 불지(佛智)의 무변광대함과 광명을 뜻한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은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광명전(光明殿), 비로전(毘盧殿) 등으로 불린다. 충북도에는 유난히 비로자나불 신앙이 강하다. 문의 현암사, 동화사, 청주대 캠퍼스 내에 있는 용암사, 괴산 각연사, 법주사 대웅보전 등에 비로자나불이 안치되어 있다.

부처는 재료에 따라 금동으로 만들었으면 금동불, 청동이면 청동불, 나무이면 목불, 흙으로 빚었으면 소조불, 쇠로 만들었으면 철불, 돌로 만들었으면 석불 등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에는 화강암이 많이 나므로 돌로 만든 석불이 압도적으로 많다. 석불도 석굴암 부처처럼 사방이 완전한 조각품이면 완전불이고 자연 암벽에 돋을 새김(양각)을 하였거나 오목 새김(음각)을 하였으면 마애불(磨崖佛)이라 한다. 돋을 새김을 다른 말로 부조(浮彫)라 한다.

청주 MBC에서 큰길 건너 새 동네를 지나 오동동으로 가는 길목인 정하동 철길 옆에는 희귀한 마애불이 있다. 마애불은 전국도처에 수없이 많으나 비로자나불 형태의 마애불은 이 부처님이 유일하다. 지방유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된 이 마애불은 자연 암벽에 양각과 음각을 겸했다.

얼굴부위와 몸체는 부조형태를 띠고 결가부좌한 아래쪽으로는 음각으로 처리했다. 양쪽 어깨에 법의를 걸친 통견으로 옷 주름이 유려하게 발 밑으로 흘러내리고 있으며 연꽃은 상징적으로 처리하였다.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싼 모습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불상의 높이는 3.23m 상폭 1.3m 하폭 2.82m 두께 1.09m로 자연 암벽을 이용하였다.

머리에는 두광(頭光)을 둥근 선으로 선각했으며 관모(官帽:모자)를 쓰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남아있는 부분은 비교적 양호하나 코와 입 부분이 마모된 데다 치성을 드리는 과정에서 촛불에 그을린 흔적이 흉하게 남아있다. 충북대 김춘실 교수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마애 비로자나불”이라며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보인다“고 견해를 밝힌다.

벌판이나 산중에 남아 있는 오래된 석불의 코는 대개 마모되어 없다. 그것은 오랜 풍파에 시달려 없어진 탓도 있지만 “부처님의 코를 떼어서 갈아먹으면 임신을 한다”는 속설이 부처님의 얼굴을 이토록 흉하게 만든 것이다. 눈을 떠도 코를 베어 가는 세상 인심은 비단 오늘날의 현상만은 아닌 듯 싶다.

충북선 기차소리에 마음 편히 잠 들 날도 없으나 벌판에 우뚝 서 있는 이 석불은 마치 충북의 어제오늘을 통찰하고 있는 것 같다. 후삼국 시대에는 상당산성, 정북동토성, 오창 목령산성, 강내면 저산성의 꼭지점에 서 있었고 오늘날에는 멀리로는 행정도시와 호남고속철오송분기역, 오송 오창 BT, IT단지를 바라보고 있으며 뒤쪽으로는 주중동 밀레니엄타운을 두고 있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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