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전염병처럼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보기관의 고위직을 지낸 현직 대학총장이 목을 매 자살을 한지 몇 일 만에 이번에는 또 국내 최대 재벌의 딸이 유학중인 뉴욕의 숙소에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웬일일까. 요 몇 년 사이 전 대법원장이, 재벌회장이, 대기업사장이, 대도시직할시장이, 도지사가, 시장이 경쟁이나 하듯 강물에 몸을 던지고, 빌딩에서 투신을 하고, 목을 매 자살을 하고있습니다.

모두들 명성을 쌓은 내노라하는 사람들이기에 사회에 주는 충격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자살은 이미 우리 사회의 감출 수 없는 병리현상이 되어있습니다.

지난 해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통계를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매일 30명이 자살로 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도 960명이나 되는데 이를 연간 규모로 계산하면 자살사망자가 1만932명, 자살시도자가 35만 명에 달하고 지난 10년간의 자살사망자 누계는 무려 7만 명이나 됩니다.

이를 달리 계산하면 매 48분마다 1명이 자살하고 1분30초마다 1명이 자살을 시도하는 셈이니 그야말로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특히 최근의 자살은 20~30대 젊은 층의 사망원인 1위로 올라섰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 중 자살사망률 4위, 자살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뒤르켐(Emile Durkheim)은 자살을 이기적 자살(利己的自殺) 애타적 자살(愛他的自殺) 아노미(anomie 무규제상태)적 자살의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이기적 자살은 개인이 사회에 결합하는 양식(樣式)에서 과도한 개인화를 보일 경우, 즉 개인과 사회의 결합력이 약할 때의 자살을 말하고 애타적 자살은 그 반대로 과도한 집단화를 보일 경우, 즉 사회적 의무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 나타납니다.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정세의 변화라든가 사회환경의 차이 또는 도덕적 통제의 결여(缺如)에 의한 자살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자살의 원인은 신경쇠약 실연 병고(病苦) 생활고 가정불화 장래에 대한 고민 사업실패 염세(厭世)등 여러 가지가 요인이지만 그 중에서도 염세 병고 신경쇠약 실연 가정불화가 두드러지게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우리 사회의 자살신드롬에 대해 “사회가 격변하고 규범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 자살수치가 가장 높았다”며 “최근 자살이 늘고 있는 것은 사회가 안정되지 않고 격변하고 있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자살은 ‘자기살인’입니다. 당사자로서야 죽음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옳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날 조반석죽(朝飯夕粥)으로 연명하던 가난하던 시절에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 온 우리 국민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라가 이만큼 된 마당에 자살이 유행병이 되어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행한 사회인가를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을 사는데 명예도, 돈도 최상의 선(善)은 아닌 모양입니다. 왜 인가? 그들이 명예도 없고 돈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생각되기에 말입니다.

12월입니다. 스산한 날씨, 덧없이 한해가 또 저물고 있습니다. 현실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다해도 어차피 삶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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