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담 곽예․김시습 그리고 민병산"

 청주의 문학비(文學碑)는 우리 고장의 명소라고 할 만한 곳에 서 있다.
한동안 잠을 자다 다시 깨어나고 있는 명암유원지에서 국립박물관과 동물원으로 이어지는 상당산 자락 '약수터'에 연담 곽예의 시비, 상당산성 남문 앞 잔디 광장에 매월당 김시습의 시비, 그리고 청주의 발전상이 피부로 느껴지는 가경 신도시 한복판 발산공원에 민병산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에 청주시가 추진중인 신동문시비가 무쇠당간과 흥덕사터 중간 무심천 둔치 어디쯤엔가 서게 되는 2003년 이후에는 청주에 와서 문학비를 찾다보면 자연스레 대표적인 유적지를 모두 둘러보는 셈이 될 듯 하다.

연담 곽예 시비(詩碑)

▲ 약수터 입구에 있는 연암시비 고려말의 충신이요 문장가인 연담(蓮潭) 곽예(郭預 1232~1286)의 시ꡐ바다 건너감을 슬퍼함(感渡海)ꡑ을 돌에 새겨 세운 것은 1980년 그의 23대 후손인 곽한봉씨에 의해 서다. 당대의 한학자 이가원이 번역하고 서예가 우송 이상복이 글씨를 맡았는데 청주에 세워진 문학비 제1호였다. 한문시로서 깊은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 이 장편서사시는 당시 고려를 지배하고 있던 원나라에 대한 항원시(抗元詩)로 역사적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5단으로 된 시의 결귀는 다음과 같다.슬퍼라 저 강남의 십만군졸들이외딴섬에 기어올라 알몸으로 서게됐구나지금도 원한의 백골이 산처럼 쌓였으니긴긴밤 외로운 혼이 하늘아래 울먹인다.행여 당시의 장수가 살아서 돌아왔다면이 일을 생각하여 어찌 슬프지않으리만고에 장하여라 오강의 초패왕은돌아가기 부끄러워 공업을 버렸구나 ▲ 청주시 명암동 상당산 기슭에 있는 상당사(上黨祠)
이 시는 고려 충렬왕 7년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당시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정벌을 떠났다가 참담한 패배로 끝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원나라를 준렬히 꾸짖는 풍자시의 백미를 보이고 있다.

청주시 명암동 약수터 입구 산자락에 있는 이 시비(詩碑)를 뒤로하고 한발짝 올라서면 연담공 묘소(도 지정기념물)가 있고 그 옆 골짜기에 선생을 비롯한 곽상(郭尙), 곽원(郭元), 곽여(郭與) 3인을 모신 상당사(上黨祠)가 있다.

매월당 김시습 시비
연담시비를 보고 고개하나를 올라서면 상당산성 남문인 공남문(控南門) 앞 잔디광장에 이른다. 고색창연한 성벽과 정갈한 소나무 숲에 둘러쌓인 분지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돌 하나, 바로 매월당 김시습 시비이다.

청주대 김갑기교수가 번역하고 서예가 운곡 김동연이 화강암돌에 새긴 '산성에서(遊山城)'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 김시습시비 꽃다운 풀 향기 신발에 스며들고활짝 갠 풍광 싱그럽기도 하여라.들꽃마다 벌이와 꽃술 따 물었고살진 고사리 배간 뒤라 더욱 향긋해.웅장도 하여라 아득히 펼쳐진 산하의기도 드높구나, 산성마루 높이 오르니날이 저문들 대수랴, 보고 또 본다네내일이면 곧 남방의 나그네 일터이니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남긴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전국을 유랑하다가 산성을 돌아보고 남긴 제영시가 바로 '산성에서'인데 시비는 상당산성 정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0년 12월 청주시가 청주문인협회와 함께 세웠다.민병산 문학비"민족이 고통받던 식민의 시대, 우리고장에서 태어난 민병산은 파란 많은 세월을 몸 전체로 부딪히면서 일신의 화려한 영달과 안락을 뿌리치고 완전하고 철저한 무소유와 독신의 삶을 선택하여 뛰어난 작가로서, 철학자로서의 일생을 가장 비범하게 살았다"(글 임찬순) ▲ 민병산 문학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발산공원에 세워진 민병산문학비 뒤편에 새긴 건립기의 앞부분이다.

이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민병산(閔丙山 본명 丙翊: 1928~1988)은 청주 부호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철학과 문학에 심취하여 지식과 식견이 경지에 이르러 '한국의 디오게네스'로 불린 기인(奇人) 철학자였다. 평생을 무소유로 일관하였으나 사후 후배들에 의해 유고집 '철학의 즐거움'한권이 남겨졌다.

심오한 탐구의 세계를 육화한 유고집 '철학의 즐거움' 중 '마음의 체조'에서 따온 다음과 같은 글귀가 돌에 새겨져 그의 독특한 철학적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글씨 김동연,  조경 장현석)

"세상의 모든 보배를 다 합쳐도 한 사람의 마음만한 값어치를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그 보배를 보배로 여기는게 곧 사람의 마음이니 마음이 아직 어두운 곳에서는 어떤 보배도 다 허무하기 때문입니다."<김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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