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 칼럼

   
<한겨레신문>나 같은 사람은 교장이 될 수 없다. 자격이 안 된다. 근무평가에서 ‘왕수’를 받을 수 없다. 교장 교감이 교사들을 수우미양가로 평가를 하는데, 수 중에서도 최고 높은 점수를 왕수라고 한다.(왕수란 말 처음 들어본 사람 많을 것이다.)

근무지 이동할 때나 승진할 때 꼭 필요하다. 특히 승진을 위해서는 내리 몇 해를 일등수를 받아야 한다. 예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하는 사람은 왕수를 받기 힘들다. 승진을 앞둔 부장교사는 교장 앞에서 예 할 때도 예 하고 아니오 할 때도 예 해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년의 독재정권, 그 비상식의 역사 속에서 양심상 아니오라고 할 수밖에 없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만약 이해찬 총리나 노무현 대통령이 교직에 있었다면 그 기질이나 의협심으로 미루어 보건대 수가 아니라 미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장교사점수도 채울 수 없었다. 면 단위 시골 학교로 강제로 쫓겨다니긴 했어도, 벽지점수나 연구학교 점수를 받기 위해 부가점수 받는 학교로 희망해서 가지는 못했다.

내가 교장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다. 연구점수를 채우지 못한다. 연구점수를 채우려면 교총이나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연구에 응모하여 좋은 등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연구논문이 문제가 많다.

김 선생이 올해 제출했다가 3등급 받은 논문이 내년에 다른 학교 박 선생이 제출하면 1등급을 받는다. 이 논문들은 거의 다 승진을 위해서만 사용할 뿐 쓰고 난 뒤에는 바로 잊어버리며 일반화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나는 교육부에서 주최하는 교과교육 연구활동에 응모하여 최우수 연구팀으로 뽑혀, 점수 없는 상을 받은 적은 있어도 양심상 그런 연구논문을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교장이 될 수 없다. 이런 교사가 나 말고도 수만 명이 있다.

민주적이고 창의적이며 학생들을 위해 일하는 수만 명의 교사들이 승진할 수 없는 구조라면 이건 분명히 잘못된 제도다. 맹목적 성실이나 굴종이 아니라 교사의 자존심을 지켜가며 아이들 앞에 떳떳하게 교사노릇하고 공정하게 평가받아서 왕수를 받는 길이 있다면 나는 그 길에 참여했을 것이다.

새로운 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더 크게 학교를 혁신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역경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산 교사들,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교사들, 말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능력있는 교사들을 학교 개혁의 중심동력으로 세우는 방법이다.

교장선출보직제도 그 중의 하나다. 젊고 참신한 교사들이 근무평가점수나 승진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있게 일할 수 있게 해 주면 학교는 변한다. 교사들이 평가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잘못된 제도는 그냥 두고 새로운 평가제도 도입만이 학교혁신의 제일 과제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교단에서 가장 두려워한 것은 아이들의 맑은 눈이었다. 제자들의 시선보다 더 정확하게 교사를 평가하는 것은 없다.

체질적으로 개혁적인 사람들을 개혁의 중심동력으로 삼아서 학교를 변화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이고, 어떻게든 기를 꺾고, 힘을 약화시킬 궁리만 하고 있어서 교사들은 얼마나 속상해하는지 모른다.

교사를 솎아내기 위한 네거티브 전략에서 교사를 교육혁신의 중심세력으로 세우는 포지티브 전략으로 바뀌어야만 우리 교육에 희망이 있다. 교사들과 손잡지 않고 어떻게 학교가 변할 수 있는가. 후배교사가 “좌측 깜빡이 넣고 우회전하고 있다”고 볼멘소리하는 걸 들었다. 안타깝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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