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부터 모은 미술품, 줄잡아 100여점
무심미술회 활동하며 창작지원기금도 지원

   
노영민(청주 흥덕을) 의원의 소속 상임위원회는 건설교통위원회다. 호남고속철도 분기역 결정과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혁신도시 유치 등 굵직한 지역 현안의 현장에 항상 그가 있었다.

그러나 노영민 의원이 진짜 활약을 펼쳐보고픈 상임위는 의외로 문화관광위원회다. 물론 ‘누적된 현안을 마무리하고 난 뒤’라는 단서가 붙지만 말이다.

여기 에다 상임위 배정 당시 지역의 일부 미술인들이 “노 의원이 문광위 대신 건교위를 택할 줄은 몰랐다”며 서운해 했다는 사실까지 알고나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사실 노영민 의원의 그림을 보는 눈은 수준급이다. 미술 실기를 공부했다거나 체계적으로 미술 이론을 학습하지는 않았지만 15년 전부터 ‘시대와 미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었고 전시회란 전시회는 다 쫓아다니면서 작품을 감상하고, 마음에 드는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미술공부는 전시회에서 많이 감상하는 것이 최고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노 의원의 지론이다.

시대정신을 찾아 미술 공부
연세대 경영학과 76학번인 노영민 의원은 연세대 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돼 2년을 복역한 뒤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다시 수배, 제적돼 1990년에야 늦깎이로 졸업장을 받았다. 5년에 걸친 노동운동에 이어 고향인 청주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펼치다가 두 번의 도전 끝에 금배지를 달았다. 사실 이와 같은 경력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노 의원의 투쟁이력서다. 오히려 이 보다 덜 알려진 것이 사업가로서의 노영민과 외곬에 가까운 그의 미술품 수집 취미다.

서울 성수동을 거쳐 경기도 오산의 금성산전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노영민 의원은 1984년 청주로 내려와 전기기술자노조를 만든데 이어 1986년 그동안 익힌 전기기술을 바탕으로 금강전기(주)를 창업한다.

노 의원은 2000년까지 금강전기를 직접 운영하며 사업적 성공을 거뒀고, 이를 통해 축적한 경제력이 미술품 수집이라는 다소 값비싼 취미를 영위하는 밑받침이 된다.
노 의원이 미술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이다. 밀레니엄을 10년 앞둔 상황에서 ‘역사에 유산으로 남을 시대정신은 무엇인갗 스스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이에 대해 “작가정신이 투철하다면 작품 속에 시대정신이 담기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고, 이론적인 접근과 함께 실제 작품을 통해서도 시대정신을 찾아나섰다”고 말했다.

노 의원이 이 과정 속에서 “농촌사회 붕괴와 도시화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통일과 인권, 민주화는 민중예술이라는 새 갈래로 태동하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

일부 작품 공직자 재산공개 대상
사실 노 의원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이전까지 미술품 수집이라는 취미가 대중적으로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편이었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자신의 이력에 비해 지나치게 호사스럽게 비춰지는데다 미술품의 재산적 가치를 두고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그가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가운데 일부는 신고대상에 포함됐고 이제 마냥 ‘쉬쉬’할 수 있는 일도 아니게 됐다. 현행 법에 따르면 구입가를 기준으로 500만원이 넘는 미술품은 그 구입가와 품목을 신고해야 하는데 현재 청주사무소 집무실에 걸려있는 남천 송수남 화백의 작품 등 상당수가 신고대상에 포함됐다.

또 서양화를 중심으로 그가 소장한 미술품은 줄잡아 100여점에 이르는데, 청주시 가경동 자택과 청주사무소, 서울 국회의원회관 등에 고르게 나뉘어 보관돼 있다.
그림은 주로 화랑을 통해서 수집하는데, 초창기에는 청주대 예술대학장을 지낸 김재관 화백을 비롯해 이홍원, 이종목, 손부남 등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이후에는 송수남, 황창배, 장혜용 화백 등 서양화가 30여명과 도예가 이장효의 분청사기, 김준권, 이철수 등의 판화로까지 수집의 폭을 넓혔다.

물론 아직까지도 미술품의 재산적 가치나 자택 거실에 걸려있는 작품 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노코멘트’다. 벽에 걸려있는 작품과 사무실에 세워져 있는 작품, 창고에 있는 작품 등이 일일이 공개하는 것이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애호도를 평가하는 것 같아 민망해하는 까닭이다.

다만 공개를 피할 수 없는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청주사무소에는 모두 5점이 걸려있는데, 송수남, 김재관, 이홍원, 이종목 화백의 회화 4점과 이철수 화백의 1999년 작 판화 ‘이렇게 좋은 날’ 등이다.

먼훗날 작은 미술관 세울터
노 의원은 개인적 취미생활로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지역 미술가에 대한 후원에도 힘을 기울였다. 청원군 문의면에 있는 폐교장 마동분교를 공동 명의로 구입해 화가와 조각가, 도예인들의 작업장으로 꾸미는데도 일조를 했다.

미술 감상을 취미로 하는 지역 인사 20명과 함께 무심미술회를 만들어 정기적인 모임도 갖고 있다. 무심미술회에는 회장인 노 의원을 비롯해 한국도자기 김용태 부사장, 김창섭 회계사, 무심갤러리 엄은숙 관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무심미술회는 미술품 감상과 평론 활동 외에도 지역미술인에 대한 기금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 ‘무심미술창작지원기금’을 만들어 2002년부터 ‘올해의 좋은 작갗를 선정해 후원하고 있는데, 채명숙, 손부남, 박계훈에 이어 네 번째 수상자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의 좋은 작가에게는 후원금 200만원을 주고 이듬해 열리는 전시회를 후원하고 있다.

이처럼 미술품 수집과 작가 후원이 유일한 취미라는 노영민 의원의 장래희망(?)은 ‘먼훗날 지역에 작은 미술관을 세우는 것’이다.

“외국에 나갈 때 마다 반드시 미술관을 둘러보는데 유서깊은 도시의 미술관들이 지역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부러웠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 “도시의 역사, 문화, 생활, 자연경관 등을 담은 작품을 일부러 수집해 전시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미술관에 들러 이를 감상하는 모습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노영민 의원은 “한 때 비디오 아트로 세계 미술사에 획을 그은 백남준 미술관을 구상해 보기도 했고, 지역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미술관 건립도 꿈꾸고 있다”면서 “그러나 모든 것이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난 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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