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여상 야간부 절정 이루던 80년대 돈 넘치던 황금골목
지금은 30~40대들이 추억을 찾아… 2~3곳만 명맥유지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근대화의 길에 들어선 1970년대, 이 땅의 어린 딸들은 ‘산업역군’이라는 이름 아래 작업등에 의지해 부품을 조립하거나 떼꾼한 눈으로 방적기 앞을 지키며 곤한 밤을 새웠다.

청주에도 ‘주경야독’하는 여학생들을 위해 이른바 ‘산업체 특별학급(야간)’이 생겨났다.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운 여학생들이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배움의 길을 걸으며, 고되지만 실낱 같은 희망으로 청춘의 꿈을 불지폈다.

▲ ‘톨게이트’사장 박경미씨가 떡볶이를 조리하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분식집은 두어곳에 불과하다. / 사진=육성준 기자 청주시 수동에 있는 대성여상에는 1977년 산업체 특별학급 9개반이 개설됐다. 1989년에는 3개 학년에 7개 학급씩 모두 21개 학급이 개설돼 절정을 이뤘다. 우성모직이나 대원모방, 대우통상, 일신방직 등 방직공장에서 근무를 마친 대성여상 야간 여학생들의 퇴근버스는 그대로 통학버스였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다시 배움터로 들어가는 길목에 바로 대성여상 떡볶이골목이 있었다. 떡볶이와 튀김 등을 파는 작은 분식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해 절정기에는 10여개에 육박했다. 야간 학생들의 월급날은 떡볶이골목의 대목이었다. 분식점 주인들은 학생들이 내는 수표를 바꿔주기 위해 돈을 바꿔놓고 기다렸다고 한다. 문구점이나 연쇄점, 화장품 가게 등도 호황을 누렸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분식골목 입구에서 옷수선점을 운영해온 오정숙(53)씨는 “야간 학생들의 작업복을 수선하느라 사복은 만질 틈도 없었다”며 떡볶이골목의 전성기를 회상했다.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였기에 획일화된 작업복을 뜯어고쳐 나름대로 멋을 냈다는 것이다.

오씨는 또 “새벽 2시까지 일하고 새벽 5시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그 때 그 돈을 다 모았으면 지금 뭐를 해도 크게 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그저 용돈이나 번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떡볶이골목이 급격하게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1990년대 말부터다. 외환위기로 경제난이 가속화되면서 학생들의 주머니가 가벼워진 것도 있고, 무엇보다 주고객층을 이루던 야간학생들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9년에는 산업체 특별학급이 전체 6학급으로 줄었고, 2005년 2월 마지막으로 졸업한 야간 학생들은 20여명에 불과했다. 여기에다 점심 급식이 확대되면서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을 이용해 떡볶이 골목을 찾는 학생들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세대교체, 부활의 길 열릴까 이제 대성여상 앞 떡볶이골목에서 옛 방식대로 영업을 하는 집은 두어집에 불과해 간신히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문을 닫은 채 새 주인을 구하지 못하고 비어있는 점포도 간간히 눈에 띄어 일반인들이 찾아오는 점심시간이나 하교시간을 제외하고는 을씨년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 4~5년 전만 해도 바닥 권리금으로 600만원을 주고 들어왔지만 최근 문을 닫은 한 점포의 주인은 권리금은커녕 내부시설에 대한 철거비용까지 물고서야 가게를 뺄 수 있었다. 떡볶이집 ‘톨게이트’의 사장 박경미(37)씨는 이처럼 사양길로 접어든 떡볶이골목에 2004년 봄 발을 들여놓았다. 미용사로 일했고, 영업사원으로 필드를 누빈 적도 있지만 떡볶이와 인연이 있다면 학창시절 역시 떡볶이를 좋아했었다는 것 말고는 남다를 것도 없다. 그러나 박씨는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벌이는 괜찮다”며 경쟁상대가 줄어든 만큼 재미가 쏠쏠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떡볶이골목의 전통적인 메뉴만을 고집하면서도 변해가는 입맛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비법을 개발해 손님들을 모으고 있다.
메뉴는 떡볶이와 튀김, 라면, 어묵 등으로, 타 지역 분식집의 기본 메뉴인 김밥을 취급하지 않는다. 1500원을 받는 라면에는 오징어를 썰어넣어 확실하게 차별화를 시켰다. 떡볶이는 기본이 1500원이지만 계란과 튀김 등을 넣어 얼마든지 스페셜을 만들어준다.

“이제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점심시간에 오는 손님들은 인근 직장인들이거나 옛 추억을 회상하며 가게를 찾는 사람들 뿐이에요” 실제로 학생들이 음식점을 찾는 시간은 대성여중 학생들이 하교하는 오후 4시 무렵과 대성여상 학생들이 하교하는 오후 6시 무렵 30~40분 정도라는 것이다. 매출도 가게 안에서 팔리는 것보다 포장이 더 많아 60%를 차지하고 있다. 서너 평 남짓한 가게로 수지를 맞추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박씨는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이 곳을 찾는 사람들 덕분에 떡볶이골목의 역사를 귀동냥한다”며 “그런 단골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명맥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그래서 낡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박씨의 가게는 누런 푸대종이로 바른 벽지가 인테리어의 전부다. 인테리어의 나머지는 손님들이 쓴 지저분한 낙서와 군데 군데 붙어있는 연예인들의 초상사진이다. 이 역시 여학생 손님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이다.

낙서를 들여다 보니 음식맛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연예인들을 향한 메아리 없는 애정고백, 친구들에게 쓴 짧은 낙서 등 그 종류와 내용이 진진하다. 간혹 주인 박씨에 대한 용모평가도 있는데, 모두 찬양일색이다. 박씨는 “아이들이 ‘예쁜 아줌마’라고 낙서를 해놓고 서비스를 달라고 하는데, 애교에 넘어가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외모를 칭찬하는 낙서가 싫지는 않은 모습이다. 박씨는 한 술 더 떠 “아이들이 젊은 아줌마들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며 “실제로 다른 가게들도 젊은 사람들로 주인이 바뀌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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