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으로 사용보다’ 조건강화, 사실상 유명무실
K씨(35)는 지난해 말 5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K씨가 직장에서 하던 일은 열전사 필름을 생산하는 업체의 생산과장. 열전사 필름은 가구, 장판, 실내 장식에 사용하는 것으로 열을 가해 표면에 접착시키는 필름이다.
K씨는 직장에서 익힌 기술과 노하우를 이용해 독립하기로 하고 청원군 북일면에 공장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K씨는 기존 열전사 필름 생산 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씽크대 용 열전사 필름(MDF)의 국산화를 시도 하고 있다.
씽크대의 경우 홈이 많고 골이 파인 부분이 많아 기존의 필름으로는 작업이 불가능해 고가의 외국 제품을 수입해 사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K씨는 퇴직과 함께 이의 국산화에 사업의 사활을 걸고 기존 열전사 필름을 생산해 회사를 운영함과 동시에 국산화를 위해 연구와 시험을 반복하기로 했다.
그가 퇴직금과 그동안 푼푼이 모아 둔 돈을 털어 기계를 들여 놓고 공장을 시험가동한 것이 지난 7월.지난 10월에는 시험 가동한 결과에 만족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신의 자금력으로는 정상적인 공장 운영이 불가능해 부족한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일반 대출의 경우 이자가 비싸고 상환 기간이 짧아 창업지원 자금을 받기 위해 관계 기관을 찾아 다녔다.

통장 사본, 수표번호 제출하라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발부 받으면 일반 대출 보다 훨씬 낮은 이율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신용보증기금의 문을 두드렸다.
10월 중순 신용보증기금에 서류를 접수한 K씨는 담당 직원으로부터 2000만원 까지 보증이 가능하며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보증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그러나 K씨는 이후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7번이나 방문을 거듭했으나 3주가 지나도록 이렇다 할 대답을 듣지 못했다.
대출을 위한 기본 서류 외에 금융권 금융 거래 확인서를 비롯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23평형 아파트와 공장 등기부등본 등 필요한 서류를 제출했다.
조금은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필요한 자금이 준비된다는 생각에 기꺼이 서류를 준비해 제출한 것이다.
그러나 신보가 요구하는 서류는 점점 더 늘어났고 까다로와 졌다.
기계 견적서와 거래명세표, 납세증명서, 사용통장 사본 등을 요구한 것이다.
K씨는 “창업자금을 대출 받는데 그런 서류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기계 견적표야 기계를 구입할 목적으로 대출을 신청했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만 자금의 흐름도를 파악해야 한다며 사용하는 통장의 사본을 가지고 오라고 까지 했다. 그래서 사용하던 7개 통장을 모두 복사해 제출했다. 2000만원 대출 받는데 사용통장 사본이 왜 필요한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K씨가 결정적으로 황당해 한 것은 퇴직한 직장에서 퇴직금으로 받은 수표 번호를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역시 자금 흐름 파악.
K씨는 퇴직금을 이미 사용한 지 오래 됐고 더욱이 수표의 번호까지 일일이 기억할 수도 없어 결국 신보의 보증을 포기하고 말았다.
“세상에 창업 지원 대출을 하는데 통장 사본이며 퇴직금 수표 번호가 왜 필요한가. 일주일도 안 걸린다던 것이 20일을 넘겼고 서류 준비하고 신보에 왔다갔다 하느라 일 못한 것을 생각하면 분하기 까지 하다. 말로는 서류 보완이라고 하지만 신청자가 지쳐 포기하게 만드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K씨는 신보의 문만 두드린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청을 찾아가 상담 했으나 ‘매출 실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열전사필름 국산화에 따른 기술 보증서를 발부 받고 싶었으나 사업자등록후 6개월이 지나야 된다는 규정으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결국 K씨는 타 기관에 친척의 토지를 담보로 제공하고 나서야 보증서를 발부 받을수 있었다. K씨가 자금 지원을 위한 보증서를 받기 까지 정확히 40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금 흐름 파악은 당연하다

이에 대한 신용보증기금은 투명한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신보측은 생계형 창업 보증은 창업자가 투자한 자본 이내에서 대출을 하는 제도로서 투자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장 등의 임대계약의 경우 계약서 만으로는 부족하며 보증금을 지급한 통장 사본이나 수표번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보 관계자는 “신용불량 등으로 타인의 명의로 대출을 받아 유용하는 경우등 그동안 부작용이 많아 자금의 정확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K씨의 경우 퇴직금 수표 번호를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K씨가 퇴직금을 창업에 투자했다고 하지만 K씨가 다니던 직장에 확인 해 보니 지급된 퇴직금이 훨씬 적었으며 따라서 수표번호를 요구한 것이라는 게 신보의 입장이다.
그러나 K씨는 “다니던 직장이 1년전에 법인명이 바뀌었고 신보측에서 주장하는 퇴직금 금액은 그 이후의 계산분 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신보의 생계형 창업 보증이 처음부터 까다로웠던 것은 아니다. 99년 7월 15일 시행 이후 처음에는 모든 업종에 대해 자금 흐름에 대한 자료 요구 없이 대출해 왔다.
그러나 편법대출 등 부작용이 지적되자 이듬해 부터는 제조, 건설, 광업 분야로 지원 폭을 축소했으며 올 초부터 투자자금 등에 대한 자금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으로 조건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신보를 통한 창업 보증을 받은 경우는 극히 미비한 수준에 머물로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신보 측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신보 관계자는 “지원 업종을 축소하면서 다른 업종은 은행에 위탁을 줬다. 그러나 은행에서 이에 대한 취급을 기피하고 있으며 올 해부터는 더욱 심사가 까다로와져 사실상 생계형 창업 보증을 받는 경우는 드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결국 IMF 이후 창업지원을 위해 신설된 생계형 창업 보증은 시행 3년만에 유명무실해 지고 만 것이다.
/ 김진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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