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수술병원 없고 운동본부 전담자도 없어
시신도 의과대 학생들 실습하기에 ‘빠듯’
“어느 화창한 날 길을 걷다가 별안간 만난 소낙비처럼 그렇게 만성신부전은 찾아왔습니다. 투석으로 인한 어려움으로 우리의 웃음을 빼앗기고, 사회로부터 점차 유리되어 갑니다. 그래서 신장이식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 밝은 모양입니다. 직장에 다니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갈증이 날 때 시원한 냉수 한 잔 들이켜는 것이 우리의 소박한 바람이지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소개하는 글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 물 먹고 싶을 때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이지만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에게는 이것이 ‘꿈’이다. 이들을 건강한 몸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장기이식. 그래서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는 환우들에게 새생명을 안겨주는 그 날을 위해 ‘10년을 넘어 100년을 향해’ 라는 슬로건 아래 여러 가지 기증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생존자 중 장기기증자 전국 30만명

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장기이식 대기자는 2000년에 2천84명이던 것이 올해 4월말에는 9천3백34명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공식적으로 등록한 숫자만 그렇다. 생존자 중 장기기증을 서약한 사람은 3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는 뇌사상태에서 장기를 기증하면 심장·간장·폐장 2명·췌장·신장 2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각막과 뼈도 요긴하게 쓰이는 등 최소 8명 이상에게 생명을 나눠줄 수 있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신장이식은 신장기능이 정지돼 혈액투석을 해야 하는 만성신부전증 환자를 살리는 것으로 우리 몸의 신장 2개중 1개를 떼어내도 생활에 아무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골수이식은 골수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으로부터 채취한 골수를 주입, 정상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우리는 자신의 장기 한 쪽을 떼어내 죽어가는 환자를 살린 미담이나 릴레이 장기기증으로 여러 사람에게 생명의 빛을 전한 감동적인 사연을 매스컴에서 종종 접한다.
충북지역에서는 청주C.C.C 아카데미에서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충북본부(회장 이상훈)’를 꾸리고 지난 91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현재까지 장기기증을 약속한 사람은 모두 711명. 그러나 한 사람이 여러 장기를 기증했을 경우에는 중복 계산돼 실질적으로 사람 수를 따졌을 때는 이보다 적다. 기증 첫해인 91년에 459명이던 이 숫자는 92년 51명, 93년 36명으로 급격하게 줄어 지난 2001년에는 6명, 그리고 올해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구범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첫 해에는 청주C.C.C 대학생 회원들이 대거 참여해 400여명에 달했으나 지금은 학생들이 없다보니 적은 숫자다. 다른 지역에는 이 일만 전담하는 직원이 있고, 이식수술을 그 지역에서 하기 때문에 장기기증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나 우리 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 곳 충북본부에서는 문의전화가 오면 등록서류를 보내주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홍보자료도 터미널이나 은행 등에 비치하는 수준이다. 캠페인이라도 하고 홍보책자를 나눠주고 싶지만 직원이 없어 이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충북의 장기기증운동, 뒤처지는 이유

서울이나 다른 지역의 장기기증이 활성화 된 데 반해 충북지역은 매우 뒤처졌다는게 관련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전담 직원이 없는 것도 없는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지역 병원에서 장기이식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충북대 의대 정구보 교수는 “여기서 이식수술을 해서 실제 생명을 살리는 것을 봐야 기증할 텐데 충북은 이것이 안된다. 도내에서 장기이식수술을 하게 되면 충북대병원에서 해야 하는데, 시설과 인력이 보강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충북대병원은 얼마전에 응급의료센터 지정도 취소됐고 병원경영도 어려워 요원하기만 하다”며 지역사회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홈페이지에는 충북본부만 네트웍 형성이 안돼있다. 지역본부를 클릭하면 전국의 지역본부와 직접 연결이 되나 충북만 유일하게 빠져 있어 홍보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 성남지회’가 본부내에 골수은행과 장기은행, 각막은행, 뼈은행, 심장병어린이 후원회를 설립하고 장기기증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소식지 및 월간지 ‘이웃과 생명’이라는 출판물을 발행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따라서 장기기증운동 충북본부는 결국 몇 명 안되는 기증자들을 받아 서울 본부로 넘겨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유명인사가 장기를 기증해야 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텐데, 충북에서는 일부 목사와 교사외에는 유력인사가 없다. 도내에서는 서정석·강환진·허행백 목사와 최교숙·이진영 교사, 김관수 교원대 교수, 권혁풍 전 충북교육위원 등이 청주C.C.C측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고, C.C.C의 주서택 목사와 정구범 사무국장, 간사 20명도 기증을 약속했다.

장기기증 가로막는 장기이식법

그렇지만 관계자들은 잘못된 ‘장기이식법’이 정작 장기기증을 가로막고 있다고 분개한다. 정부는 지난 2000년 2월부터 장기이식을 합법화한다는 차원에서 장기이식법을 제정하고,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가 전국을 통합해 관리하고 있다. 이곳은 불법 장기매매를 근절하고 기증된 장기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만, 규제에 무게를 둠으로써 장기기증자들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 한 자료에 따르면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장기기증 뇌사자가 99년에는 162명이었으나 2000년에는 64명, 금년 상반기에는 13명으로 계속 줄어 올해는 30명을 넘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민간차원에서 사회적 여론을 형성한 장기기증운동이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과거에는 장기기증을 약속할 때 등록서 외에도 가족동의서, 유언장 등 서류가 복잡해 ‘기증할 마음을 먹다가도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정구범 국장의 말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부터 다행히 서류가 대폭 줄어 등록엽서만 작성하면 되고, 장기기증자를 표시하는 ‘장기기증’ 이라는 스티커도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에 붙일 수 있도록 됐다는 것이다.

충북대 의대 현재까지 55구 기증받아

한편 장기기증 못지 않게 필요한 것이 시신기증이다. 그래서 전국의 의과대학에서는 시신기증운동을 벌이고 충북대 의대도 지난 89년부터 해오고 있다. 지난 2000년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계속되는 의료폐업으로 환자들에게 불편 끼친 점을 사과하는 뜻으로 장기 및 사후 시신기증을 약속해 화제가 됐다. 의약분업 논쟁으로 의료계 폐업이 장기화되던 당시, 150여명의 의대 교수들은 장기 및 시신기증 서약식을 가졌다.
시신기증은 해부학 교육과 연구를 위해 본인의 유언이나 유가족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시신기증이 활성화되면 장묘문화 개선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시신기증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져 미국은 각 주마다 해부학 담당부서가 설치돼 기증받은 것이나 무연고 시신을 의과대학에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대 의대의 경우는 지난 87년 13구, 2001년 11구, 금년 상반기 5구 등 이제까지 총 55구의 시신을 기증받았다. 생존자 중 시신기증을 약속한 사람은 모두 161명. 해부학교실의 송진호씨는 “본과 1학년 학생이 현재 69명인데 올해 7구를 실습용으로 썼다. 작년까지는 5∼6구로 실습을 마쳤다. 대략 학생 10∼14명당 시신 1구를 쓰는 꼴인데 차후 시신이 없을 것을 대비해 ‘아껴야’ 한다. 그래서 현재 16구의 시신이 보관돼 있지만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며 “서울에 있는 대학은 시신기증자도 많다고 한다. 연대·고대가 1년에 20구 정도 쓴다고 하는데 아무리 학생수를 감안해도 넉넉할 것”이라고 부러워했다.

시신기증하면 대학 납골당에 안치

이어 그는 시신운구부터 추모식까지 경비일체를 대학측이 부담해 처리하고 원하는 사람에게는 시신을 화장한 후 유골을 돌려준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의과대 4층에 있는 납골당에 안치해 언제든지 가족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 대학에서는 지난해 ‘생명사랑 한누리’ 라는 납골당을 만들어 제사 등 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리고 기증자들의 명단을 ‘사랑을 실천하신 분들’ 이라는 제목하에 정리해 놓아 눈길을 끈다. 또 매년 해부학교육이 끝나고 나면 그 해 해부학교육에 이바지한 사람들의 유가족과 대학 관계자, 학생 등이 모여 추모식도 갖는다. 충북대에서는 故 이형래 전 농대 교수가 시신을 기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하지만 기증자 중에는 연락이 두절돼 생존해 있는지, 사망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송진호씨는 시신기증유언서와 가족동의서만 제출하면 주민등록증 만한 크기의 등록증을 만들어준다고 소개했다. 이 등록증을 항상 지참해 어디서 사망하더라도 기증의사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왕 화장하는 것 의과대학 발전에 이바지하고 대학 납골당에 안치되면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하는 의대 관계자는 다행히 화장을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 시신기증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홍강희 기자

인터뷰 / 정구보 충북대 의대교수
“시신기증은 ‘다다익선’
무연고자 시신 대학에 기증해야”
정구보 충북대의대교수 어머니 시신 기증약속 실천하고 자신도 내놓기로

충북대 의대에서 해부학을 강의하는 정구보 교수 만큼 ‘사람 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것도 죽은 사람의 시신을. 그래서 그는 가는 데마다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해달라고 요청한다. 정교수 자신과 어머니도 일찌감치 충북대 의대에 시신기증을 약속했고, 그의 어머니는 지난 2000년 7월 세상을 떠나면서 의대생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해부학 교수가 자신의 어머니 시신을 기증했다는 사실은 당시 의료계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후반, 서울대 의대 학장이며 해부학 교수였던 이광호 교수가 돌아가시면서 대학에 시신을 기증, 이 때부터 시신기증운동이 일어났다. 87년 창설된 충북대 의대도 서울대와 거의 같은 시기인 89년부터 시신기증운동을 벌였다. 의대생들에게 사람 몸을 샅샅이 살펴보고 해부해볼 수 있는 시신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전에는 행려사망자들의 시신을 시체해부보존법에 의거 시·군청에서 의과대학에 인도했는데, 얼마전부터 사회복지시설이 많아지면서 행려사망자들이 거의 없어 시신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기증운동을 벌여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어 정교수는 학생 4∼5명당 시신 1구가 있어야 충분한 실습을 할 수 있지만 현재 사정은 그렇지 못하고, 여기에 드는 예산마저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청주과학대 등의 간호·응급의학과 학생들이 충북대 의대에 와서 해부학 실습을 하는데다, 의대 본과 1학년뿐 아니라 레지던트 교육시에도 필요해 시신은 ‘다다익선’ 임을 강조했다.
“서울대를 비롯해 몇 몇 대학에서는 해부학 프로그램을 운영해 개업의나 교수들이 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 우리 대학도 이런 프로그램을 하루 빨리 만들어 교수와 의사들의 연구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그는 “도내 시·군청과 사회복지시설을 돌며 무연고사망자의 시신기증을 요청해도 반응이 없다. 아무리 시체해부보존법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강제조항을 마련해서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시신기증을 하도록 시·군에서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다행히 청원군 현도면의 노인복지시설인 은혜원에서는 시신기증운동을 벌여 충북대 의대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의대 교수들이 평소 이 시설을 찾아가 진료를 해주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정교수 말이다.
/ 홍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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