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전시한 ‘밭을 가는 남자’와 ‘추수하는 여자’ 그림이 새겨진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가 관람객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청동기는 지난 1970년, 전국의 고물상을 떠돌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수된 것이다.

언제 어디서 출토되었는지 확실치는 않으나 방패형 동기, 청동거울 등과의 공반 관계 및 제작수법 등을 따져봤을 때 아마도 대전 괴정동에서 출토된 듯싶다. 구입경로를 보면 대전의 고철상, 서울의 골동품상을 전전하였으니 대전에서 나왔다는 소문도 출토지를 뒷받침해주는 방증자료다.

유물의 아랫부분이 파손돼 아쉬움이 있으나 3분의2가량 남아 있는 부분의 삽화를 보면 성과 연관된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남은 길이 7.3cm 너비 12.8cm 두께 1.5mm의 크기로 제작수법이 비교적 정교하다.

상단부에는 6개의 구멍이 나 있고 가장자리는 톱니무늬 띠로 테를 둘렀다. 중앙에는 격자문(格子文)으로 좌우를 구획하였다. 왼쪽에는 항아리에 무언가를 퍼 담고 있는 여성이 표현돼 있다. 오른쪽 구간 위쪽에 있는 그림이 이 삽화의 백미다.

두 손으로 농기구를 잡고 밭을 가는 모습이다. 농기구는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현재의 따비와 같다. 머리에는 깃털을 꽂고 있으며 다리 사이에는 남근이 삼각형으로 완연히 표시돼 있다. 그 아래는 10개의 평행선을 그어 밭고랑을 표시했다. 밭고랑 밑으로는 여성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사람이 괭이질을 하고 있다.

밭(田)에 나가 일(力)을 한다 하여 사내 남(男)자가 생겨났다는 뜻 모음을 이 청동그릇은 삽화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누드 삽화는 무엇 때문에 남성의 심벌을 그토록 강조했을까. 머리에 깃털을 꽂은 점잖은 체면에 왜 노 팬티 차림이었을까. 이에 대해 인제대 김열규 교수는 “따비와 성기를 대비시킨 신화(神畵) 속의 신화(神話)로 사내의 씨 뿌림(射精)을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땅은 여자다. 땅은 풍요의 원천이며 생명이 발아하는 모태로 보았기 때문에 씨 뿌리는 남자 또한 원초적 형태로 표현되며 두 가지 개념을 함께 띠게 된 것이다. 땅과 사내를 ‘씨받이’와 ‘씨내림’으로 해석한 이 삽화는 어쩌면 수천 년을 잊고 살아온 성의 본래 의미를 되찾아 준 것인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성, 아니 놓쳐버린 성에 대한 개념을 회복하면서 우주 속으로 무한히 자유롭고 싶은 인간의 잠재의식과 영혼을 이 그림은 묘사하고 있다. 인간이 단순한 성으로서의 개체가 아니라 사유하고 고뇌하는 영혼의 개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벌거벗은 모습이나 머리에 깃털을 꽂음으로서 인성(人性)을 보완했고 영혼으로서의 존재의미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육신과 영혼, 본능과 사유의 병렬구도는 그 후 역사시대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나뭇가지(出) 모양을 한 금빛 찬란한 신라왕관에도 이러한 흔적이 나타난다. 왕관 가장자리의 날개깃은 영혼을 의미하며 그 안쪽으로의 사슴뿔은 육신을 표현한 것이다. 육신과 정신을 묶는 어떤 인위성 속에는 완전한 사랑의 의미를 넌지시 전달하고 있다. 즉 육체와 영혼이 하나 될 때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인간의 사랑학’을 이미 터득했던 것 같다.

선각된 새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를테면 ‘사랑과 영혼’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한 쌍의 원앙은 현실적 사랑이고 나뭇가지에 새를 앉혀놓은 것은 인간의 영혼을 안내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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