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정치사의 양대 산맥인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최근 전화통화를 했다고 해서 화제입니다. 김영삼씨는 몇 일전 그 동안 두 차례나 입원 치료를 받고 나온 김대중씨에게 전화를 걸어 건강을 걱정하며 안부를 물었다는 것인데 이 대화는 무려 12년만의 것이라고 합니다.

군사독재시절 민주화 투쟁의 동지였던 두 사람은 권력을 놓고 숙명의 라이벌이 되어 퇴임 후 서로 등을 돌리고 지내왔습니다. 김영삼씨는 자신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김대중씨에게 그때마다 ‘독재자’라고 독설을 퍼부어 왔기에 비록 건강을 묻는 짧은 문안전화였다지만 이번 통화가 화해의 조짐은 아닌가, 주변에서 기대들을 갖는 모양입니다.

당쟁으로 날이 새고 지던 조선조 숙종 때 일입니다. 노론이었던 우암 송시열과 남인이었던 미수 허목은 사사건건 의견을 달리하며 대립한 앙숙이었습니다.

예론(禮論)을 둘러싸고 우암과 맞서다가 삼척부사로 쫓겨갔던 미수는 다시 판중추부사가 되어 돌아오자 우암을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통박할 정도로 그 관계는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나 다름없었습니다.

이들은 효종이 41세의 나이로 재위 10년만에 승하하자 이른바 조대비의 복상(服喪)문제를 놓고 다시 첨예하게 맞섰습니다. 복상문제란 조대비의 복을 대공(大功), 즉 9개월로 하느냐, 기년(朞年), 즉 1년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우암의 승리로 끝이 났고 그로 인해 남인은 관직에서 쫓겨나거나 귀양을 가야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당파는 달라 정치적으로 적대관계였지만 인간적으로는 상대방의 인품과 능력을 인정하는 그런 일면을 서로 갖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암이 심하게 체해 거의 죽게되었습니다. 고통을 이기느라 초죽음이 된 우암은 아들을 불러 “미수에게 가서 약 처방을 얻어 오라”고 명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분부대로 미수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처방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미수는 “약은 무슨 약? 비상이나 한 숟가락 먹으라지”하고 퉁명스럽게 내 뱉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크게 분개했습니다. “비상(砒霜)이라면 독약인데, 그것을 약으로 쓰라니 말이 될법한 일인가.”

그러나 우암은 달랐습니다. “미수가 그랬다면 틀림이 없겠지. 어서 비상을 가져오너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놀라 “아니, 그건…”하고 주저하였으나 우암은 “어서!”하고 호통을 쳤고 결국 그는 비상을 먹고 체한 것을 뚫었습니다.

그때 우암은 매일 아침 식전에 간장을 한 종지씩 마시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을 알고있던 미수는 웬만한 약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넌지시 극약인 비상을 일어 주었던 것입니다.

정적이었지만 상대방의 인품을 신뢰하고 처방을 부탁한 한 우암이나 오해의 소지를 무릎 쓰고 바른 처방을 해준 미수나 대인답기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현실 정치에서는 라이벌이었지만 인간적 측면에서는 친구였던 것입니다.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은 대권의 꿈을 이룸으로써 정치적으로 성공을 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듯 이제는 국가의 최고원로입니다. 현직에서 물러나 있긴 하지만 아직도 정치,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 국민들은 두 사람의 불화를 보면서 솔직히 민망함을 느껴 왔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서운했기에 저럴까” 시선이 곱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라도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웃는 낯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이 대인의 도리요, 금도(襟度)입니다. 그리고 도량이고요. 나라의 어른인 두 사람이 “허, 허”하고 웃으며 손을 잡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전투구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박수를 칠 것입니다. 정치는 청와대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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