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이젠 지방신문의 정체성을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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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생각한다] 이젠 지방신문의 정체성을 세우자
  • 충청리뷰
  • 승인 2002.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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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얘기 좀 하려 한다. 충북 도내에는 현재 4개의 일간지가 있다. 전국에서 꼴찌를 다투는 지역경제 규모에 비해 과다하다는 비판이 당연히 나올만하다. 실제로 네개 신문사가 하나같이 파행, 경영난을 겪으면서 그 종사원들의 처우와 존립이 말이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또 다른 창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위불일치, 다시 말해 밖으로부터의 평가와 그 실체 사이의 갭이 도내 신문사만큼 큰 곳도 없다. 어느 땐 엄청난 좌절감으로 엄습한다. 그래서 또 명예훼손에 걸리더라도(?) 넋두리를 늘어 놓겠다.
지방에서 언론생활을 하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주변으로부터 기자들이 지식인으로 불려질 때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충북지방 신문기자와 지식인을 매치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지식인이라는 어휘에 무슨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이렇게 추론한다. 사회학의 단순한 정의를 빌려 지식인이라는 것이 애초 부르조아사회 이후에 생겨난 일종의 특수 계층이라고 정리한다면 부르조아지가 권력에 예속되기를 거부한 것처럼 지식인 역시 사유(思惟)와 이를 위한 자유의 폭을 훼손당할 경우 과감히 맞서야 한다. 어차피 사회집단으로서의 지식인은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시민계급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기존의 봉건적 체제에 저항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지방의 신문기자들은 원초적으로 지식인 자격을 상실했다. 최저 생계비도 못받으며 자신의 청춘을 바친 삶의 터전에서조차 쫓겨나면서도 전혀 항거하지 못한다. 부도덕한 사주의 전횡과 편집권 침해에 맞서 투쟁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아류로 전락한 후 기생하는데 길들여져 있다. 도내 신문사에 정상적인 급여가 자취를 감춘지는 이미 오래 됐다. 과거에는 지사적인 정신으로 이같은 ‘기아’를 이겨냈다고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신문사 재산이 거덜난 데는 언론사를 사유화한 사주의 책임이 크다. 그런데도 이곳 종사자들은 체념으로 일관하고 있다. 신문사에 그 흔한(?) 노조 하나 없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러면서 기자 스스로는 지역의 각종 사회현상에 대해 메스와 비판을 가하고 때론 선지자적 입장에서 계몽까지 시도한다. 이런 황당한 경우도 없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나를 비롯한 지방신문사 기자들은 ‘사이비 정신’을 공유하며 이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만약 조직을 장악한 권력자에 예속되어 스스로의 판단에 재갈이 물린다면 그는 이미 지식인이 아니다. 지식인에겐 지적인 소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강조되는 것은 도덕적 성찰과 이에 근거한 용기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우리지역의 신문기자들은 지식인에게 가해지는 가장 혹독한 비판을 결코 면키 어렵다. 언론 지식인은 없고 언론 기능인만 양산되는 게 충북의 현실이다.
지식인에 대한 통상적인 분류, 예를 들어 체제지향적이냐 혹은 체제비판적이냐 그것도 아니면 무관심이냐가 지금 우리한테 절실한 화두로 대두되는 것은 이런 타락의 원인을 과연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지방의 현실은 체제지향이나 체제비판보다는 오히려 무관심에 가깝다. 그것도 오랜 체념에 따른 자기합리화적 무관심이 신문사 종사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그러나 이런 무관심은 일종의 자기 기만으로, 체제비판이나 체제지향보다 해악이 훨씬 더하다. 지금 신문사의 파행은 바로 이런 것들의 결정체이고 때문에 사주뿐만 아니라 그 종사원들의 책임 또한 크다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장한다. 어느 특정인(여기에는 사주도 포함된다)의 개입이 오히려 신문사운영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를 배제시키고 종사원들 스스로 생존을 모색하라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일부 신문사에서 이런 조짐이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더 이상 부도덕한 사주를 용납해선 안 된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나 주인의식, 더 나아가 조직의 발전은 이러한 자율적인 참여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젠 더러운 노예근성을 버리고 분연히 일어날 것을 촉구해 본다.
창간 9주년을 맞은 충청리뷰도 고해성사를 하겠다. 기자들의 조로현상, 이로 인한 구역질나는 매너리즘, 기사가 아니라 언어의 유희가 난무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앞으로 추상같은 비판정신을 곧추세울수 있도록 채찍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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