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3년 가을, 일곱명의 젊은이가 모였다. ‘언론다운 언론’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는 목적으로 이들은 뭉쳤다. 돈도 없고 사무실도 물론 없었다. 창간기금은 1인당 몇 백만원씩 출자해 마련했고 사무실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더부살이 하기로 했다. 그래도 뭔가 해보자는 의욕 때문에 희망이 있었고, 하면 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 번듯한 사주를 모셔오고 그 아래 직원을 뽑아야 언론사를 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뜨린 것이다. 이것이 충청리뷰의 시작이었다.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청주지역에서 그야말로 돈키호테식으로 회사를 만들고, ‘우리에겐 성역이 없다’는 자세로 취재를 다녔으니 왜 어려움이 없었겠는가. 토착비리세력도 많고, 성역도 많고, 언론기피증 ‘환자’도 많은 이 지역에서 충청리뷰 기자들은 ‘왕따’ 당하기 딱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동종업계인 타 사 기자들도 겉으로는 ‘수고한다’고 했지만 뭐 이상한 동물 보듯 했다. 더욱이 청주의 모 언론사 사장은 충청리뷰에 드나드는 자사 기자들을 체크하며 같이 어울리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충청리뷰 기자 000인데요.” “네? 충청이불요? 충청비디오요?” 아니, 이 것까지도 좋았다. “충청러브요?”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상호를 알아들어도 가면 영락없이 “거기가 뭐하는 덴데요?”하는 말이 날아들기 일쑤였다. 시사종합지라는 개념이 없었고, 주간지라면 생활정보지만 있는줄 알고 있던 지역민들에게 충청리뷰를 인식시키는 데에는 실로 몇 년이 걸렸다.
‘올곧은 말 결고운 글’을 모토로 성역없는 취재를 하다 보면 “왜 혼자만 깨끗한 척 하느냐”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좋은 게 좋은 것이고, 되는 것도 없지만 안되는 것도 없는 지역성을 감안해 적당히 살면 되지 왜 남들이 안쓰는 기사를 쓰려고 하느냐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게다가 이 지역은 좁아 세 사람만 걸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친인척, 선후배, 고향사람이 널려 있는 이 동네에서 잘못 했다가는 낙인이 찍히는 곳인데 얼마나 많은 뒷소리를 들었겠는가.
가장 어려웠던 때는 IMF 당시였다. 그동안 지켜온 정신을 꺾이는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들었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거품’ ‘거품’ 하며 한국경제에 들어간 거품 걷어내기에 골몰하고 있을 때 우리는 걷어낼 것이 없는 판국에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했다. 이제 창간 9주년. 태어나서 걸음마를 배우고, 말을 익혔으며, 글씨도 쓰는 나이가 됐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독자들로부터 ‘충청리뷰 왜 그러냐, 정신차려라’ ‘충청리뷰에 실망했다’ 라는 말을 듣는다. ‘재미없어서 구독 끊겠다’는 전화도 받는다. 그렇다. 우리는 창간 초기 정한 목표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멀었음을 인정한다. 부족한 점 모두 시인한다.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놓고 독자들에게 무조건 먹으라고 한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어떤 자본가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자유의지에 따라 이 만한 나이로 성장한 것을 자축하고 싶다. 이것은 충청리뷰를 격려해주고 사랑해준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건 충청리뷰가 취재해야 돼’라며 은밀한 기사거리를 알려주는 독자들 때문에 우리는 힘을 얻는다. ‘다음 주 신문이 기다려진다’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늘 처음처럼’ 이 길을 갈 것이다. 나는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할머니가 되더라도 취재를 다니는 그런 기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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