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들창을 흔드는 밤, 어머니를 깨운 것은 바람소리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어깨싸움이 벌어지는 아랫목은 우리에게 내주고 가족들의 곤한 잠을 지키려 늘 연탄불을 갈았다. 그렇게 연탄불은 어머니의 삶과 닮아 있다.
연탄처럼 온전히 주고만 가는 것이 또 있을까? 밤새 구들을 데우다 새벽녘에는 은근히 밥을 뜸들이고 하얗게 재가 되어서도 비탈진 세상에 으깨어져 위태로운 발걸음마다 연탄길을 열어줬다. 그런 연탄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지 이미 오래다.
편리함을 이유로 보일러에게 자리를 내주고 연료마저 기름과 가스가 보편화된 것인데, 한 덩이 재로 남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연탄의 정신도 세태에 밀려나 서민들의 삶은 더욱 가파르고 미끄럽기만 하다.
그런데 연탄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기름 값이 오르고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도내 연탄소비가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연탄을 때는 달동네 서민들의 삶이야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이 없다지만 화훼단지나 양계장, 음식점 등에서 연료비를 줄이려고 연탄보일러를 새로 들이는 까닭이다.
이렇다 보니 도내 최대 규모의 연탄공장인 음성군의 경동개발은 2005년 한해 22공탄의 생산량을 약 2000만장으로 잡고 생산라인을 연장 가동하고 있다. 이는 IMF 경제위기 이후 생산량을 대폭 늘린 뒤 그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연탄불에 의지해 삼동을 나는 수동 달동네에 온기를 전하는 사람은 역시 수동 주민인 오기현(75) 할아버지다.
수동 청주시 상당보건소 인근에 사는 오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 담벼락에 붙여 두평 남짓한 연탄창고를 짓고 전화주문이 오면 배달을 나간다. 해마다 10월이 돼야 일거리가 몰려들기 시작해 겨울을 날 때까지 너댓 달 장사이다 보니 “이 것 갖고는 밥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할아버지의 푸념이 너스레만은 아니다.
그래도 10여년 째 이 일을 해오다 보니 수동 달동네에서만은 모세혈관 처럼 퍼진 달동네 골목골목 마다 할아버지의 연탄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평평한 길은 차떼기로 가지” 텔레비전에서나 듣던 차떼기란 단어가 뜻밖에 오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온다.
그러나 차가 못가면 손수레가 가고 손수레도 못가는 좁은 골목은 등짐으로 나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22공탄 연탄 한 장 값은 배달 난이도에 구애받지 않고 200원 정도다. 연탄 한 장 값을 물으니 한참 계산을 해야 답이 나올 정도이니 ‘콩이야 팥이야’ 일일이 따지지 않는 것이 오 할아버지의 경영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