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화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이룩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나서 대화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때로는 다투었으며, 남녀간에 마음이 맞으면 짝짓기에 나섰다. 그러한 현상들의 총체적 집합체가 바로 역사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남'은 역사의 시발점이다. 만남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남녀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원수와의 만남 등등. 그 만남이 평화적 형태에서 큰 규모로 이루어질 때 이를 두고 사람들은 '축제'라 했다.
축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수히 널려있다. 서양에서는 발렌타인 축제, 할로윈 축제, 쌈바축제 등이 난무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대사회에서는 위지동이전에도 언급돼 있듯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등 많은 제천의식을 엿 볼 수 있다.
이러한 축제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주로 귀족계급에 의해 주도돼 왔다면 서민들이 주축이 되어 닷새마다 열린 축제의 열린 마당이 바로 우리의 '장날'이었던 것이다. 기자조선, 삼한시대부터 있어온 장(場)의 생명력은 참으로 끈질기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며 숱한 전란과 정쟁(政爭)을 겪으면서도 장날은 억새풀처럼 웃자라며 만남과 축제의 흥 풀이 마당을 흥건히 펼쳐왔던 것이다.
장의 일차적 기능은 경제활동에 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생산한 소출물을 내다 파는 경제행위가 주목적이며 그러한 필요성에 의해 '장'이라는 모임과 교환의 공동체 행위가 생겨난 것이다.
육거리 시장엔 없는게 없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은 모두 갖추고 있다. 우선 푸짐한 먹을거리에서부터 입을거리, 멋낼거리가 풍족하다. 각종 육류, 생선류, 피복, 그릇 등이 가게마다 산더미 같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족발을 보면 대번에 소주 한잔이 생각난다. 나무로 만든 간이 의자에서 순대랑 빈대떡이랑 함께 먹는 막걸리 맛도 일품이다. 흥정을 하기전에 잔 멸치 한 두 마리쯤 맛을 보는건 흉도 아니고 뭐라는 사람도 없다. 그게 재래시장의 인심이고 또 강점이다.
물건만 푸짐한게 아니라 현대생활에서 잃었던 인정을 맛보는 곳이 바로 재래시장이다. 바뀐게 있다면 시설의 현대화다. 고객이 불편하다 하여 아케이트 공사를 하고 손수레인 카터를 들여놓고 화장실도 지었다.
대형 할인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 모두가 불가피한 조치다. 외국에서도 재래시장은 물건을 바꿔 쓰는 '벼룩시장'을 비롯하여 토산품 등을 파는 프리어마켓이 관광 명소로 인기를 끈다.
값도 헐하고 그 나라, 그 지방의 풍물을 구경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대형매점을 이길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인 것이다. 육거리 재래시장에는 아직도 튀밥집 등이 있다. 그런데 이 튀밥 기계도 많이 변했다. '펑이요'하는 소리와 함께 튀밥을 튀기는게 아니다. 그 일련의 과정이 온 라인으로 돼 있다. 장작을 쪼개거나 관솔불을 지피는게 아니라 가스가 이를 대신하고 손잡이 수동식은 모터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일정 시간만 지나면 그냥 튀밥이 생산된다.
김 굽는 기계도 마찬가지다. 아낙들이 청솔가지로 일일이 기름 소금을 발라 석쇠에 한 장씩 넣고 굽는게 아니다. 기름 소금을 바르는 일, 온도를 맞춰 김을 굽는 일이 자동화돼 있다. 명주타래에서 실 뽑듯 연신 구운 김이 기계를 통해 나온다.
생선가게 주인의 손놀림은 능숙하다. 손님의 요구에 따라 생선내장을 척척 발라내고 토막을 내 주는 손 동작이 잽싸다. 칼 도마는 소나무나 물푸레나무가 제격이다. 소나무는 소독작용이 있고 물푸레 나무는 벌어졌다 쉽게 오므라 드는 물성(物性)이 있기 때문이다.
'자, 떠리미요 떠리미' 해가 서산에 기웃거지자 마음이 급해진 트럭 노점상이 나투리를 헐값에 판다. 태양이 매일 떠오르고 지듯이 육거리의 흥정은 매일 계속된다. 특히나 2일, 7일 서는 청주 장날이 오면 육거리 재래시장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수백명의 노점상들이 새벽부터 인도(人道)까지 점령한다.
예로부터 장사는 몫이 좋아야 잘 된다. 노점상을 할라치면 자리 싸움부터 배워야 한다. 이 또한 생존경쟁을 위한 불가피한 전투다. 시장바닥에 근거를 둔 노점상이외에도 시내버스가 닿는 인근 지역에서 원정(?)온 노점상도 적지 않다.
봄이면 달래, 냉이, 씀바귀, 벌금자리가 봄내음을 도시로 전하고 여름이면 상추 쑥갓 등 소채류가 지천이다.
전통 5일장이 공식적으로 폐쇄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지만 생활의 습성은 바꾸어 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청주 장날이 오면 수많은 장꾼들이 육거리에 몰려 삶의 애환을 이렇게 엮어간다. <임병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