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길은 우르무치에서 끝나지 않는다. 알마타 타시켄트 사마르칸드 이스탄불 로마로 이어지는 이 길은 이제 훗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오아시스 문명과 비운의 화가 한낙연
지금까지 인간이 발전시킨 문명이란 따지고 보면 물과 불을 다루는 기술에 다름아니다. 인간생활에 필수적인 물과 불의 이용은 그것이 인간생활에 가져다주는 편안함 못지 않게 제대로 다루지 못할 때 입게 되는 위험 또한 만만치 않다. 재해(災害)의 ‘재’란 글자가 물(川)과 불(火)의 합성어로 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물이 강조되어 있는 것은 하천유역에서 문명을 발전시킨 사람들의 의식이 문자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하천 유역에서 발생한 인류고대문명의 주된 관심사가 수재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지표수인 하천을 잘 관리, 이용하는 것이라면 사막의 오아시스문명은 땅속에 묻힌 지하수를 개발하여 그 물이 마르지 않도록 보존, 관리하는 기술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죽은 듯이 보이는 지나간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생한 귀감이 되게하듯 죽어있는 듯한 사막에 생명을 불어넣어 오아시스도시를 건설하고 그를 통해 실크로드가 이어지게 한 것이 바로 오아시스 문명이었다. 이처럼 고난에 찬 실크로드 문명의 애환을 예술혼으로 승화시킨 이가 바로 비운의 조선족 화가 한낙연이었다. 프랑스유학화가였던 그는 돈황석굴과 그 서쪽의 키질석굴을 조사하고 박진감넘치는 독특한 필치로 벽화들을 묘사했다. 뿐만아니라 실크로드의 풍경과 주변 여러 민족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민속화를 보고 있노라면 실크로드문명에 서린 애환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낙연은 1947년 7월 우르무치에서 제10회 전시회를 마치고 난주로 돌아가다 비행기 사로로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냥 그렇게 반세기 동안 그는 우리에게서 까맣게 잊혀져 있었다.

투르판에서 만난 위구르처녀
투르판의 젖줄 카레즈 앞 민속 공연마당에서 만난 위구르 무희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다섯명의 악사가 연주하는 위구르 전통 가락에 맞춰 벌이는 남녀두쌍의 가무는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우리 일행까지 흥에 흠뻑 취하게 했다. 빠르고 격정적인 춤과 가락, 그리고 흥겨움의 끝자락에 왠지 모를 우수가 묻어남은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온 그들의 역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하여 나도 모르게 연민의 정이 피어올랐다.
위구르처녀들이 내뿜는 눈빛에 매료되어 곁에 있던 조선족 총각가이드에게 은근히 말을 붙여보았더니 눈매는 참 예쁘지만 양고기 노린내 때문에 자기는 꼭 조선족처녀랑 결혼하였다고 하였다. 노린내 맡을 기회와는 무관한 나로서는 그래도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 삭막한 환경 속에서 그들이 한끗 사치를 부린 화려한 붉은 비단옷색깔과 함께.

돈황의 인심
돈황의 명사산 입구에는 낙타탄 관광객의 모습을 즉석사진에 담아 관광을 마치고나오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파는 장사들이 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찍은 사진을 종이틀에 끼워 20위엔(약3000원)씩에 팔고 있었다. 사지않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수입이 짭짤한지 사진 사는 쉴새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마침 우리 일행 중 한 학생이 기념물 판매대 위에 카메라를 놓고 왔다. 그런 사실도 모른채 다음 행선지로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사진판매대에 있던 두 젊은이가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토바이를 타고와 사진기를 잃어버리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는가. 그들이 맡겨놓은 카메라를 명사산입구 파출소에서 찾아오면서 나는 우리 일행의 모습이 담긴 사진 5장을 샀다. 돈황의 젊은 인심에 흐뭇해 하면서.

중국여행과 물건값
중국은 한집 건너 물건값이 다를 만큼 딱 부러지게 정해진 것이 없는 나라다. 담배값, 술값, 밥값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도 얼마든지 할인을 해준다. 그러니 어디가서든 남보다 물건을 싸게 산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남보다 비싸게 산 것을 가지고 속상해 하다보면 여행기분이 망가지기 마련이다. 현명한 여행자라면 자기가 준 금액만큼의 물건값어치를 인정하고 유용하게 쓴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물건을 보고나서 자기가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값을 매기는 연습을 해본다고 생각하면 물건흥정 때문에 여행기분이 위축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아울러 중국사람들은 명품을 모방하여 만든 물건에도 그 나름의 가치를 부여한다. 쓰지 못할 가짜상품이 아니라 쓸만한 모조품이라면 진품이 아니라고 무시하는 일은 결코 없다. 훌륭한 모조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길 실크로드
비단을 운반하는 대상들의 행렬이 사라져버린 오늘의 실크로드는 보이지 않는 길 묻혀버린 길이다. 그러나 그 옛날에도 그랬듯이 실크로드는 그 길을 찾으려는 자들에게는 홀연히 신기루처럼 나타나는 신비의 길이다. 천여년을 사막의 모래바람에 덮여 죽은 듯이 지내는 길이지만 언젠가 ‘새로운 실크’를 들고 이 길을 다시 밟을 자가 등장하는 날 또 한번 우리 앞에 찬란한 옛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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