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 갈등’은 대선정국의 단골 레퍼터리
92년 정주영-<조선일보>·97년 이인제-<중앙일보>, 한판 대결

대통령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언론사와 정당간의 치열한 공방전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언론사의 특정후보 편들기’ 시비와 ‘특정정당과 언론사의 대립’은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벌써부터 올 12월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과 언론사간의 치열한 대립구도가 엿보이고 있다. 예년에 비해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이 싸움이 대선 구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언론사의 특정후보 편들기와 깎아 내리기 시비의 시작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지만 이것이 본격화 된 시기는 92년 14대 대선부터이다. 그 후 15대 대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됐으며 이번 16대 대선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92년 14대 대선에서는 <조선일보>의 ‘YS 대통령 만들기’가 논란을 일으키며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와 <조선일보>간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조선일보>는 각종 칼럼과 사설에서 사업가 출신인 정주영 후보의 정치적 약점을 기술하며 ‘재벌정치’라 칭하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신문은 1992년 4월1일자 홍사중 칼럼(정주영 대표의 갈길)에서 “재벌이 분풀이를 위해 정당을 만든다는 사실이 그의 판단력을 의심케 만들기에 충분했다”며 “누구나가 두려워하는 것은 국민당이 현대라는 특정재벌의 이해의 대변자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라고 서술하는 등 정 후보에 대한 편파적인 보도를 일삼았다. ‘정주영 변수’의 의미를 깎아 내림으로써 김영삼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선을 이끌고 나가려는 <조선일보>의 시도는 계속됐고, 이에 정주영 후보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 후보측은 <조선일보>에 게재하기로 했던 현대그룹과 국민당의 광고를 모두 취소했다. 그는 이와 함께 조직적인 <조선일보> 불매 운동을 벌였으며 <조선일보> 기자의 당사 출입금지 등으로 대응의 강도를 높여나갔다. 결국 대선에서 정 후보가 떨어지고 싸움의 승리는 외견상 <조선일보> 측에 돌아갔지만, 이 같은 대선 후보와 언론사간의 대립 양상은 ‘언론사의 특정후보 죽이기’를 일반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이런 모습은 97년에도 재연된다. 배역만 약간 바꾼 채 똑같은 내용의 연속극 한 편을 재방송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면서 말이다.
97년 대선에선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와 <중앙일보>간의 한판승부가 있었다. <중앙일보>는 1997년 11월 2일 ‘비주류-이인제-김심’(최병철 유도회 사무부총장)이란 칼럼에서 삼국지를 인용하며 탈당한 이인제 후보를 꼬집었다. 또 이 후보와 신한국당의 비주류들을 김영삼 대통령의 ‘신하’로 지칭하기도 했다.
지금 여야간의 대립을 격화시키는 ‘병역비리’는 5년 전에도 이야기 거리가 됐다. ‘병역비리’로 인한 자당 후보(이회창)의 지지율 하락을 대선 독자 출마의 명분으로 삼았던 이인제 후보가 이를 쟁점화한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 후보는 이회창 후보의 차남인 수연씨가 키를 속여 군 면제를 받았다는 주장을 했고 그에 따라 키를 재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이인제 후보의 말 바꾸기식 행동을 중점 보도하며 후보사퇴를 요구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이 후보와 <중앙일보>의 싸움은 법정공방으로까지 치달았다.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가 쓴 ‘이회창 경선전략 문제점과 개선방향’이란 제목의 보고서가 갈등의 핵심. 이 문건에 대해 국민신당은 ‘선거전략보고서’라 주장했으며 <중앙일보>는 ‘정보 보고용’이라고 맞섰다. 결국 <중앙일보>는 이 후보와 대변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고 이 후보측도 <중앙일보>를 선거법위반혐의로 고소했다. 이 외에도 <중앙일보>는 각종 기사와 사설에서 ‘이인제 후보 깎아 내리기’를 감행했으며 국민신당 역시 <중앙일보>를 주적으로 삼고 맞대응을 펼쳤다. 16대 대선을 앞둔 언론사와 정치권의 대립은 한나라 대 MBC, 민주당 대 <조선일보>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민주당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의 연설문에서 일부분을 부각시키며 노무현 후보의 자질을 문제삼기도 하고 편집 과정에서 편파적인 제목을 실음으로써 노 후보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5월29일자 1면과 31면에서 노 후보의 “남북대화만 잘된다면 다른 분야는 ‘깽판’이 나도 좋다”는 발언을 부각시키며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다.
지난달 27일 한나라당 공정방송특위가 MBC를 포함한 방송 4사에 ‘협조 공문’을 보낸 것도 방송가의 ‘뜨거운 감자’이다. 5년마다 반복되는 정치권과 언론사의 뜨거운 공방전과 특정언론의 ‘특정 후보 대통령 만들기’는 이제 국민들에게 핫 이슈가 아닌 식상한 연례행사라는 느낌이다.
앞으로 4개월이란 시간을 남겨놓고 있는 대선 전의 정국은 여러 가지 문제들로 그 어느 때 보다 시끄럽다. 그래서 정치권과 언론사 모두 이쯤에서 한번 쉬며 자신의 뒤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언론사는 자신의 명분인 공정보도를 잊고 있는 게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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