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확대되자 ‘낮은 포복’…‘MBC 정조준’은 계속
‘신보도지침’에 이은 ‘피감기관화’ 추진 등으로 전면전 예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역비리 은폐 의혹 보도로 촉발된 한나라당과 MBC의 정면충돌 양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한나라당의 ‘신보도지침’ 파문은 올 대선 역시 역대 대선에서 표출된 ‘정-언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일단 ‘신보도지침’ 파문은 한나라당이 고개를 숙임에 따라 수습 국면으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MBC의 ‘국정감사 피감기관화’를 추진하고 있어 한나라당과 MBC의 제2, 제3의 전면전은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말 MBC를 포함한 방송4사에 보낸 ‘불공정 보도 시정 촉구’ 공문을 둘러싸고 ‘신보도지침’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공문은 “병역의혹 문제 보도와 관련해 이정연씨 얼굴이나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자제할 것” 등을 주문하고 있다.

한나라당 ‘신보도지침’
유감표명은 “여론무마용”

한나라당은 이를 두고 “편파 방송에 대한 자구책”이라고 주장했지만 MBC 등 방송사는 “대선을 겨냥한 방송 장악 기도”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한나라당과 MBC간의 공정성 시비는 그 동안 계속되어 왔지만, 양측이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나라당과 MBC의 갈등은 지난 5월 방영된 <MBC스페셜>의 ‘국민참여 경선’편부터 시작 돼 <뉴스데스크>의 서해교전 사태 보도 등을 거치면서 가시화됐다. 양측은 다시 병풍 보도와 MBC 국정감사 피감기관화를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고, 결국 한나라당의 ‘협조 공문’을 계기로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 ‘협조 공문’으로 인해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방송사 노조로부터 “5공 초기의 언론통제를 연상시키는 ‘신보도지침’”이라는 비난을 받은 것은 물론 당 일각에서조차 “어처구니없는 무모한 짓”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검찰의 병풍 수사가 급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에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방송사에 ‘신보도지침’을 주문한 것은 “정상적 대응이 아닌 오만에 가까운 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특히 당 일각에서는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의원들의 충성경쟁이 도를 넘어 선 것 아닌가”하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신보도지침’의 파문이 확산되자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유감표명은 ‘신보도지침’ 파문에 따른 비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공문을 발송했던 현경대 편파방송대책특위 위원장은 지난 5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방송보도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협조를 요청한 것인데 진의가 잘못 전달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청원 대표는 “앞으로는 공문을 보낼 때 대표의 결재를 꼭 받도록 해서 재발을 막겠다”면서 공문에 도장을 찍은 실무자의 문책 방침을 밝혔다. 지도부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의 공문이 발송됐다며 책임을 실무자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러나 실무 책임자들은 “그동안 대부분의 특위 활동은 대표와 총장의 결재 없이 이뤄져온 게 관행이었는데 입장이 난처해지자 실무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실제로 ‘신보도지침’으로 인한 MBC와의 갈등이 고조됐던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는 강경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MBC에 대한 취재거부 및 기자실 내 부스 폐쇄, 시청거부운동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과 1주일 만에 한나라당이 유감표명 쪽으로 선회한 것은 진의를 떠나 파문이 길어질수록 당의 입장만 난처해진다는 계산 때문이다.
특히 한 의원은 “협조공문에 대해 유감은 표명했지만 MBC의 병풍 보도가 편파적이라는 당의 입장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 뒤 “한나라당은 MBC를 국정감사 대상으로 하는 내용의 감사원법 개정안 처리를 당초 방침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MBC 피감기관화’ 추진,
“한나라-MBC는 전쟁중”

“이 싸움이 사실상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겠다.”
한나라당의 MBC 국정감사 피감기관화 추진에 대한 MBC의 반발이 거세어지자 고흥길 편파방송대책특위 간사가 지난 8월 30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소속 의원들을 향해 던진 말이다. 정치와 언론과의 긴장관계는 계속 있어 왔고, 언론이 한나라당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한나라당 역시 언론의 왜곡방송을 좌시하지만은 않겠다는 고흥길 의원의 부연설명도 뒤따랐다. 결국 MBC의 보도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를 할 것이며, MBC의 국정감사 피감기관화 역시 MBC에 대한 압력의 일환임을 고 의원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특히 이날 의원총회에서 나온 발언들은 앞으로 MBC와 한나라당간에 더 큰 충돌이 불가피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날 서청원 대표는 직접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3회 반복), MBC 사장이 대선 때까지 이 후보 아들 병역의혹을 크게 보도하라고 지시한 비공식 문건을 입수했다”는 식의 폭로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어진 비공개 회의에서도 편파방송대책특위의 한 의원은 “MBC 임원회의 때 김중배 사장이 ‘이회창이 집권하면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제거될 수밖에 없다. 강경 대응하라’고 지시했다”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말해 참석 의원들의 전의를 자극했다.
다른 의원들도 경쟁을 하듯 “MBC의 당 취재를 거부해야 한다”, “MBC에 몰려가 항의 시위를 하자”는 등 극단적 대응을 주문했다. 한 초선 의원만이 유일하게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며 “이러다가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선 지고 만다”고 자제를 촉구했지만, 강경론에 묻히고 말았다. 이러한 당내 강경 분위기가 결국 ‘협조 공문’과 같은 ‘무리수’를 두게 한 셈이다. 이러한 양상이 지속되는 한 한나라당과 MBC간의 제2, 제3의 전면전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최영묵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는 최근 한 신문에 쓴 기고문에서 한나라당과 MBC의 전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강경 분위기 무리수 불러

“한나라당은 (MBC를 향해) 사안별 소송이나 민영화 등 제도개편을 들먹이며 전방위 압박을 넣고 있다. 오만하게도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문화방송을 민영화할 수도 있고 국정감사 대상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듯하다. 민영화에서 국정감사까지 극단을 오가는 그 정책의 수준은 논외로 해도, 결국 그들은 문화방송에 재갈을 물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MBC 국정감사 피감기관화 방침에 대해 MBC는 “12월 대선에서 보도에 제약을 가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언론보도 통제에 국정감사를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반증하는 것으로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편, ‘신보도지침’ 파문으로 상처를 입은 한나라당은 MBC의 국정감사 피감기관화 방침과 관련 속도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한 MBC의 대응도 주목된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더 치열한 ‘미디어선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대선을 4개월도 채 안 남긴 지금, 한나라당과 MBC의 본격적인 전쟁은 어쩌면 이제 막 시작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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