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고 교육과정 설계한 박명진·조정자 교사 인터뷰

묶음기사

은여울 중·고등학교와 목도나루학교에 이어 단재고등학교가 오는 2024년 3월 문을 열 예정이다. 지난 2020년 교육부 재정투자 심사(중투) 조건부 승인을 받으면서 단재고 개교는 탄력을 받았고, 최근에는 교육과정과 공간구성까지 마무리되었다. 현재 윤건영 충북교육감의 결재 정도만 남아 있는 상태다.

단재고는 지난 2018년부터 대안교육연구회 중심의 교사 20여명이 대안교육의 필요성과 가치, 미래교육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고민한 결과 설계되었다. 전문가들로부터 미래사회에 적합한 혁신적인 학교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럼에도 최근 가덕면 지역 주민들과 일부 충북교육청 관계자들은 부정적 또는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단재고 교육과정이 진정한 미래교육과정인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고, 과거 대안학교의 부정적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재고 설립 초기부터 교육과정과 공간을 직접 설계하고 앞으로 단재고 학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는 교사들로부터 단재고 교육의 목적과 특성, 우려 또는 기대되는 점에 대해 들어본다.

 

Q. 단재고등학교 설립 취지는 무엇입니까?

A. “단재고는 미래사회에 적합한 교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전통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적합한가?’, ‘많은 직업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질문입니다.

OECD, 유네스코 등에서 발표한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미래사회에서는 학습자 주도성과 함께 미래사회 건설을 위한 지속적인 배움과 실천역량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미래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천하는 자기주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단재고의 교육목표는 신채호 선생의 철학과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자립과 상생을 기반으로 한 능동적 평생학습자 양성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자립적 삶, 더불어 사는 삶,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평생학습자 양성을 지향합니다.”

 

박명진 교사.
박명진 교사.

 

Q. 단재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A. “단재고의 기본적인 교육과정은 △지식 △감성 △생활 △생태 교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식교과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을 말하는데, 이 과목들은 각각 분리된 교과가 아닌 삶 속에서 필요한 지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주제융합, 교과통합, 프로젝트 수업으로 구성됩니다. 미래사회의 소통 도구로 디지털 리터러시를 제고하는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성교과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감수성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고 균형 잡힌 인성을 형성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생활교과는 의식주를 기본으로 하는 삶의 기술을 실천적으로 체득해가는 경험 중심의 배움을 통해 생활인으로서 지혜를 배우고 타인과 공감하고 협력적인 관계형성 능력을 기르는 것이 목적입니다.

생태교과는 생태적 감수성을 기르고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나가는 생태적 삶을 배우는 교육과정입니다. 지구촌의 공동체적 가치를 높이고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공존과 상생하는 인격 형성을 목표로 합니다.

모든 교과는 학업내용의 숙달 및 융합, 비판적 사고와 문제해결력, 협력. 자기주도학습, 학업에 임하는 자세를 키우는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네 가지 교과 이외에 학생들이 원하는 분야나 교과가 있다면 언제든지 논의를 통해 개설될 수 있습니다.”

 

Q. 평가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A. “단재고에서는 국어·영어·수학 등 일부 과목 이외에는 성적을 내지 않을 계획입니다. 등급이나 상장, 벌점도 없습니다. 얼핏 성적을 내지 않는다고 하면 학생들이 학업에 소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은여울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를 입증합니다. 은여울중고 학생들은 성적도 내지 않고 교과서도 없는 과목이지만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한 공부이고 하고 싶어 하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단재고 학생들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할 것입니다. 평가 또한 주체역량, 공동체적 역량, 자립·연대 역량을 기준으로 교사 뿐 아니라 학생 스스로 ‘교육과정이 나에게 어떤 역량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말과 글로 표현하면서 이뤄질 예정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학생들의 요구나 의견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이는 민주적인 학교운영과도 연결됩니다.”

 

Q. 일반 학교와 다른 단재고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A. “단재고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학생 스스로 주체성을 가지고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민주적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단재고는 대입이나 취업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대입 또는 취업을 위한 도구로만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학생이 공부를 하면서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진학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대입만을 목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재고는 학생이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고 여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교육과정위원회에 직접 참여하면서 교육과정을 직접 만들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은 매 학기말 평가를 통해 재구성될 것입니다.

개별 프로젝트(자기설계 교육과정) 시간을 활용해서 학생들이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영어과목을 개설할 수 있고, 수학이 필요하다고 하면 수학을 개설할 수 있습니다. 제2외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야가 열려있습니다. 다만, 과목 개설의 조건은 입시를 위한 시험문제 풀이, 또는 등급을 잘 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학생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자신의 진로와 삶에서 필요한 내용을 공부할 것입니다.

1학년 2학기부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2학년 2학기부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교과를 온전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집중적으로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교육과정이 설계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설계 교육과정은 동아리 활동으로도 연계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목표와 사회적 가치를 담아서 교육과정을 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설계 과정에서 학생들이 충분히 자기를 성찰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사는 촉진자 또는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보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면 전문가와 연결해 주고 학생이 스스로 계획한 것을 잘 하고 있는지 관리 또는 조언을 해주는 형식입니다.

단재고의 두 번째 특징인 민주적인 학교운영은 학교의 작은 규칙부터 교육과정까지 모든 것을 학생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조정자 교사.
조정자 교사.

 

Q. 어떤 학생들이 입학하게 되나요?

A. “중학교 학생들의 진로·진학 선택은 일반고와 특성화고 등 두 가지가 전부입니다. 예전 20~30년 전만해도 일반고 또는 특성화고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사회에서 이른바 ‘낙오자’로 분류됐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교를 중퇴하고도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점점 개성이 다양해지는 아이들의 욕구를 일반고와 특성화고 교육과정만으로는 충족시켜줄 수 없습니다. 단재고는 기존의 공교육에서 자신의 꿈과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배울 수 없었던 학생들을 위한 곳입니다.”

 

Q. 단재고의 공간은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구성하였나요?

A. “학교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교육과정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재고 공간 구성의 방향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학생들이 손발·몸·머리를 고루 사용하여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 △지역 주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 △스마트한 교수학습 공간 △학생의 감성과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공간 등입니다.

이런 방향을 전제로 △창의탐구클러스터 △멀티미디어아트존 △하늘북 △아뜨리움 △상담실 △쿠킹랩 △카페테리아 △교육지원실 등이 들어섭니다.

특히 교장실을 교무실과 통합, 관리자들도 실무를 담당할 예정입니다.“

 

(가)단재고 공간구성도.
(가)단재고 공간구성도.

 

Q. 우려하는 점 또는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A. “각종학교(대안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제 60조 3에 의거 국어와 사회 50/100만 충족하면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의 다양한 진로 욕구에 맞춰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펼치고 수시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교과 중심의 수업만으로 이루어질 경우 오히려 일반고보다 더한 대입중심학교로 변질될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단재고는 교사, 학생, 학부모, 교육청 등 교육주체들이 설립취지와 교육철학에 대한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교원들의 인사와 예산문제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교원이 올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교육과정이 훌륭하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서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명제 관리자가 올 경우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단재고에서의 교장은 모든 권위를 내려놔야 합니다. 적어도 미래교육이라는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교장과 교감이 와야 합니다. 교장공모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부분에서 또다시 특혜시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학교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혜라고 보면 안 됩니다.

 

Q. 지역주민들의 반대의견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A.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지역주민들과 설명회 등 미리 많은 설명과 협의를 하지 않은 것은 불찰이지만 사실 대안교육연구회 교사들은 앞에 나서서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결정권자도 아니고 그냥 일선 교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공유하지 못한 것은 실수이죠.

다른 지역에서는 단재고 설립을 굉장히 부러워하는 상황입니다. 일선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만들고 미래인재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는 지역은 사실 없습니다. 충북교육청에서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