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경실련 성희롱 피해자 지지모임 정미진

※ ‘경실련 성희롱 피해자모임’에서 기고글을 보내왔습니다. 기고글은 충북인뉴스의 편집방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충북인뉴스는 독자께서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다양한 시선을 담아 보내주시는 글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편집자주)

지난 7월 경실련 성희롱 피해자 해고무효소송 1심 결과가 나왔다. 1심 판결부는 피해자의 해고무효소송을 각하했다.

피해자들을 해고에 이르게 한 충북청주경실련의 사고지부 결정은 중앙경실련의 규약에 근거해 벌어졌지만, 해고의 직접적인 책임은 5인 미만 사업장인 충북청주경실련 측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해고의 부당함을 다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경실련 성희롱 사건 피해자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안전한 일터를 위해 싸운 지 2년이 넘었을 즈음에 받아본 결과였다.

피해자, 피해자와 연대하는 이들을 향한 조롱과 비아냥 속에서도 느끼지 않았던 감정이 올라왔다. ‘괜히 시작한 걸까?’ 처음으로 후회와 비슷한 마음이 올라왔다. 이 싸움의 끝에 우리에겐 무엇이 남을까.

처음 일터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이 바란 것은 상식적이었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희롱 사건을 해결하려 하자 피해자들은 넘을 수 없는 조직 내 위계구조를 마주하게 되었다. 피해자의 존엄은 조직의 위계 앞에서 짓밟혔다.

그 순간 피해자들은 조직 밖에서 자신들을 지지하고 함께해줄 이들과 손을 잡았다. 성희롱 사건을 해결하는 일이 곧 조직의 위계에 맞서야 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피해자는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대신 자신들을 돕겠다며 찾아온 이들과 함께 폭력에 맞서기를 선택했다.

경실련은 결국 성희롱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함께 손을 맞잡은 결과였다. 하지만 경실련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더 나은 일터를 만들지 않았다. 자신들의 힘을 성희롱 사건을 조직 갈등으로 변질시켜 피해자를 해고하는데 사용했다.

피해자는 끝내 법원으로 갔다. 해고의 부당함을 법적으로 다투는 일은 피해자에게 큰 부담이다.

 

‘성희롱 피해자의 해고’가 도의적으로 문제가 될지언정 ‘성희롱 당한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는 길은 짙은 안개 같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수많은 성희롱 피해자들이 해고의 위협에 놓이거나 해고된다.

‘피해자의 해고는’ 증명할 것도 없는 명백한 형태가 아닌 압박의 형태로, 자발적 퇴사의 형태로, 또는 경실련처럼 지부 운영 중단의 형태로 나타난다. 해고의 이유가 혹시 성희롱 때문은 아닌지 법과 제도가 나서서 확인하지 않는다.

오로지 피해자의 몫이다. 성희롱을 인정하고도 피해자를 해고할 힘을 가진 조직은 방어하는 위치에 서면 그만이지만 피해자는 자신의 부당함을 다른 이들의 시선에 맞춰 입증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도 피해자들은 왜 법적 대응에 나섰을까?

내가 피해자들의 법적 대응을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가 모아냈던 힘이 제도적인 변화까지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성희롱 피해자이자 노동자인 우리의 현실은 이렇다고, 생존을 위해 위계에 굴복하지 않아도 우리의 존엄을 지켜나갈 길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싸움의 끝에 우리에겐 무엇이 남을까.

우린 이미 변화했지만 우리만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1심의 결과를 받아서 들고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었다.

우린 알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와 같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지.

지역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민사회단체를 하루아침에 운영을 중단시킨 경실련에, 운영이 중단되어 해고된 것이니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경실련에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다. 다시 한번 법원의 문을 두드린다. 아직 새겨지지 않았을 이야기를 새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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