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김준권 화백, ‘꽃비’ 등 10편 NFT 출시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40년간 목판화에 집중해온 김준권 화백의 작품 10점이 NFT(Non-Fungible Token : 대체불가능한 토큰)로 출시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40년간 목판화에 집중해온 김준권 화백의 작품 10점이 NFT(Non-Fungible Token : 대체불가능한 토큰)로 출시됐다.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부산 벡스토에서 진행된 ‘BWB 2022’(BLOCKCHAIN WEEK IN BUSAN)에서도 전시된 김준권 화백의 NFT 특별전.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부산 벡스토에서 진행된 ‘BWB 2022’(BLOCKCHAIN WEEK IN BUSAN)에서도 전시된 김준권 화백의 NFT 특별전.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BWB 2022’(BLOCKCHAIN WEEK IN BUSAN) 행사장 벡스코 전경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BWB 2022’(BLOCKCHAIN WEEK IN BUSAN) 행사장 벡스코 전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랑한 판화가’ / ‘2018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장식한 작가’ / ‘민중미술 목판화가’.

판화가 김준권 화백에게 따라붙는 대표적인 수식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40년간 목판화에 집중해온 김준권 화백의 작품 10점이 NFT(Non-Fungible Token : 대체불가능한 토큰)로 출시됐다.

‘코잼엔에프티 주식회사’와 김준권 화백이 손잡고 출시한 NFT 작품은 지난 9월 27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진천군립새거판화미술관 ‘김준권-WALKING THE MOTHERLAND’에서 선보이고 있다.

또 지난 달 27일부터 29일까지 부산 벡스토에서 진행된 ‘BWB 2022’(BLOCKCHAIN WEEK IN BUSAN)에서도 전시됐었다.

NFT는 ‘Non-Fungible Token’의 줄임말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비트코인 한 개는 다른 비트코인 한 개와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얼마든지 같은 수량으로 대체될수 있다.

반면 NFT는 각 토큰에 고유한 값이 부여되어 있어 다른 것으로 대체 할 수 없게된다.

NFT 기술을 적용된 예술작품은 복제가 불가능하고 원본임을 증명할수 있게 된다. 희소성이 보장되는 만큼 오프라인의 예술작품처럼 높은 경제적 가치가 부여된다.

김준권 화백의 뒤편에 NFT로 출시된 ‘꽃비-첫사랑’이 보인다.
김준권 화백의 뒤편에 NFT로 출시된 ‘꽃비-첫사랑’이 보인다.

NFT로 출시된 김준권 화백의 작품은 총 10점이다. ‘산의 노래’, ‘이 산 저 산’, ‘산의 노래 2’, ‘섬진 2’, ‘산운’, ‘꽃비-첫사랑’, ‘이 붉은 산하에’, ‘자작나무 아래 – 가을’, ‘자작나무 아래-여름’ 등이다.

각각의 작품은 10개 한정으로 발행됐다.

 

김준권 화백이 말하는 NFT란?

김준권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NFT로 발행하게 된 것에 대해 ‘새로운 일상, 또 다른 일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온라인이란걸 가상세계로 알고 있었다. 현실세계가 있고 가상세계가 있느 식으로..” 라며 “최근에 그런 일(블록체인)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 하고 달랐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또 다른 세계라고 말 하더라. 메타버스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일상’, ‘또 다른 일상’이 하나 있다는 것”이라며 “내가 지금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들이 또 다른 일상이라고 하는 공간에서도 똑 같이 진행이 될 것이란 말에 끌렸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다른 일상의 공간. 메타버스라고 하는 세상에 들어갈 것”이라며 “내가 유저가 돼서 들어가 거기서 관객들하고 대화할 것”이라며 “현재는 오프라인과 배제되지 않고 연동해 있는 만큼 아직 실감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준권 화백은 누구?

한국 판화의 대가로 불리는 김준권 화백은 뛰어난 작품과 함께 이채로운 삶의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홍익대 미대 75학번인 김 화백은 1984년 중학교 교사로 교직에 발을 디뎠다.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이라는 참여작가 전시회에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을 출품했다가 압수를 당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1989년에는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해직됐다. 1991년 명지대 강경대 학생 사망사건 당시 걸개그림도 김 화백이 그렸다.

이후 진천에 정착한 김 화백은 진천의 자연을 배경삼아 그림을 그렸다. 복사꽃 핀 진천을 담아 ‘꽃비’라는 명작을 남겼고 대숲 가득 부는 바람을 그렸다.

김 화백의 연구소 인근에는 진천 생거판화미술관이 있다. 이 전시관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판화작품만 전시하는 전문 미술관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준권 화백

김준권 판화가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당시 청주 상당공원에 세우려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석’에 얼굴그림을 맡았다. 현재 추모석은 청주시 문의면 마동창작마을에 전시돼 있다.

김준권 판화가는 노 전 대통령과의 ‘오래된 인연’을 갖고 있다. 이른바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젊은 정치인과 민중 판화가로서 첫 대면을 했다. 당시 김준권 판화가는 전국민미협 사무국장을 맡고 있었다.

2018년 판문점에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장면.  뒤에 김준권 화백의 작품 '산운'이 설치돼 있다.
2018년 판문점에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장면.  뒤에 김준권 화백의 작품 '산운'이 설치돼 있다.

90년대 초에는 노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지만 연거푸 국회위원 선거에서 낙마했을 때, 그는 작은 힘을 보탰다. 노 전 대통령이 지방자치 연구소를 설립하고 지방분권에 대한 초안을 짤 때 지지와 후원을 한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노 전 대통령은 김준권 판화가의 전시회가 열리면 작은 소품이라도 구매했고, 늘 잊지 않고 화환을 보내왔다고 한다. 특히 재임 기간에는 청와대 로비에 김준권 판화가의 작품을 구매해 전시하기도 했다. 봉하마을에도 김준권 판화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김 작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3개의 작품을 헌정했다. ‘5.23 노무현’. ‘5.29 노무현’, ‘7.10 노무현’이다. 서거한 날, 장례를 치른 날, 그리고 49제를 기리며 작업한 것이다.

김준권 화백은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으로 유명세를 더했다.

김준권 화백의 작품 ‘산운’은 정상회담 당시 판문점 평화의 집 1층 방명록 서명 장소 뒤쪽에 전시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작품을 배경으로 방명록에 서명했다. 특히 방명록에 서명하는 장면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 악수를 나누는 장면과 소나무회담 장면과 함께 정상회담 3대 장면으로 꼽히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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