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속 수사’ 및 ‘무죄’ ‘추정원칙’은 교과서에나
수사기관, 구속수사 경쟁 - 구조적 구속자양산
인신의 구속은 사람이 평생 쌓아온 명예에 치명상을 입히면서 가족과 친척, 친지 등과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경제적인 활동 및 사업 관계에 최악의 영향을 미침은 물론 치명적인 불이익을 준다. 그야말로 인신의 자유는 모든 인권의 근본이며, 개인의 인격실현과 행복 추구의 전제조건이다.
우리 나라 헌법과 형사소송법도 불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무죄추정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불구속 수사 원칙은 법전에나 올라있는 지켜지지 않는 원칙으로 팽개쳐진 채 인신 구속이 남발되고 있다.
특히 돈 있고 힘있는 자에게 너그러운 법의 잣대가 힘없고 돈 없는 자에게는 예리하게 적용됨으로써 실제 국민들이 느끼는 법 감정은 최악이다.
과연 인신구속이 능사인지 그 실태를 점검해봤다.<편집자주>
99년 경찰통계연보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구속자 수는 형법 피의자 7만3186명과 특별법 피의자 3만620명 등 모두 10만3800여명에 달한다. 웬만한 중소도시의 전체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이는 선진국의 6배이상에 해당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인구 10만명당 300여명이 구속되는 구속 왕국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도소는 수감자로 넘쳐나 서너평 짜리 감방에 12-14명을 수용하는 후진국형 교정 행정을 낳고 있다. 지난달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나온 K씨는 “3-4평 감방에 14명이 수용됨으로써 30도를 웃도는 여름날씨에 발조차 제대로 뻗고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이었다”며 교도소가 수감자로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징벌은 국가와 사회 유지의 필수 요소다. 하지만 죄형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일단 처벌성 인신구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열사람의 범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선진 인권 사상은 찾아볼 수 없다.

구조적인 구속자 양산

수사기관에 의한 인신구속의 양산은 구속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과 수사 기관의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국민들은 구속은 곧 처벌이라는 잘못된 등식을 믿고 있다. 때문에 수사기관은 국민들의 법 감정을 결코 간과하지 못하고 구속 수사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충북지방경찰청 수사관계자의 경험담은 보다 사실적이다. “범죄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서 하는 말은 ‘구속시켜 주세요’다. 구속이 곧 처벌이라고 믿는 것이다. 불구속을 하게되면 ‘수사가 불성실하다거나 무슨 뒷거래가 있는 양 쳐다보는 것이 일반적인 법 감정이다. 어떤 피의자를 수사하여 검찰에 송치할 때 ‘불구속’의견을 내면 검찰도 일단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다. 당연히 구속에 무게를 두고 조사를 하게 된다.”
이 보다 구속수사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수사기관과 수사 형사들에게 주어지는 고과 점수. 더 많은 사람을 구속 시켜야 일 잘하는 형사 및 조사관으로 인정받게 되고 승진에도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구속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게된다는 것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형사가 어떻게 불구속 사건 수사를 하느냐며 불구속 수사는 아예 하 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던 때도 있었다”는 것이 한 고참 형사의 말이다. 경찰서별 경쟁도 구속자 양산에 한 몫 한다. 경찰서별 실적 경쟁에서 무엇보다 검거율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만 구속자를 많이 낸다는 것은 그만큼 큰 사건을 많이 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런 수사기관과 수사관들의 경쟁구도는 수사관들에게 한 번 물리면 구속 시켜야 한다는 수사 의지(?)를 갖도록 함으로써 사건을 똘똘말아 구속 영장을 청구케한다는 것이다.
경찰청의 한 수사관은 “형사 개인별, 경찰서 기관별 실적 경쟁이 인신 구속 양산의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청소년 범죄 사건의 경우 구속에 따른 고과 점수를 배제시킨 것도 이런 경쟁 분위기 때문에 청소년들에 대한 구속 수사가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청소년, 실적쌓기 희생양(?)

청소년 범죄가 날로 늘어가면서 법에 의해 처벌받는 청소년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소년 범죄자는 지난 91년 8만5000명에서 93년에 10만명을 넘어섰고 2000년 14만3000명으로 9년만에 70%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이혼 등 가정불화, 가정·학교 교육의 미흡으로 우범 청소년의 양산과 유흥업소 증가 등 청소년 유해 환경의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청소년 범죄를 다루는데 있어서 훈육과 사회적 선도가 점차 사라지고 법에 의한 처벌이 보편화되어 가면서 수사 형사의 실적쌓기의 한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때 충북지방경찰청은 조폭 검거 1위를 차지했다. 이와관련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경찰관은 “지역이 작은 충북경찰청이 어떻게 조폭 검거 1위를 할 수 있었겠는가. 계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학원내 불량 써클 수준으로 조폭 흉내를 내는 어린 학생들이 검거 실적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2000만원을 사기친 사기 피의자는 불구속되지만 이들 청소년들이 많이 포함되는 ‘무전취식’과 같은 범죄는 ‘갈취’라는 이름이 씌워져 구속으로 연결되고 조직폭력 계보와 연결되어 있다면 정성을 들인 수사로 ‘조직폭력배 검거’로 포장된다”고 털어놓는다.
/ 민경명 기자

주병덕씨의 법정구속을 보는 시각
주병덕 전 충북도지사가 지난 7월 31일 청주지법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현재 대전 교도소로 이감되어 항소심을 받고 있는 상황.
주 전지사에 대한 법정구속은 뜻밖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며 여러 반응들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고령으로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건강상태를 감안해 볼 때 1심에서의 법정구속은 너무 혹독한 판결이라는 평이 주류. 워낙 거구인데다 건강마저 악화, 법정에 출두하는데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거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켜보았을 재판부가 정상 참작 없이 법에 따라 구속 판결을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적어도 변종석 전 청원군수 사례와 같이 항소심을 자유로이 불구속 상태에서 받을 수 있게 하는 징역형을 선고하되 법정 구속은 하지 않고 차선책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찰 치안정감과 감사위원, 그리고 도지사까지 역임한 사회적 위치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뇌물 수수 혐의를 두고 진행되는 재판에서 일관된 입장을 취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한 것이 법정 구속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을 것이란 점에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
주 전지사의 한 측근은 주 전지사의 뇌물수수 기소와 재판에 대해 “주 전지사가 오랜 경찰 생활을 하는 동안 있었을 지도 모를 ‘해코지’에 대한 반대 세력의 보복일 수 있다”는 색다른 분석을 내놨다.
평소 눈물이 많은 주 전지사는 구속 수감이후 열린 항소심 법정에서도 펑펑 울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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