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식-이회창·정우택-정몽준·노영민-노무현

우리나라 정치구조에선 이념이나 정책보다는 각종 연(緣)이 인적 관계의 가장 큰 인푸라를 구축한다. 때문에 대통령후보들의 인간관계는 당연히 주목받을 수 밖에 없고 당사자들의 입장에선 ‘도박’에 버금가는 승부수가 연말 대선에 걸려 있는 셈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까지 부각된 대통령 후보군과 도내 정치인 사이의 연관성이 연말 대선의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이회창과 신경식, 노무현과 노영민, 정몽준과 정우택의 관계다.
/ 편집자

신경식의 대망 이회창에 ‘예약’
자기 색깔과 ‘브랜드’의 확보가 과제

도내 지역구의원중 유일하게 다선(4선)인 신경식의원은 이회창의 최측근중에서도 핵심인물로 현재 이후보의 대선기획단장까지 맡고 있어 만약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그의 앞날은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된다. 신의원은 97년 대선 때 이회창의 비서실장으로 일했고, 떨어진 후에도 당 명예총재라는 2선으로 물러난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3선의원이 할 일이 없어 명예총재의 비서실장이냐는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이때 이회창에게 크게 어필한 그는 이후보가 당 총재로 복귀하면서 사무총장에 낙점됐고 이를 계기로 당내 세력권의 전면으로 부상 한 후 지금까지 주류의 좌장격으로 이후보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신의원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장점에 대해 한마디로 ‘튀지 않는 처세’를 꼽는다. 자기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결코 상전(?)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면 윗선의 입장에선 이보다 더 좋은 여건도 없다. 한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자. “그의 행동은 절대 요란하지 않다. 간혹 정치적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지만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처세가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된다. 선거 때마다 혹독한 비판에 시달리면서도 줄곧 이를 극복하게 된 것도 상황 발생시 자신의 의사를 크게 드러내기 보다는 일단 숨죽이고 있다가 때를 엿보는 은인자중이 효과를 봤기 때문이다. 이건 전략적일 수도 있다. 역대 선거에서 초반 불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배경은 바로 이런 것이다. 솔직히 말해 좀 까다로운 이회창후보가 신의원을 오랫동안 측근에 둔 다는 것은 쉬운 얘기가 아니다. 그만큼 서로 인간적 신뢰를 쌓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 결정적 계기는 역시 신의원의 튀지않는 운신이다. 모르긴 몰라도 만약 이회창씨가 권좌에 오른다면 신의원을 항상 끼고 돌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신의원의 이런 처세와 분위기는 곧잘 냉혹한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가 이회창과의 끈끈한 관계 때문에 만약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정치적으로 앞서 나갈 수 있겠지만 결정적일 땐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까지는 주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도 결정타를 날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는 역대 충북출신 국회의원들이 한창 잘 나가다가도 주요 순간에 고비를 못 넘기고 항상 밀렸던 전례에 비춰 볼 때 일견 설득력을 갖는다. 근자에 충북출신 총리를 한 명도 내지 못한 이유를 이런데서도 찾을 필요가 있다. 특히 자기 색깔, 자기 브랜드가 취약한 신의원으로선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충북에서 유일한 4선의원임에도 ‘신경식 표’로 인정할만한 업적이 지역에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사업이 됐건, 정책이 됐건 모두 그렇다”고 메스를 가한 지역의 한 인사는 “이회창의 집권은 곧 신경식의 성공을 보장하겠지만 지역의 입장에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고 비판했다.
신의원의 현 입지를 향후 충청권의 정치적 위상과 결부시키는 시각도 더러 있다. 현재 한나라당을 대표하는 충청권 인맥으론 신의원을 비롯해 충남 출신의 서청원 당대표, 강창희 최고위원, 김용환 국가혁신위원장 등이 꼽힌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들이 뜻만 맞춘다면 언제든지 당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정치력을 과시하고 있다. 때문에 충남 연고의 이회창 체제하에선 이들의 상대적 부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이들이 당내에서 확실한 입김을 행사하는 것을 보면 충청권 시대의 개막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는 지적이다.

“노무현이 되면 이사람을 주목”
노영민씨, 보수적 정서에서 눈에 띄는 행보

민주당 노무현후보의 경우 충북에 특별한 인맥이 없다. 본인 스스로 계파, 패거리 정치를 혐오하는 입장이라 뚜렷한 사조직도 없다. 실제로 자발적 지지세력인 노사모를 제외하면 지역정치인과의 사이에 눈에 띌만한 ‘관계’가 없다. 다만 청주 흥덕지구당위원장인 노영민씨가 그 공백을 메꾸는 분위기다. 현재를 기준할 때 노영민은 도내 민주당 공조직의 책임자중 가장 확실한 노무현계로 분류된다. 원래는 김근태와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으나 그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사퇴한 이후론 부담없이 친노(親盧)를 견지하는 것이다. 한 측근은 “정치적인 신념은 여전히 김근태와 공유하지만 국민경선을 통해 개혁후보인 노무현이 후보가 된 이상 그를 지지하는게 당연하다. 이미 서로간에 입장이 정리됐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이 없다. 노영민위원장 스스로가 걸어 온 길을 보더라도 노무현과 뜻을 같이 하는게 당연하다”고 밝혔다. 민주개혁국민연합 충북연대대표를 맡아 오랫동안 반독재 사회운동을 이끌어 온 그는 16대 총선 때 개혁세력 정치입문의 창구가 됐던 국민정치연구회를 통해 정치를 시작한 대표적 인물이다. 당시 그는 충북지부장을 맡았었다.
민주당의 충북 공조직 책임자들은 지난번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미 속내를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향후 이들의 진로를 점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당시 대부분의 현역의원과 지구당 위원장들이 이인제쪽에 줄을 섰다가 지금 이 전고문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자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일부는 이미 이인제와 심정적으로 결별했다는 얘기마저 들리고 있다. 때문에 앞으로 신당으로 인한 변수가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결국 노무현 체제로 갈 경우 정몽준 신당이나 혹은 한나라당으로 옮길 인사들이 공공연히 꼽히는 가운데 일부는 이미 이와 관련된 제의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당논란에 있어서도 개혁세력의 대열에 올려지는 노영민위원장은 차라리 고민이 덜하다. 그의 뚜렷한 색깔 때문에 방향설정은 오히려 간편할 수 있다. 그도 한땐 이인제 대세론을 받아들이는 입장이었지만 정치의 가변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중앙당의 부대변인을 겸직하는 그는 당내에서도 노무현의 입장을 대변하는 추세다.
대선후보 경선 때 충북 책임자를 맡았던 0모씨도 여전히 친노 인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엔 악소문(?)에 휘말리면서 그 사실 여부에 많은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무현의 한 측근은 “안 좋은 얘기가 들리고 있지만 사실무근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노후보는 상대방이 먼저 떠나기 전엔 절대 사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가 노후보를 위해 계속 활동할 것이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지역구의원이나 원외 위원장들은 당이 오랫동안 대선 후보 논란에 휩싸이는 바람에 운신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소위 정치적 득실을 계산한 줄타기 처신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형국이다. 한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누가 후보가 될지도 모르는데 쉽게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겠는가. 나 나름대로는 정치를 좀 안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처럼 언행에 조심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어차피 정치판은 또 한번 요동을 칠 것이다. 그 때가 지나봐야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생각을 끊고 지역구 활동에만 열중하고 싶어도 이것마저 제대로 안 된다. 정몽준 신당이 구체화되고 추석 정국이 끝나봐야 뭔가 정리될 것같다”고 말했다.

“정몽준·우택은 특별한 관계?”
정치 입문에 ‘인연’… 상황에따라 전면 부상

현재 이회창후보와 지지도 선두를 다투는 정몽준의원은 각계에 광범위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현대라는 울타리가 일차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겠지만 정치와 기업, 스포츠 활동을 겸한 개인의 역량 또한 크게 작용했다. 그의 충북인맥은 아직까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달 31일 제천에서 열린 국민생활체육 전국축구대회에 참석해 충북과의 각별한 인연을 강조하면서 “충북에도 많은 인맥을 갖고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나름대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자민련 정우택의원과의 관계로, 그동안 몇 번의 언론 보도를 통해 정의원이 정몽준과 아주 가까운 것으로 기사화되는 바람에 그에 쏠리는 지역의 관심은 남다르다. 이 때문에 정몽준 신당과 정우택의원간의 함수관계를 여러모로 계산해 보려는 노력(?)이 종종 눈에 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의원 사무실을 통해 공식적으로 물었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주변으로부터 확인한 몇가지는 아주 흥미를 끌만하다.
정우택의원은 92년 통일국민당 진천 음성지구당위원장을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고 정주영씨가 만든 당이다. 행정고시 출신인 정의원은 경제기획원에서 법무담당관까지 지낸 잘 나가는 관료였으나 돌연 정치로 눈을 돌린 것이다. 이에는 일단 정치가문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부친은 정의원과 마찬가지로 40대에 장관을 지내며 한 때 충북을 대표한 정치인이었다. 정우택의원의 변신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려는 시각도 있다. 정의원의 친형인 정지택씨는 정몽준과 서울 상대 동기동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역시 재경원의 고위 관료를 지냈다. 정의원이 정주영의 국민당으로 정치에 입문하기까지는 이런 전후관계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의원의 한 측근은 “정우택과 정몽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특수한 인연이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대략 이런 이유 때문에도 서로 호감을 가질 것이다. 어쨌든 정몽준이 뜰 경우 정의원으로선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시작을 정몽준가와의 인연으로 한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몽준이라고 하더라도 정의원을 욕심낼 것이다. 지금의 정치판에서 사람을 끌어 모으는데 이만한 계기도 없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주변에선 정몽준이 독자 출마를 굳히고 만약 자민련이 다시 민주당과 손잡을 경우 정의원의 선택이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정몽준이 대권을 잡게 되면 실력을 겸비한 정의원의 정치적 입신은 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연말 대선은 이렇듯 충북 정치인에게 색다른 주군(主君) 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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