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 ‘지역경제와 자연재해시 도움, 인구증가에도 한 몫’
“지금도 증평에서 젊은 남자의 70%는 군인”

‘씨름과 인삼의 고장’으로 알려진 증평의 이면에는 군부대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군인도시 혹은 군사도시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충북도내에서 증평은 향토사단 1개, 예비사단 1개, 여단 1개가 주둔해 있다. 그래서 이 곳은 자연재해나 특별한 행사시 민과 군이 함께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군이 그 지역의 성격 형성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충청리뷰’는 증평의 이러한 면을 취재했다.

형식적으로는 괴산군에 속해 있으나 행정적으로는 괴산군으로부터 독립돼 있는 곳, 증평. 엄밀히 말해 증평은 충청북도 증평출장소 체제로 충북도의 관할하에 있다. 지방자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군설립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증평은 성격규정 하기가 상당히 애매한 점이 있다.
증평은 현재 향토사단인 37사단과 예비사단인 67사단, 그리고 13공수여단이 주둔해 있어 도내 다른 자치단체보다 군인들이 많기는 하지만 군인도시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유명한 무엇이 없다. 증평출장소에서는 증평을 씨름과 인삼의 고장으로 특성화시키고 충북인삼배 전국장사씨름대회를 10∼14일까지 열고 있지만 전국적인 차원에서 인삼과 씨름의 유명세를 얼마나 떨치고 있는가는 미지수다.
이종배 증평출장소장도 이런 점에 동의하며 지역의 특성을 잡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소장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계룡출장소는 3군사령부가 있고, 계획도시로 성장해 인구가 증가추세에 있는 반면 증평은 인구가 감소하고 당장 인구유입책이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 증평은 청주라는 도시에 인접해 있는 관계로 경제·교육·문화적인 생활을 모두 도시에서 해결, 도시의존율이 높아 독자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군부대는 이런 가운데 직·간접적으로 증평에 영향을 미쳤고 미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37사단 유치운동도 벌여

향토사단인 육군 37사단은 지난 55년 창설됐다. 이 부대가 증평에 어떻게 주둔하게 됐는가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된 안동준 의원이 국회 국방분과위원장을 맡으면서 국방정책 일환으로 각 도에 예비역 장병들을 정기적으로 소집·교육하기 위한 예비사단을 창설했다. 이 때 도내 충주·보은·옥천 등지에서 유치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는데 마침 안동준 의원이 괴산 출신이어서 지역구인 증평에 37사단이 들어서게 됐다.” 송기민 전 증평문화원장(67)의 말이다.
53년 경부터 증평에 군부대를 유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지역유지들을 중심으로 유치운동도 벌였다는 것. 그러나 한 편에서는 자신의 땅이 군부대로 편입될 것을 우려하는 지주들 사이에서 반대의견도 나왔으나 전체적으로 찬성의견이 우세했다는 것이 송 전 원장 얘기다. 당시 37사단을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힘을 썼던 안 의원은 대령으로 예편한 뒤 국회의원을 지냈고 현재 감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 창설로 한 때 시승격 넘본 증평

이들 군부대의 주둔으로 증평은 인구면에서 큰 덕을 보았다. 사단이 들어오기 전에는 2만명도 안되던 상주인구가 4만명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자 괴산 출신의 김종호 의원(자민련)은 인구가 5만명을 육박한다는 계산하에 시승격을 약속했다. 하지만 내무부가 당시 상주인구로 계산하던 기준치를 후에 주민등록상 인구로 바꾼데다 인구마저 줄어 3만명 대로 떨어지자 시승격은 요원한 일이 돼버렸다. 그럼에도 시승격은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표를 호소하며 내놓는 단골메뉴가 돼왔다. 어쨌든 시승격은 물건너 갔지만 이렇다할 인구유입책이 없는 증평에 사단의 유치는 인구증가를 불러온 요인이 된 것이다.
군부대가 이 지역에 미친 영향으로 주민들은 경제활성화를 가장 먼저 꼽는다. 37사단 창설 초기 이들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종종 사단장이 군인들에게 유흥업소 출입금지 명령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읍내의 식당과 술집 등은 파리 날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주민 이영화씨는 “지금도 젊은 남자의 70%는 군인이다. 학교나 취업 등으로 토박이들이 떠난 자리를 군인들이 메꾸고 있는데 읍내 음식점이나 술집에 가면 군인들이 무시할 수 없는 손님“이라고 말했다.
송 전 원장도 “군인도시는 소비도시이므로 군인장교 가족들이 소비하는게 많았다. 지금은 경제단위가 커지고 문화가 다양해졌지만 과거에는 이들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컸다. 사단 창설 초기 현 증평파크관광호텔 자리쯤에 주류음식점이 두 개 있었는데 주 고객이 장병들이었다. 박리다매식으로 술값이 싸 당시 이 식당들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며 “여담이지만 증평에서는 장교부인들도 많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군부대 자리에 산업단지 조성됐으면”

또 증평시민회의 이종일 공동대표는 좁은 지역들이 대개 폐쇄적이지만, 증평은 군에서 제대한 군인들이 눌러 살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 됐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자연재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장병들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부대창설기념일이나 국군의 날 등의 행사에도 민간인이 초청되는 등 민과 군의 관계를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라고 정의했다.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덕본 것중 하나는 학교 운동장이나 창고 등을 지을 때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당시 진흙밭이었던 삼보초등학교 운동장을 말끔하게 정리해준 것도 이들이라는 것. 37사단 주변인 연탄리에 가축키우는 집이 많은 것도 모두 군부대의 영향에 속한다. 부대에서 나오는 잔밥으로 하나, 둘 가축을 키우기 시작한 주민들이 이제는 증평읍내 전체로 확산됐지만 당시는 하사관들이 제대한 뒤 귀향하지 않고 부대주변에 눌러앉아 가축을 키웠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군부대가 있음으로 해서 불편한 점은 과거에 종종 군인과 민간인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다소 시끄러웠던 점을 공통적으로 꼽았다. 또 주민 모씨는 군사독재시절, 민과 군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았던 점을 거론하며 군부대 자리에 산업단지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켰으면 하는 여론도 있다고 말했다. 군시설로 묶여 있는 곳을 풀어 공단 조성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수종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증평의 다운타운이 좁고 군부대가 읍내와 뚝 떨어져 있어 상권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영외거주하는 장교들도 청주에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증평은 강원도 원주나 홍천, 진주 같은 곳보다 군인의존율이 적다”고 말했다. 또 일부 지역민중에도 증평이 굳이 군인들의 영향을 받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군인 없으면 농사도 못지어요”
자연재해시 군의 대민서비스 ‘눈부셔’
증평주민들, 육군 37사단 덕 톡톡히 입어

최근 영동지역의 수해로 각급 기관과 학교, 개인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잇지만 군 장병들의 대민서비스가 특히 눈에 띈다. 폭설이 오거나 가뭄,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생겼을 때 육군 37사단도 빠지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부대. 모내기 요청이 있는 농가에 가서 모내기를 해주고, 농기계 수리라든가 바닥이 드러난 저수지에 준설작업을 하는 일도 이들 장병들의 몫이다.
37사단은 이번 태풍 ‘루사’의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영동지역에 군장병 2000여명과 덤프, 포크레인, 페이로다, 급수차, 방역차, 방역기 등 군장비 57대를 현지에 긴급 투입해 유실도로와 침수지역, 하천둑, 침수주택 가옥 응급 복구작업 및 방역활동을 실시했고 농기계 전담 수리반과 의무지원반을 편성해 지원했다고 밝혔다.
정훈공보참모 박준구 소령은 “충북도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서 어려운 일이 닥치면 곧장 출동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문화예술을 별로 향유하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군에서 앞장 서 음악회와 전시회도 열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훈공보부 김홍조 원사도 전투가 일어나지 않을 때의 임무는 대민지원에 있다며 무연고 묘 벌초, 1山 1江갖기운동, 자연보호활동, 자매결연한 꽃동네에 가서 김치담그기·목욕·청소하기 등을 수시로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군인들이 아니면 농사도 못지을 것이라는 한 주민의 말대로 증평은 군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지역이다. 산불이 나거나 벼가 쓰러져도 군인들이 달려가 해결하는 등 특히 자연재해가 났을 때 이들의 도움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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