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시절이던 1950년대 이승만대통령이 내건 정치구호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였습니다.

‘사사오입’이니 ‘딱벌떼’니 하는 무리한 정치공작으로 갈수록 여론이 악화되자 ‘반공’으로 겨우 정권을 끌고 가던 자유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로 국민의 결속을 도모합니다.

거리에는 ‘뭉치면 산다’는 포스터가 나붙고 학교 미술시간에는 어김없이 단결의 상징으로 불끈 쥔 주먹그림이 아이들 손에서 그려지곤 했습니다.

해방직후의 좌우익 대결, 북한의 6·25남침으로 남한사회가 극도의 혼미를 거듭하던 시대상황과 맞물려 ‘뭉치면…’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으면서 어른은 물론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까지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4·19혁명으로 무너지긴 했지만 이 구호는 자유당 정권을 연장시키는데 공헌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1961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장군은 18년 장기집권 끝에 1979년 시해(弑害)될 때까지 일관되게 ‘국민총화’를 외칩니다. 공포정치에 억눌려 대부분의 국민들은 침묵했지만 재야인사들과 학생들이 끈질기게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자 박대통령은 골치를 썩입니다. 그래서 짜낸 것이 ‘국민총화’였습니다.

박대통령은 행사 때마다 ‘국민총화’를 역설했고 틈만 나면 ‘國民總和’라는 휘호를 써 국가 기관에 나누어주면서 국론의 통일을 꾀합니다. 그 때도 이 구호는 제법 국민들에게 먹혀들었습니다. 하지만 보람도 없이 악화된 여론 속에 그것도 측근의 총탄에 쓰러진 것은 아이러니의 백미(白眉)입니다.

어떤 계기로 집권을 했건 통치자들은 예외 없이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국론이 갈리면 여론이 악화돼 사회가 혼란해지기 마련이라서 국정을 제대로 끌고 가지 못합니다. 정권이 무너지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대표가 ‘구국의 결단’을 내리겠다고 일장대갈(一場大喝)하는 것을 보면 나라가 어지럽기는 어지러운 모양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임진왜란이 다시 일어 난 것도 아니고 6ㆍ25가 또 터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웬 구국이냐”고 냉소하는 이도 있지만 제1야당의 당수가 대통령을 향해 ‘진검승부’를 다그치는 상황이고 보면 시국이 태평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의 사회를 이루자”며 ‘국민대통합연석회의’구성을 제의한 것도 사회가 너무 소란한 것을 인식하고 있는데서 나온 발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6·25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했다는 강정구교수의 불구속수사를 두고 ‘색깔론’ 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또 한차례 논쟁을 보면서 정말 어지간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합니다.

도대체 교수 한사람 구속시키고 안 시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그것이 국운이 걸릴 만큼 절박한 문제인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조금만이라도 세상을 넓게 보는 여유만 있다면 그처럼 침을 튀기며 낯을 붉히지는 않을 터이기에 말입니다.

11월. 가을은 점점 깊어 갑니다. 하늘은 높고 물든 나뭇잎은 조락(凋落)을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창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요. 나뭇잎이 맥없이 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변화에서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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