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배달겨레의 고향을 으레 단군할아버지의 신시(神市)로부터 찾는다. 비, 구름, 바람을 몰고 와 쑥과 마늘을 먹고 인고의 세월을 거친 웅녀(熊女)와 결혼하여 한반도 그 결 고운 비단 강산에 고조선을 열고 겨레의 씨앗을 퍼트렸다.

신화적 접근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이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의 모습도 현재의 모습과 거의 같다. 반만년 역사, 그것은 한반도 신석기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때 살던 사람들은 대개 프랑스식으로 분류하자면 ‘크로마뇽인’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고학적 접근에 있어서는 단군할아버지가 강림하기 이전, 작게는 열배 크게는 100배에 달하는 인류의 호흡이 이 땅에 묻어 있다. 단양 금굴은 70만 년 전 유적이고 청원 두루봉 ‘흥수아이’는 4만 년 전 충청도 조상의 모습이다.

비록 ‘국갗 형태를 띠지는 못했지만 백두대간 동굴 곳곳과 맑은 물이 흐르는 강 언저리에는 구석기인들이 주먹도끼나 찌르개 자르개 등 돌 연모를 사용하며 짐승을 사냥하였고 들녘에 자라난 곡식을 잘라다 먹었다. 청원 두루봉 동굴에서 보면 50만 년 전 사람들도 진달래꽃을 꺾어다 집(굴) 주변을 장식했다.

이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한반도에서 고(古)인류 화석이 출토된 곳은 7군데이다. 청원 두루봉 흥수굴, 단양상시바위그늘, 평양 근처의 용곡, 역포리, 승리산, 만달리, 금천 등지다. 이 화석들의 머리 뼈 잰 값을 견주어 보니 중기 구석기시대의 ‘곧선사람’(직립원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모두가 4~5만 년 안팎의 슬기사람(호모사피엔스)으로 밝혀졌다. 슬기사람이란 지혜를 가졌다는 뜻이다.

이들 인골은 고인류의 특징과 현대 인류의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어 관련학계에서는 이를 해부학상의 현대인(Anatomic modern man)이라고 부른다. 이 고인류의 두개골을 현대인과 견주어보면 여러 곳에서 약간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마가 좁고 앞뒤가 긴 이른바 ‘짱구형’에 속한다.

용곡사람의 경우 턱 밑에서 머리 위까지 잰 값이 현대인보다 3~4mm정도 낮으나 앞 뒤 머리의 길이는 오히려 3cm 정도 더 길다. 뒷머리뼈는 새가슴처럼 봉긋이 솟아오른 불룩이가 발달해 있다. 앞머리뼈가 좁고 너비가 비교적 큰 계란형 윤곽에다 긴 머리는 구석기인의 특징이다.

그런데 이 두개골 화석들은 광대뼈가 현대인들처럼 발달해 있고 얼굴모양이 둥글넙적한 몽골리언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고인류와 현생인류를 모자이크해놓은 모습이다. 곧선사람의 단계를 훨씬 지난 슬기사람이다. 충북대 박선주 교수(체질인류학)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곧선사람 화석이 없다.

그럼에도 북한학자들은 ‘용곡사람’의 경우 70~80만 년 전으로 주장해오다 자충수에 빠졌다. 두개골의 형태가 곧선사람보다는 현생인류에 가까운데다 우라늄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4~5만년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적 유물의 상한선을 바짝 끌어올리는 ‘올려잡기식’ 사관(史觀)이 빚은 해프닝이다.

그 문제의 용곡사람이 충북대 박물관에서 최근 재현됐다. 프랑스를 거쳐 입수한 용곡 사람 두개골 복제품을 토대로 박선주 교수와 공동작업을 통해 용곡 사람을 복원하였고 미술과 이기수 교수가 청동상을 제작하였다. 이미 청동상으로 복원된 흥수아이와 용곡사람이 살던 시기는 아주 비슷하다. 청동상으로 변한 4만 년 전의 남북 인골이 충북대 박물관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남북회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언론인·향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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