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지역의 대표적인 화가 이홍원(49)씨가 지난 8월 28일 청주예술의 전당 전시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이 날 오픈전에 참석한 사람들은 세 가지 면에서 크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첫 째는 개인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하객들이 미술계뿐 아니라 관(官)계, 학계, 문화예술계,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각계각층을 망라한 인물들이어서 평소 그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넓은 예술의 전당 전시실 1, 2층 전관을 한 사람의 그림으로 꽉 채웠다는 것. 그것도 소품보다는 대작 위주로 80여점을 한꺼번에 쏟아낸 그의 정열을 보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2160호에 달하는 대작 4개의 그림 값을 4억원으로 매겨 관객들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 점이다. 실제 이것은 청주시내에서 처음보는 그림 값이다.

“작가는 작가정신이 있어야”

하지만 이씨는 두 가지 얘깃거리는 그렇다치고 마지막 그림값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고 했다. “50년을 그림만 그린 작가가 작업하면서 먹고 살고, 영감 얻고, 재료비까지 합치면 공짜지 무슨 소리냐. 이 금액은 앞으로 다른 작품을 하기 위한 최소경비에 지나지 않는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에 비해 작가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직업인지 모른다. 나는 평생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을 갖지 않기로 결심을 했고 작업만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 붙인 그림값은 그것을 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 지역에서 이씨처럼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작업만 하는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대학에서 자리를 잡고 있거나, 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는 이제까지 작가로만 살아왔다. 서울에서 귀향해 문의면 마동리로 들어갈 때 교수 제의가 있었지만, 대학다닐 당시 자신은 교수를 안하고 그림만 그리겠다고 결심해 거절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씨는 유난히 ‘작가정신’을 강조한다. 특히 작가는 작가 모습 그대로 살아야지 ‘문화권력자’에게 잘 보이려고 굽신굽신하면 안된다며 분개했다.
“미대를 들어갈 때는 화가가 되려고 한 것인데 중간에 교수나 선생이 되고 싶어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문화권력을 쥔 사람 눈에 들기 위해 애쓰다보면 작가정신은 저 멀리 달아난다”는 그는 작가로만 사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 작가인 자신이 겪는 경제적 고통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드러냈다. 문의 마동의 동네사람들이 보증을 서 준 대가로 은행빚을 얻어 산다는 그는 화가도 다른 직업처럼 그림만 그려서 먹고 사는 생활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원망 반, 실망 반 섞어 털어놓았다.

“서울 같으면 줄서서 들어올 것”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관객들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개인경비 3000만원을 들여 판을 벌였는데 구경꾼이 없다. 공짜로 그림을 보여주겠다고 하는데도 가뭄에 콩나듯 찾아오는 관객을 보고 정말 실망했다. 서울에서 이 정도 전시를 하면 줄서서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당분간 청주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는 청주를 떠난다고 폭탄선언을 하는게 아닌가. ‘당분간’이라는 단서가 있었지만 어쨌든 지역 미술계를 지켜 온 사람이, 그것도 실망해서 다른 데로 가겠다는 것이다. 다시 그의 말을 정리하면 당분간 청주에서의 개인전은 접고 서울에서 활동할 계획이라는 것. 따라서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우리는 한동안 그의 그림을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이번 개인전을 앞두고 그는 몸이 매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러다 과로사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곤했다는 것이다. 이 많은 그림을 언제 그렸느냐는 질문에 이씨는 “실제 1년 동안 그림 그리는 시간은 1∼2달 밖에 안된다. 나는 축적된 에너지를 찰나에 터뜨리는 스타일이라 발동만 걸리면 그림이 막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어떤 때는 1년이 다 가도 그림 한 점 못그린다”며 “93년 서울·대구·청주에서 개인전을 동시 오픈했는데 작품이 안돼 계속 헤매다가 서산의 작은 절에서 20일 동안 100점을 그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이 화가라면서 왜 놀기만 하느냐고 한다는 것.

관객들을 웃기는 작가

그림 이외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등산이다.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초대 공동대표를 맡을 정도로 산을 즐겨 찾는 것이 특별한 취미. 전에는 산과 자신이 따로 따로 였는데 이제는 산과 대화할 정도가 돼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고요히 앉아 있으면 산과 한몸이 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 소재는 유독 산, 나무, 숲같은 것들이 많다.
해학 또한 그가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다. ‘훔쳐보다’ ‘옹달샘이야기’ ‘신혼여행’ 등의 작품은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든다. 거기에는 반드시 여자와 남자가 등장해 관객들을 웃긴다. 이에 대해 이씨는 “사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것 아닌가. 재미있는 것을 그리면 그릴 때도 즐겁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한편 도종환 시인은 그를 가리켜 “정신이 살아있는 화가이다. 가슴 한 가운데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사람이다. 80년대 그 엄혹한 시절부터 지금까지 불의에 맞서 싸우고 예술정신을 지켜온 사람이다. 붓을 들어 세상을 밝히고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림을 그려온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넉넉한 웃음을 잃지 않았고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투박하고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자기주관이 뚜렷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림을 사러 온 손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너 한테 그림 안팔아, 당장 나가” 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그 손님이 누구이든 관계없이. 그것이 화가 이홍원의 본 모습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홍원 개인전은 장안의 화제였다. 2000호가 넘는 어마어마한 대작을 신들린 듯 그려낸 그의 솜씨에 많은 사람들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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