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숲 <임병무>
청주 IC에서 시내로 진입하려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바로'플라타너스 가로수 터널'이다. 청주의 근대사와 궤를 함께 하며 웃자란 플라타너스 가로 숲은 길가 양쪽 가지가 맞닿아 거대한 터널을 이루었다.
연두색~진초록~갈색~흰색으로 색깔이 이어 달리기를 하는 이곳엔 언제나 연인들의 이야기가 숲 속에서 새어 나오고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산소(酸素)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당신의 그늘이 되고 생명의 활력소가 되는 플라타너스 가로 숲에는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지난 80년대 초반, 청주대 영극영화과에 김수용 감독이 출강하고 있었다. 김수용 감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나라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명감독이다. 특히 김 감독은 극예술영화에 조예가 깊다.
그가 '만추'라는 영화를 찍을 때 상당부분을 바로 청주 가로수 길에서 촬영했다. 깊어 가는 가을의 운치와 영화의 캐릭터를 살리는데 이곳 가로수 터널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낙엽은 수북히 쌓였으나 공교롭게도 바람이 불지 않아 만추의 정취와 쓸쓸함이 앵글에 묻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과 그곳을 지나는 중년 여인(김혜자 캐스팅)의 쓸쓸함을 찍는데 일단 실패하였다. 생각 끝에 김 감독은 대형 선풍기를 동원하여 가까스로 낙엽을 흩날리는데 성공하였다.
계절의 끝자락에 매달려 앙탈 대던 꽃샘 추위가 저만치 물러가고 봄의 전령이 청주 관문에 도착할 때면 꼭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 가로수길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홍재봉씨 | ||
"그때가 6.25가 막 끝난 1953년도였어요. 강서 면장을 할 때 경찰서에서 플라타너스 묘목 1천6백 그루를 얻어다 가로수로 심었지요. 청주~조치원 길이 비포장이었는데 새끼손가락 만한 묘목을 길가에 심으니 제대로 자랄 리가 없었지요. 아이들이 꺾어가고, 소장수들이 회초리로 꺾어가고, 해서 뿌리를 제대로 못 내리더라구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돌며 묘목을 꺾지말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했고 어떤 때는 지켜서 있기도 했습니다. 나무마다 명찰을 달아 주기도 했지요."
홍 할아버지는 간선면장, 직선면장에 뽑히는 등 지방자치제가 처음 실시될 무렵 강서 면장을 두 번 지냈다. 면장으로서 행정력을 발휘한 덕도 있지만 오늘날의 가로수가 전국 숲 가꾸기 대회서 1등을 차지한 것은 나무에 대한 홍 할아버지의 애착 덕분이다.
"젊을 때 일인데 한번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3대 독자인 네가 공부는 게을리 하고 술을 퍼 마시느냐고 야단을 치는 바람에 술을 끊었습니다. 지금도 술은 전혀 안마십니다."
건강비결을 넌지시 알려주는 홍 할아버지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 씩 부모산에 있는 부모님 묘소를 찾는 효자다. 산을 내려오는 김에 홍 할아버지는 가로수 길을 걸으며 나이테를 함께 한 플라타너스 둥근 숲을 둘러 본다.
봄이 오면 홍 할아버지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가로수는 뾰죽히 잎새를 내밀며 인사를 한다. 나무 사랑 정신과 더불어 아들, 손자뻘 되는 필자의 질문에도 꼭 존칭어로 대답하는 겸손함이 아직도 홍 할아버지의 건강을 지켜주는 비결인 듯 싶다.
나무의 성장과 함께 슬하에 5남3녀를 두었다. 이중에는 미국 유학을 마친 아들도 있다. 플라타너스의 성장처럼 자식농사도 풍년이다. 혼탁한 정치 판에, 정치인의 으뜸 덕목이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있음을 홍 할아버지는 몸으로 말해준다.
울창한 가로수 동굴길을 지나면
아름다운 전원도시 내고향 청주로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꽃동산 이루고
순박한 내 형제들이 흐뭇한 미소짓네.
이 숲을 지나노라면 박병두 작사ㆍ작곡 '내 고향 청주'란 이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임병무>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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