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충북 비정규직 철폐 투쟁주간 기고

2003년 10월 26일 근로복지공단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바로 이용석 열사다. 이 날을 잊을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해마다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를 열고 거리로 나와 열사의 뜻을 기억하고 알렸다.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도 매년 10월 ‘비정규 철폐 투쟁주간’을 선포하고, 지역 비정규노동자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간접고용, 돌봄공공성, 사회서비스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노동법 적용제외, 플랫폼노동 문제를 지역사회에 알리고, 연대의 힘을 모으려고 한다.

앞으로 게재할 세편의 기고에서는 간접고용, 돌봄공공성, 플랫폼노동의 문제와 개선방안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출처 뉴시스.
출처 뉴시스.

 

코로나19로 합리화되는 경쟁체제

청주시가 이륜차 사고 건수가 전국 1위라는 기사를 봤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배달 음식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이륜차 사고 역시 증가했다는데, 관련 사안에 지역 한 시민단체는 ‘이륜차의 신호위반,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 중앙선 침범 등 법규위반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청주시가 이륜차 사고 예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논평을 발표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논평을 보고 나니 고민이 든다. 시간 내에 ‘더 빨리’, ‘더 많이’ 배달해야 하는 라이더들의 법규위반이 그들의 탓이라고만 볼 수 있는 걸까?

운전을 하면 전방을 주시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보며 과격하게 운전하는 라이더들이 보인다. 좋은 콜(거리가 가깝고, 금액이 높은)을 잡기 위해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편법으로 도로를 내달린다. 시간으로 평가하는 고객의 심기를 맞추기 위해서, 알고리즘으로 통제되는 콜 중 누구보다 먼저 좋은 콜을 ‘잡아야’하는 무한 속도 경쟁체제에서 라이더들에게 신호위반과 과속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그에 따른 위험은 당연히 노동자‘만’의 몫이다.

 

자유롭게 일하며 고소득을 보장하는 노동?

쿠팡 물류센터, 배민 커넥트, 카카오 대리 등 플랫폼이 활성화 되던 시기에 기자들이 직접 현장을 체험하고 쓴 르포기사가 인기였다. 자율적으로 일하면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특수고용/플랫폼노동의 루머(?)를 증명하는 내용이었는데, 진실을 알고 있지만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정말?’이라는 호기심은 매번 기사를 클릭하게 했다. 당연히 그런 노동은(결단코) 없다. 읽는 내가 고된 노동을 직접 하는 기분이라 남는 것은 고통(?)뿐이었다.

‘자유’와 ‘고소득’이라는 유혹에는 빈틈이 많았다.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은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고소득은 쉬지 않고 일해야 주어지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고용불안과 과로노동으로 주어지는 ‘독이든 열매’인 것이다.

지난 6월 녹색병원과 일과건강에서 ‘플랫폼·배달노동자 안전보건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플랫폼 기반 택배, 음식배달노동자와 가사노동자, 대리운전노동자 등 총 537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택배와 라이더+퀵, 대리운전의 평균 노동시간은 10시간을 넘겼고 가사 관리 노동자는 6.5시간에 불과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봤을 때 과도하거나 과소했다. 공휴일에 쉴 수 있는 비율도 라이더+퀵,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아예 못 쉰다는 응답이 거의 50% 수준에 육박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업무로 인한 사고(교통사고, 넘어짐, 찔림)와 질병(우울, 소화불량, 수면장애, 뇌·심혈관계질환 등)으로 치료를 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 무려 62%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업무상 재해의 치료비용을 본인이 냈다는 응답은 89%로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소득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일부 소수의 노동자가 얻고 있는 소득의 금액은 컸지만 장시간 노동을 통한 것이라 결국 최저임금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소득이 적었는데 주로 가사 관리 노동자가 응답해 노동의 특성이 반영됐다.

 

노동은 하는데 노동권은 어디에?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들도 분명히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삶을 유지하는 똑같은 노동자인데,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형식상 개인사업자라서, 플랫폼을 통해 일을 얻는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모든 노동법적 권리를 요구할 수도, 보장받을 수도 없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파도 산재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하고, 사용자의 일방적인 갑질(계약변경, 해지, 보수 미지급 등)에 대응도 어렵다. 일하지 못하면 소득은 당연히 없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려해도 사업주의 계약 해지, 행정관청의 노동조합 설립신고 반려 및 노동조합 규약 시정명령 조치 등으로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 급속히 늘어나는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시급한데 정부 여당은 심지어 ‘플랫폼종사자법’을 발의하면서 플랫폼자본의 이익을 위해 지금의 차별을 유지하려는 만행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19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플랫폼 노동을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 규정하는 기준을 만든 한 AB5(Assembly Bill 5) 법안을 통과시켰다.

(A)회사의 지휘'통제로부터 자유로운가. (B)그 회사의 통상적인 비즈니스 이외의 업무를 하고 있는가. (C)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을 갖는 등 해당 사업에서 독립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있는가.

위 3가지를 모두 만족시켜야 프리랜서 지위가 인정되고 어느 한 가지라도 만족시키지 못하면 노동자로 인정해 노동법이 정하는 권리를 보장해야한다. 노동자임을 입증하는 책임 역시 사용자가 한다. 일하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노동자임을 노동자가 직접 입증하고, 입증이 됐다가 번복되는 한국과는 매우 비교되는 사례다.

불평등 사회를 타파하고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이제 끝나 가는데 ‘특수고용’, ‘플랫폼’, ‘간접고용’ 등 각종 수식어가 붙어있는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 문재인정부와 여당이 촛불항쟁의 결과로 선출됐다는 자각이 있다면 계약형태나 고용상의 지위에 상관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이 노동법을 적용받을 수 있게, 일하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신의 고용환경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차별을 해소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과열된 경쟁노동과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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