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 2019년 충북성평등 축제 장면(사진 : 뉴시스)
자료사진 : 2019년 충북성평등 축제 장면(사진 : 뉴시스)

 

글 : 오신정란(청주여성의전화 대표)

2021,충북 성평등 축제가 ‘함께 만들어요. 성평등 충북’ 이란 슬로건을 가지고 4회를 맞이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가 실행되는 마당에 대면·비대면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은 컸을 것이다.

주최 단체인 여성재단의 걱정과 노고는 아마도 짐작되고도 남는다. 그리고 이 글이 성평등 축제를 폄하하거나 특정 정당의 당을 흠집 내기 위한 글이 아님을 밝힌다.

‘같이 고민해 봅시다’ 라는 취지로 글을 씀을 고려해 주셨음 한다.

이미 알고 있듯이 ‘성평등’이란 단어는 수많은 여성들의 목숨값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시작되고 가부장제가 창조되면서부터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성으로 살 수 없었다.

여성은 가축처럼 머리로 세어지거나 출산의 도구나 남성들의 성적 대상물로 존재해왔다.

비로소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으며, 20세기에 와서야 여성의 목소리가 글로 출판될 수 있는 좀 더 많은 기회가 생겼다.

시몬느 보봐르의 ‘제 2의 성’ 출판(1949년)은 20세기 철학의 기념비적인 책이다.

그녀는 여성의 성을 ‘제2의 성’이라 명하며,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 했다.

제2의 성이 출판을 기점으로 여성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된다. 일상생활영역에서 만연한 여성의 무임노동은 당연한 노동으로 치부되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여성은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참정권 운동을 시작으로 여성주의 운동의 방식은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성평등 없이 민주주의의 완성은 없다’라는 구호는 하나의 통찰을 집약한 슬로건이다.

9월10일, 10시, 미래 여성 프라자에서 진행된 성평등 축제 개막식은 30분 진행되었다. 여성재단과 공동주간 여성단체장들의 개회선언식을 시작으로 축하 영상과 축사로 이어졌다.

축하 영상속 화면은 주로 남성들이었다. 도지사, 국회의원, 도의원 그리고 단체장이란 자리. 그들은 축하의 메시지를 여성재단과 공동주관단체에 대한 수고를 언급하며 듣기 좋은 말들의 잔치를 이어나갔다.

왜 단체장과 도의장과 같은 굵직한 자리에는 여성이 없는가?

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도 의장의 축사를 하기 위해 강단에 섰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이 여성이 2분에 1일이 여성인데, 여성은 여성(후보)을 찍지 않는다.

연단에서 축사를 듣고 있는 관람석이 잠시 술렁였다. 사회자가 엎질러진 물을 쓸어 담듯 아름답게 마무리 했다.

이제 기우려진 운동장은 여성운동이 아니더라도 차별 감수성을 논할 때도 비켜갈 수 없는 원칙으로 자리하고 있는 상식이다.

여전히 법과 제도 그리고 일상생활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여성 관련 통계에서도 나타남), 민주주의가 대의 정치이고, 이는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사회로 가는 법안을 고민하는 의원이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실언이라고 하기에는 축사는 너무 내용 없음이었다.

‘어공’이란 말이 있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간영역 곧 현장에서 그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공무원이 되는 것이기에 이는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로 가면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공무원보다 더 공무원다워지는 장면을 종종 목격한다.

성평등 축제의 주인공은 누가 되어야 할까? 누구이어야 하는가?

지역에서 성평등 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우리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그들, 온몸으로 불합리한 성별 권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주인공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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