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 기본적으로 가지는 권리가 인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인 노동에도 인권은 분명히 존재한다. 경제생활(노동)을 하는 개인이 마땅히 받아야 할 인격적 대우와 그들의 행복 추구권을 포괄하는 개념이 노동인권일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는 반드시 정당하게 받아낼 수 있어야 하며, 모든 노동은 반드시 인권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연한 이치가 요즘은 통하지 않고 있다. 근로기준법 미준수, 최저임금 미달(소위 '열정페이' 강요), 산업재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대우, 노동자에 대한 폭언 및 모욕 등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 보면 수많은 기사를 접할 수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랜 시간 회사를 위해 일한다 해서 노동자가 회사의 일부는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인력감축, 노동 환경 악화에도 고용불안과 최저 임금으로 고통받아야 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피할 수 있는 안전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밤낮없는 일에 치여 쓰러진 과로사의 소식을 듣게 된다. 노동인권을 어찌 보면 그들의 생존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노동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일이 존중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회사의 몸집만 불려 주었을 뿐이라면 분명 서글프지 않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당 해고에 관한 것에서부터 임금 체불, 일터 괴롭힘, 차별, 고함, 막말, 폭행, 급기야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우리 사회의 노동이 정말 ‘안녕’한지를 묻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우유와 시리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인도는 새벽부터 청소한 흔적으로 정갈하고 도로는 정비되어 있다.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를 주문한다. 저녁이면 마트에 진열된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를 거치는 단순한 과정에 수많은 노동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몸이나 정신을 쏟아 이루어진 일로 모두가 살아간다. 노동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권리는 숨겨져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를 언제까지 두고 볼 일인지 궁금하다. 당당하게 일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삶을 꾸려나가는 지극히 당연한 삶이 노동자에게는 왜 그리 어려운 것인지.

노동자의 권리를 아는 것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인 우리 모두가 알 일이다. 노동의 존엄한 가치를 모르는 노동의 소비자가 되어서야 하겠는가. 노동의 가치에 무지하다면 노동 인권을 침해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잘못을 모를 수 있다. 노동을 사고 얻은 편리함에만 만족하지 않고 조명되지 못하는 노고에 감사할 줄 아는 감수성을 잃고 싶지 않기도 하다. 열정의 노동으로 자신의 앞날을 개척할 청소년이 무시와 차별로 좌절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크다. 지금 우리, 노동과 인권 사이에서 올바른 길을 닦아내야 할 세대의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동과 인권이 하나의 가치로 직조된 사회에서 미숙하지만 꿈을 실은 젊은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으며, 자신의 노동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떳떳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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