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악중 첫째로 의식 속의 ‘신성한 산’
역대 제왕들 정상 올라 하늘에 제사
7412개의 돌계단 중국인 저력보여



정상에 올라보니 과연 명산이었다. 눈 아래 펼쳐진 운무(雲霧)도 운무렸으려니와 산세의 웅장함이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오악독존(五嶽獨尊)이라는 극찬이 허사(虛辭)가 아니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양사언).’ ‘할 일이 태산’, ‘걱정이 태산’이라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태산’은 아주 높고 아주 크고 아주 많은 것을 상징한다.

▲ 산 아래서 정상에 이르는 장장9km, 총 7412개의 돌계단.중국인들의 방대한 스케일과 저력을 보여주는 대역사의 산물이다. 도대체 태산이 얼마나 높고 큰 산이기에 그처럼 시조에도, 속담에도 자주 인용되고 있는 것일까. 궁금증을 안고 태산을 올라 가 보았다. 우리가 태산이라고 부르는 ‘타이산(泰山)은 중국 산둥성(山東省) 타이안(泰安)시 북쪽에 인접해 있는 해발 1545m, 총면적 426㎢의 큰산이다. 산의 높이는 우리 나라 지리산의 노고단(1506m)과 비슷하니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지에 우뚝 솟아있는 산세 탓에 실제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타이산을 오악지장(五嶽之長), 오악독존(五嶽獨尊)이라 부르며 오악(五嶽)가운데 첫째, 천하 제일의 명산으로 꼽고 있다. 오악이란 타이산을 비롯해 섬서성의 화산(華山), 하남성의 쏭산(嵩山), 호남성의 헝산(衡山), 산서성의 헝산(恒山)등 중국의 5대 명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각각 위치에 따라 동악(東嶽), 서악(西嶽), 중악(中嶽), 남악(南嶽), 북악(北嶽)이라 부른다. 타이산이 유명해 진 것은 산의 웅장함도 웅장함이려니와 역대의 제왕들이 이 산에서 봉선(封禪)이라는 의식을 행했기 때문이다. 봉선이란 하늘의 신으로부터 신임을 받은 황제가 태평성대가 이루어 진 것을 천지신명에게 아뢰는 준엄한 의식이다.그런데 봉선은 선정(善政)을 베푼 덕있는 명군(名君)만이 행할 수 있다하여 산에 오른 군주는 많았지만 실제로 봉선을 행한 이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유사이래 진시황(秦始皇)을 비롯해 전한(前漢)의 무제와 후한(後漢)의 광무제, 그리고 당(唐)의 고종과 현종, 북송(北宋)의 진종, 청(淸)의 강희제 등이 스스로를 명군이라 칭하며 봉선을 행했다고 한다. 자고로 중국인들은 타이산을 신성시하여 사후 영혼이 이 산으로 돌아와 영생을 누릴 수 있고 수명도 10년이나 연장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날마다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생의 소원을 풀기 위해 줄지어 타이산을 오른다. 타이산은 정상에 오르려면 7412개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1545m 높이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일은 젊은이가 아니고서는 어렵다.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버스와 케이블카를 번갈아 타고 정상으로 향하는데 그래도 1시간이 넘게 걸려 태산에 오르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 중국의 오악 중 첫번째로 꼽히는 천하명산 타이산. 산 정상에 표고를 알리는 표지석이 꽃혀 있다.
타이산은 산아래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곳곳에 수많은 유물 유적들이 즐비하다. 첫 번 째는 중국 3대 건축물의 하나인 다이마오(岱廟)인데 이곳은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행한 곳으로 유명하고 규모도 엄청나다. 입산이 시작되면 등산로의 대문인 다이쭝팡(岱宗坊), 붉은 돌에서 유래한 훙먼궁(紅門宮)을 거쳐 산허리 중간의 케이블카가 발착하는 중텐먼(中天門)을 만난다.

이어 진시황이 봉선을 위해 산에 오를 때 폭풍우를 피하게 해줘 ‘오대부’라는 벼슬을 내렸다는 소나무 우다푸쑹(五大夫松), 800여m, 1633의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는 스바판(十八盤), 정상 바로 밑인 난텐먼(南天門)을 지나 여신이 모셔진 비샤츠(碧霞祠), 산 정상인 위황딩(玉皇頂), 르관펑(日觀峰)등 수많은 볼거리가 등산객을 기다린다.

그밖에도 타이산에는 푸자오쓰(普照寺)등 무려 800여 개의 크고 작은 사당과 사찰이 산재해 있는데 유네스코는 1987년 타이산을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타이산 정상에는 역대 제왕들과 시인 묵객들이 바위에 새긴 수많은 명필들이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그 중 양귀비에 빠졌던 당나라 현종이 쓴 기태산명비(紀泰山銘碑)는 용이 춤을 추는 듯 서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996자나 되는 많은 글자를 금으로 입혀 더욱 이채롭다.

한 마디로 ‘중국은 중국’이었다.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7412개의 굽이치는 돌계단을 바라보면서 과연 중국인 특유의 방대한 스케일과 저력이 어떤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족(蛇足). 천하명산 타이산에 올라 멀리 대지를 굽어보는 소회는 한마디로 벅찼다. 지난 날 이 광활한 중원 땅에서 불세출의 군웅들이 천하를 놓고 용호상박 쟁패를 벌이던 장면이 주마등이 되어 뇌리를 스쳐갔다. 그러면서 저 동쪽 바다건너 작은 내 나라 비좁은 땅에서 들려오는 ‘싸우는 소리’가 환청(幻聽)처럼 오버랩 되면서 가슴을 짓눌러왔다.         / 중국 산둥성 타이산에서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에 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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